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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석학 김우창의 文 정부를 향한 고언

“슬로건 또는 이념적 확신만으로 사회 발전 이룰 수 없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석학 김우창의 文 정부를 향한 고언

  • ● 한국 풍토 숙고하지 않는 이념화된 좌파
    ● ‘어리석은 좋은 생각’이 사회 혼란 부추겨
    ● 경제 발전, 민주화로 국가적 어젠다 사라진 시대
    ● 무의미한 다툼 휩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성찰하는 훈련 필요
[김형우 기자]

[김형우 기자]

김우창(82)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지성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그에 대한 찬사는 차고 넘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김 교수를 가리켜 ‘세계 최고 수준의 철학적 인간학자’라고 했다. 작가 고종석은 ‘한국 최고의 생존 인문학자’라고 평했다. 도올 김용옥은 ‘가슴속 깊이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했고,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지식인들의 사상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김호기 교수가 쓴 글의 한 대목은 이렇다. 

“사상가의 독자는 대중과 지식인 둘로 나뉜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사상가’를 한 사람 꼽으라면 그는 김우창이다. 한국 사회와 세계 사회의 경계에 서서 이성과 감성, 개인과 구조, 구체성과 보편성의 의미를 묻고, 인간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모색해온 그는 인문주의 본래의 정신에 가장 충실한 보편적인 인문주의자라 할 만하다.” 

최근 좌와 우로 첨예하게 갈라진 한국 사회에서 김우창 교수만큼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인물은 드물다. 특히 지식인 사회에서 그가 가진 위상은 독보적이다. ‘신동아’가 2019년을 결산하며 김 교수를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 굳건히 발을 디딘 채 성찰과 변화를 요구하는 그의 메시지는 우리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리와 정치

11월 초 북악산 자락이 내다보이는 서울 안국동 사무실에서 김 교수와 마주 앉았다.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는 가벼운 화젯거리로 소설 ‘증언들(testaments)’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세계적 문학상인 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는 2020년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이미 그 책을 읽고 있었다. 그가 현실에서 한 걸음 떨어진 원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지식인이라는 점이 새삼 실감 났다. 

도올 김용옥은 1980년대 초 미국 하버드대 유학시절 방문교수로 온 김우창 교수가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도올은 언론 인터뷰에서 “나보다 영어 실력이 낫다고 인정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김우창 교수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교수에게 이런 얘기를 전하며 요즘도 책을 많이 읽으시느냐고 물었다. 그는 “여기저기서 부탁받은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읽게 된다. 하지만 하루에 한 권씩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증언들’도 아직 다 읽은 건 아니라고 한다. 



- 그 소설은 어떤 내용인가. 

“작품 배경이 굉장히 엄격하고 윤리적인 사회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겉으로 모두 규범을 준수하는 듯 행동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권력자들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 끼리끼리 일탈을 즐긴다. 사람의 필요와 욕망을 지나치게 억누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사회에는 윤리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윤리를 강조하면 사회가 무너질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속성이 조화롭게 유지되는 사회, 그걸 가능하게 하는 정치체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념화된 좌파

10월 5일 서울 서초구 서초역 인근에서 열린 ‘검찰개혁, 사법적폐 청산’ 집회 광경.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전후해 서울에서는 대형 찬반 집회가 여러차례 열렸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10월 5일 서울 서초구 서초역 인근에서 열린 ‘검찰개혁, 사법적폐 청산’ 집회 광경.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전후해 서울에서는 대형 찬반 집회가 여러차례 열렸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윤리와 정치라는 키워드가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른바 ‘조국 사태’ 과정에서 정치인에게 어느 정도의 윤리 규범을 요구해야 하는지가 논란이 됐다. 

