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호

달러화 약세와 달러캐리 트레이드

“달러화 장기 흐름은 추가하락 이머징 국가 수출전략이 복병”

  • 최석원│삼성증권 채권분석파트장 swfi.choi@samsung.com│

    입력2009-11-06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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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 달러 환율이 1170원 아래로 내려가고 엔 달러 환율이 달러당 89엔 이하로 떨어지면서 달러화 약세 기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및 일부 중동 산유국이 비밀회동을 갖고 향후 원유 거래시 달러화 대신 새로운 통화를 사용하는 방안을 만든다는 데 합의했다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다. 그동안 무소불위의 기축통화로 군림해온 달러화 시대가 저무는 것일까.
    달러화 약세와 달러캐리 트레이드

    외환은행 본점 딜러가 분주히 주문을 하고 있다.

    투자자는 투자자대로, 각국 정부는 정부대로 달러화가 예전과 같은 위상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란 기대하에 움직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달러캐리 트레이딩’도 달러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정책 금리를 0% 근처로 내린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엔캐리 트레이딩을 대체하는 달러캐리 트레이딩 가능성이 꾸준하게 제기돼왔는데,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움직임을 보면 그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 경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엔화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글로벌 주가와 엔화 가치의 연동성도 크게 떨어졌다. 과거 일본에서만 0%를 조금 넘는 초저금리가 유지될 때는 글로벌 주가가 오르면 늘 일본으로부터 투자자금이 흘러나와 엔화가 약세를 나타냈는데 올해 2, 3분기 글로벌 증시 활황기에는 반대로 엔화 가치가 계속 오른 것이다. 글로벌 투자자금으로서 달러가 엔화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에 증시 활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으로 자금이 되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달러화 약세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이를 반영하는 각종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는데, 가장 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곳은 금 시장이다. 최근 런던 귀금속거래소에서 고시된 금 가격은 지난 9월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1000달러를 넘어섰고, 이후 1050달러 근처까지 치솟았다. 금 가격 상승률은 올해 초 저점 대비 30%에 달한다. 금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상품 투자 전문가인 짐 로저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금 가격이 온스당 2000달러 수준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고, 주요 투자은행들도 금 관련 상품 투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개인들의 금 투자 열기도 뜨겁다. 그런데 이들이 금값 상승을 점치는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간단하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금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만큼 달러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한 상태다.



    당연히 원유나 다른 원자재 가격도 들썩거리고 있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결제되는 원자재의 달러 표시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원자재 수출국은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발생하는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이를 달갑게 받아들일 국가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 달러 가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일각의 기대대로 단기에 급격하게 하락할 것인가. 아니면 시간에 걸쳐 천천히 내려갈 것인가. 반대로 달러화 가치가 오를 가능성은 없는가.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달러화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들을 살펴보고, 시간에 걸쳐 이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를 가늠해야 할 것이다.

    장기 달러 가치 하락론

    장기적으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너무 많다. 하나는 일부 산유국들의 원유 거래 통화 변경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달러캐리 트레이딩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은 결국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 약화와 미국 경제의 침체 장기화 가능성이라는 근본적 달러화 약세 원인의 단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기축통화로서 달러화 위상에 대한 논의가 이렇게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에는 독일의 통일과 구 소련의 붕괴로 세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극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달러는 확고한 세계 통화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여겨졌다. 나아가 그 지위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합당했다. 하지만 불과 10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달러화 가치는 삐걱대기 시작했다. 대내외적으로 달러화 가치 하락을 유발할 만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등장과 미국의 쌍둥이 적자

    대외적으로는 중국이 글로벌 상품 제조공장으로서 세계무대의 중심부로 들어선 반면 미국의 경제적 위상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 달러화 가치의 잠재적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는 과거 플라자 합의가 도출된 1980년대 중반 이후 추진된 엔화 대비 달러화 가치의 급격한 하락과 같은 일이 이번에도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졌으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경상수지 쪽만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는 서브프라임 위기로 미국의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난 상태다. 올해만 해도 미국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 재정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누적된 재정적자를 반영하는 GDP 대비 정부의 총 부채 비율은 100% 수준이지만, 버블이 꺼진 이후 일본의 사례는 재정적자규모가 GDP 대비 200% 이상으로 꾸준하게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외국인들은 미국 재정적자를 뒷받침하고 있는 미국 국채를 이미 대규모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채 발행 규모의 50% 이상을 외국 중앙은행 및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채무자 입장에서 보면 빌린 돈 값의 하락은 갚을 부채의 실질 가치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렇게 보면 각국 정부나 투자자들이 미국 정부가 달러화 가치 하락을 통해 달러 부채 부담을 줄이려 할 것이라 걱정할 만하다. 미국의 실질 부채 부담 감소는 곧 달러표시 미국 정부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실질 자산가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상수지만 보더라도 1980년대에는 일본과 독일이 흑자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을 위시한 이머 징국가들, 또한 산유국을 중심으로 하는 원자재 보유국이 무역 또는 경상수지 흑자의 편에 서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 위안화에 대한 달러 가치뿐 아니라, 주요 교역국 대비 달러화 가치의 전반적 하락이 다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통해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미국 국내에서 저축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상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달러화가 절하돼야 마땅하다는 의견도 있다. 즉 미국 가계나 기업은 자신들이 버는 돈 이상을 무리하게 쓰고 있으므로 이러한 부분이 시정되기 위해서는 달러화 가치가 떨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달러화 약세와 달러캐리 트레이드