“대통령이 조국 씨를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을 안 할 수는 없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 적합한 말도 아니었다. 세상에는 법으로 다 규율할 수 없는 윤리적인 문제들이 있다. 다산을 비롯해 많은 조선시대 학자가 정치 지도자의 덕목으로 청렴을 강조했다. 청렴하지 않다고 곧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이는 청렴해야 한다.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범죄자가 아니니 문제없다’고 한 건 이상했다. 윤리의식은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이다. 윤리적이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는 어떤 곳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추진하는 등 윤리적 가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최근 상황을 아이러니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적폐가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가령 ‘좀 더 청렴한 사회를 만들겠다’ 또는 ‘부패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면 의미가 분명히 전달된다. 그런데 적폐라는 단어는 모호하다. 최근 대법원장이 공관 수리에 10억 원 넘는 돈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은 정부가 청산하겠다고 한 적폐인가 아닌가. 박정희 정부 때는 머리 길이를 단속했다. 그때 기준으로 보면 장발이 적폐였을 수 있다. 지금 정부 생각은 어떤가. 

나는 이 정부가 ‘오랫동안 쌓여온 폐단’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무엇을 폐단으로 보는지, 그것을 청산함으로써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설명 능력 부족 때문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 상황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때로 나는 정부 정책이 개혁 의도를 구호처럼 과시하는 데 그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단지 정책 시행자의 자기만족 행위에 머물 수 있다.” 

- 그런 사례가 또 있나. 

“예를 들면 소득주도성장이 그렇다. 저소득층 소득을 올리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경제성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다. 저소득층 소득 향상과 경제성장이 둘 다 좋은 주장이라고 해서, 곧장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에 정당성이 생기는 게 아니다. 어떻게 저소득층 소득을 올릴 것인지, 그것을 경제성장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정부가 여러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서둘러 정책을 발표했다는 인상을 준다. 

원자력발전소 폐기,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의 문제도 그렇다. 원전을 폐기하면 지금의 전력 수요나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국민이 궁금증을 갖는 게 당연한데 별다른 설명을 듣지 못했다. 영세자영업자가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부분도 그렇다. 

대통령 취임사에 나온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구절은 많은 이의 마음에 울림을 줬다. 그런데 그것이 구체적 현실에 연결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의 슬로건 또는 모토만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현실의 삶을 살피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온다. 그런 맥락에서 이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어리석은 좋은 생각

- 어떤 부분이 그런가. 

“한일관계 얘기를 해보자. 우리와 일본 사이에 원한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우리 국민 마음속에는 여전히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풀어나가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정부가 면밀한 고민과 프로그램 없이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창이나 의병 얘기를 하는 부분 등이 그렇다. 지금이 임진왜란 때인가. 좌파라면 현실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정부 사람들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런 것으로는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없다. 오히려 갈등을 키울 뿐이다. 당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 담당자라면 반일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없다는 걸 인식하고 다음 단계를 고려해야 한다. 

민족주의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정치권이 앞장서 그런 정서를 자극하면서 그것을 국가 운영의 동력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지금은 그런 게 작동되는 시대가 아니다. 정치 지도자가 단숨에 좋은 일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오히려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민주화에 대해 자신했던 걸 떠올려보라. 그는 독재자를 죽이고 무기를 없애면 곧 민주국가가 건설될 거라고 여겼다.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이 어디 있나. 민주주의가 완성되려면 수많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점을 간과한 부시의 ‘어리석은 좋은 생각’은 결국 문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 지금 중동 지역의 정치적 혼란에 대해 얘기하는 건가. 

“그렇다. IS가 세력을 확장하고 곳곳에서 지하드가 벌어지는 배경에는 이라크 사태가 있다고 본다. 한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드니 주변 국가까지 혼란을 겪고, 세계 전체가 그 영향을 받게 됐다. 

독일 쾰른성당은 완공되기까지 80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정도 시간이 흐르면 건물 주인이 바뀌고 처음 건설을 제안한 사람도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그 건물은 지금 누군가 한 사람을 빛내는 기념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자산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뭔가를 이뤄낸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 가치를 알아야 한다. 

우리 정치권을 보면 당장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전략 전술에 집착한다. 정치학자들도 그런 경향이 있다. 국제관계를 얘기하면서 반일통미, 반중통미 이런 말을 예사로 쓴다. 그런 게 우리 마음대로 되나.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장기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

- 최근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을 두고도 논란이 많다.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세간의 관심사는 이른바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인 것 같다. 대학입시에서 학생의 경험과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건 참 좋은 아이디어다. 그런데 우리 풍토가 그 제도를 수용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 부모가, 학교 교사가, 대학교수가 지금 정직한가. 관련 서류에 있는 그대로 사실만 적어내는가. 그런 윤리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학종을 만들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거짓말만 횡행할 뿐이다. 얼마 전에도 교수 수백 명이 자기가 쓴 논문에 자식 이름을 저자로 올렸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조국 씨 같은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닌 거다. 그런 점에서 학종도 이상과 현실이 안 맞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김우창 교수는 이 대목에서 “재밌는 얘기를 하나 하겠다”며 처음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1963년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교수들이 대학입학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출퇴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뒤부터 갑자기 출제교수를 전원 호텔이나 학교 기숙사에 ‘가둬두고’ 시험 끝날 때까지 나가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생겼다. 김 교수는 “돌아보면 우리 사회의 신뢰가 약해지는 과정을 직접 겪은 것”이라고 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교수가 대학입시와 관련해 부정직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의심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교수는 높은 윤리적 기준에 맞춰 살아갈 것이라는 일반적 믿음이 있었다. 교수 스스로도 그런 자존심을 갖고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지금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됐을까.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입시제도뿐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 사회적 신뢰가 약한 지금 상황에서는 대학 입시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나는 시험이 지적 능력의 소유자를 가려내 선발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학생과 그 가족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다툼을 막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학입시의 상당 부분은 재수 소관이다. 시험 날 자기가 아는 문제가 나오면 높은 점수를 받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반대 결과를 얻게 된다. 진짜 우수한 능력을 가진 일부는 다르겠지만,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한테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제도는 제비뽑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제도가 만들어졌을까. 싸움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다. 모든 사람이 좋은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사회적 갈등이 생긴다. 누군가 ‘왜 저 사람은 뽑고 나는 떨어뜨렸느냐’고 항의할 때 ‘너는 200점인데 쟤는 201점이잖아’ 할 도구가 필요하다.” 

- 단지 그런 이유로 수많은 학생이 암기식 공부에 매달리고 여러 고통을 겪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 안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험제도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프랑스혁명의 주요 슬로건 중 하나가 재능에 따른 출세, 곧 능력주의였다. 시험 성적으로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건 당시로서는 혁명적 아이디어였다. 프랑스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도록 영감을 준 건 중국 과거제도다. 우리나라도 중국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과거제도를 운영했다. 조선시대부터 그것의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있었다. 너도나도 과거시험에 매달리면서 합격용 공부만 하는 바람에 학문과 문학이 다 죽는다는 비판이었다. 당시 누군가 퇴계에게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묻자 퇴계는 ‘별수 없다. 공부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말 현실적인 대답이다. 

어떤 제도를 운영하다 보면 좋은 결과만 나오는 게 아니다. 기대하지 않은 못된 일도 일어난다. 그것을 살피고 현실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게 정치다. 학종이라는 아이디어에는 좋은 면이 많다. 다만 우리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으로서는 학종을 유지하더라도 점수 배점을 좀 줄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차츰 우리 사회의 윤리적 풍토를 변화시켜 장기적으로는 깊은 사고 능력과 인간성 등까지 고려하는 좀 더 좋은 입시제도를 정착해가면 좋겠다.”


성찰 없는 다툼의 한계

- 그러자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텐데 좌우 대결이 날로 첨예해져 가는 상황에서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진 ‘길거리 정치’에서 알 수 있듯 대화와 토론보다는 극단적 힘겨루기가 횡행하지 않나. 

“이 문제는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거리에 나와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밝히는 것은 나쁠 게 없다. 오히려 순기능이 많다. 인류학자들은 대중 집회가 일종의 축제 구실을 한다고 말한다. 집회 참가자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며 고독과 우울감을 떨쳐낸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그저 남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정치적 의사 표현의 주체’라는 걸 각성함으로써 자아가 튼튼해진다고도 한다. 

나도 한동안 주위에서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거리에 나선다’는 사람 얘기를 많이 들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건 좋은 일이다. 홍콩에서처럼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 안되겠지만 우리나라는 적당한 규율 안에서 집회가 이어졌다. 다소 혼란이 있었다 해도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다. 

나는 최근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적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목표로 달려왔다. 그리고 집단적 목표를 상당 부분 이뤘다. 이제는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할 국가적인 어젠다가 없다.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 현안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직접 의사표현도 해보고자 나설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 문제는 사람들이 사회 현안에 대해 스스로 깊이 있게 생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게 아니라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져 다툰다는 점이다. 감정적 흥분이 정치적 의사표현을 지배하는데, 그것에 어울리지 않게 좌파·우파, 또는 진보·보수 등의 이름을 붙인다. 나는 이 문제만 바로잡아도 사회적 혼란이 크게 해소될 거라고 생각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내가 볼 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사회보장제도가 있는 민주사회. 여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미국은 경우가 다르다. 거기는 완전한 자본주의를 생각할 수 있는 나라다. 1929년 대공황이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이 실직하자 정치권 일각에서 사회보장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반면 일부에서는 ‘지금 곳곳에 농토가 비어 있다. 일자리 없는 사람은 거기 가서 농사지으면 되지 왜 대도시에서 일자리 달라고 데모를 하나’라고 반박했다. 

우리는 그게 안 된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많은 인구가 살자면 복지제도가 있는 자본주의 외엔 선택지가 없다. 지금 정치 세력 가운데 굶어죽는 사람 내버려두고 돈 있는 사람은 마음대로 쓰게 하자고 주장하는 쪽이 있나. 우리나라에서 좌우 견해가 갈릴 부분은 사회 변혁의 속도와 폭 정도밖에 없다. 좌파는 좀 더 빨리 가자고, 우파는 속도를 조절하자고 주장할 수 있다. 복지정책 대상을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 같은 문제를 두고도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 방향에 대해서는 양쪽이 다를 수 없다.” 

- 그렇다면 최근의 극심한 사회적 갈등은 왜 벌어지는 건가. 

“싸우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이 대중의 흥분을 자극하고 좌파·우파, 또는 진보·보수 같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갖다 붙이며 갈등을 부추긴다. 최근 조국 씨를 둘러싼 논쟁을 봐도 알 수 있다. 거기 좌우 대결이랄 게 뭐가 있나. 대학입시용으로 가짜 서류를 만들고 남의 이름 빌려 투자한 것에 대한 판단이 좌파 우파에 따라 다를 리 없다. 같은 행동을 놓고 우리 편이 하느냐 남의 편이 하느냐에 따라 달리 대응하는 건 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다.


내용 없는 좌우 대결

김 교수는 현 정부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는 것에도 우려를 표했다. 예를 들어 ‘촛불혁명’이 그렇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혁명을 통해 감옥에 들어간 게 아니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법원 판결을 거쳐 구속됐다. 김 교수는 “혁명이라는 말이 사람을 흥분시키고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 지금은 혁명 상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 정치에서 혁명이라는 말은 낭만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정치적 에너지를 쉽게 동원한다. 그러나 지금의 시점에서 그것이 우리의 상황과 과제를 바르게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쳐야 할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요구되는 것은 세상을 뒤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간 이룩된 것을 더 높은 새로운 단계로, 조화와 평화의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김 교수는 ‘그간 이룩됐으나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야 할 것’의 예로 사회안전망 강화, 복지정책 등을 들었다. 이전 정부도 이런 정책을 폈다. 이번 정부는 그것을 한 단계 발전시킨다고 생각해야지 혁명적 변화를 강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 앞서 진보, 보수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진보는 앞으로 나가자는 거니까 그나마 말이 된다. 반면 보수는 대체 뭘 지키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변해온 나라다. 입는 것, 먹는 것부터 사회제도까지 다 바뀌었다. 지금 체제가 만들어진 지는 수십 년밖에 안 된다. 그런데 뭘 지키나. 조선 말기라면 모를까, 지금 사회에서 보수를 정치이념으로 내세우는 건 어색하다. 일반적으로 자기 집 한 채 지키자고 하는 걸 보수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는 우파라고 불러야 하나. 

“그게 옳다고 본다. 다만 현재는 자칭 좌파가 좌파답지 않고, 우파 또한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우리나라에서 좌우 대결이 있으려면 양자 모두 바뀌어야 한다. 특히 우파는 우리나라를 제대로 만드는 데 필요한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서양에서 좌파는 제도 변화, 물질 소유 관계를 바꾸는 데 관심이 많다. 반면 우파는 정신적 자세를 중시한다. 진정한 우파라면 인격 존중 같은 정신적인 가치를 계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 교수님은 우리 사회에서 ‘중도 지식인’으로 분류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식인이 몸 바쳐야 할 것은 진리다. 그것과 상관없이 늘 가운데로 간다? 그건 말이 안 된다. 다만 내가 무리를 갈라 싸우는 데 참여하지 않은 건 맞다. 앞서 말했듯 우리 사회의 많은 이슈는 자칭 진보·보수, 좌파·우파의 생각이 다를 게 없다. ‘너는 좌파니까 죽어’ 혹은 ‘너는 우파니까 죽어’라고 할 만큼 양자를 뚜렷이 가를 수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지금 벌어지는 싸움 상당수는 사람들이 우리 편을 지키자고 나서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보통 사람이 이런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있게 정부에서 교육을 통해 도와줘야 한다.”


교양 있는 사회를 향해

김 교수는 평소 기회 있을 때마다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현재 네이버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대중 강연 ‘열린 연단: 문화의 안과 밖’ 자문위원장을 맡아 학술 담론의 대중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려면 사회 전체의 문화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 양심적이고 윤리적인 사회가 되면 누구에게 정치를 맡겨도 잘하게 된다”고 했다. 그가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먹는 것을 자제하지 않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마약이나 술을 하면 결국 내게 피해가 돌아온다. 그걸 아는 사람은 스스로 규율을 정하고 자기 절제를 실천한다. 외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윤리적 삶을 살아가면 사회가 달라진다. 우리 문화 전반에 윤리와 도덕이 들어가도록 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그러한 자기 절제와 수양 문화가 내재한다. 조선시대 한시 쓰기가 널리 이뤄진 것이 한 근거라고 한다. 그는 “한시는 규율이 매우 복잡하다. 그것을 습득하는 사이 저절로 자기 훈련이 된다”고 했다. 한시의 또 다른 특징은 외국어로 쓰인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이순신 장군도 한시를 다수 남겼다. 세계 어느 나라에 외국어로 시를 쓴 장군이 있나. 최소한 나는 그런 사례를 보지 못했다. 그게 우리 선조의 문화 수준”이라고 했다. 오늘 이 시대에 이런 문화를 되살리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상당 부분 해결될 거라는 게 김 교수 생각이다.


평생 공부하는 삶

1977년 첫 평론집 ‘궁핍한 시대의 시인’을 펴낸 뒤 인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평론 활동을 해온 김 교수는 8월 한용운 시 연구 등에 기여한 공로로 만해문예대상을 받았다. 당시 “나같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한테 큰 상을 주어 감사하다”는 소감을 밝혀 화제를 모았다. 여든의 노학자가 “이번 수상으로 한용운 선생의 삶과 글에 압축된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사고를 보다 면밀히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 것도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줬다. 기자가 “평생 문학을 연구한 학자가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시나 싶었다”고 하자 김 교수는 “겸손한 척하려고 한 말이 아니다. 진심이었다”고 했다. 앞으로도 평생 공부를 해나갈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는 말했다. 

“만해가 30대에 쓴 ‘님의 침묵’을 읽으면 매번 감탄한다. 그 사상과 문학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만해가 승려로서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기에 그런 세계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공부다.” 

마지막으로 임기가 절반 남은 문재인 정부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열악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뜻을 존중한다. 그건 그대로 해야 한다. 다만 모토만으로 정책이 실현되는 건 아니다. 현실을 철저히 이해하고 분석해 성실하게 이뤄나가면 좋겠다. 이데올로기나 개념 체계에서 나오는 어떤 강령에 따라 움직이는 건 조심하길 당부하고 싶다. 개념이나 이념을 하나의 가설로 생각하고 현실에 맞춰 시험하며 끝없이 수정해달라. 그러자면 공부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사회 전체에 감정보다는 이성, 흥분보다는 절제하는 문화가 생기도록 이끌었으면 한다. 그래야 보통 사람이 자기 삶을 성실하게 살 수 있다.”




신동아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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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 김우창의 文 정부를 향한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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