    달러화 영국파운드화 유로화(위부터).

    달러화 기축통화 견제 움직임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다른 이유로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는 한 달러화 가치 하락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상대국 통화에 대해 낮아진 가치만큼 돈을 찍어 보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되면 기축통화의 지위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여기에 많은 국가가 달러화 위상에 의문을 가지고 도전하는 상황 그 자체가 달러화 약세를 부추길 수 있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 이미 각국은 장기적 차원의 달러 기축통화 체제 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다. 앞에서 지적한 원유 거래에 있어 달러화 사용 관행을 바꾸자는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중국, 러시아 등 이른바 강대국들은 거의 직접적인 어법으로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은 인민은행 홈페이지에 이례적인 영문 리포트를 발표해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인 SDR을 전세계 공용의 슈퍼 통화로 격상시키자는 의견을 제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명시적으로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를 바꾸자는 주장은 아니었지만 국제 통화체제의 개혁이 불가피한 만큼 SDR의 기능을 제고하고, 특정국 통화가 국제무역에서 통용되고 다른 통화들의 기준이 될 경우 기축통화의 발권 국가가 스스로의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6월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상하이협력기구(SCO) 6개국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금융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달러 이외에 새로운 기축통화를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것이나, 브라질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자국 통화 사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향후 SDR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산유국 역시 이미 오래전부터 달러화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바레인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협의체(GCC)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지역 단일 통화론, 원유 공동시장 창설 등을 통해 원유 거래시 달러화 사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후 미국 경제 활황으로 논의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경제 불안과 저금리 장기화

    결국 지금은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라는 두 가지 표면적 이유에 미국 중심의 일극 경제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대국과 산유국들의 움직임이 맞물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가치 약세를 부추기는 형국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는 이러한 움직임에 맞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상황인가. 설사 지금 일시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해도, 조만간 글로벌 일극체제(Uni-polar system)의 맹주로서 제 역할에 충분한 경제적 파워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미국 입장에서 보면 애석하지만 미국 경제가 글로벌 각국의 움직임에 맞설 만큼 강한 파워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미국은 아직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인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GDP는 여전히 글로벌 GDP의 20%를 상회한다. 또한 경제력과 밀접한 상호관계를 갖는 정치, 군사력 측면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런데 적어도 경제에서 미국의 미래는 별로 낙관적이지 않다.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 확대의 이면에 있었던, 또는 그러한 적자 확대의 원인이 됐던 민간 부문의 대출 증가와 이를 통한 성장 확대가 계속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미국의 민간 부문은 2000년대 들어 소득을 초과하는 지출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지출을 위한 재원의 상당 부분은 이머징 국가로부터의 자본 유입에 의존했다. 여기까지 보면 문제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등 수지 측면에 국한된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가계 부문의 소득을 넘어서는 소비는 대출 증가와 자산가격의 상승을 통해 이뤄졌다. 즉 자산가격이 계속 오를 경우에는 상관없지만, 자산가격이 떨어지면 가계의 재무적인 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질 수밖에 없는 형태로 성장이 이뤄져온 것이다.

    달러화 약세의 원인

    그런데 이제 자산가격은 떨어졌고 가계의 평균적 재무적 건전성은 악화된 상황이다. 물론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 상태에서도 금융기관이 열심히 돈을 꿔주면 다시 예전과 같은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기관들이 낮은 금리하에서도 좀처럼 대출에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계신용증가율은 올해 들어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자금시장에서는 낮은 금리라면 언제든 대출받을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플러스 투자수익을 낳는 기회는 사방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 금융기관들은 그러한 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왜 금융기관들이 민간 경제 주체들에게 돈을 꿔주지 않을까.

    민간 부문의 재무적 건전성 약화와 버블 이후 안전하고 수익성 높은 투자 기회의 부진 때문이다. 돈을 빌리려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금융기관의 기준을 만족하는 민간 부문의 대출 규모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과정을 통해 민간 부문의 재무적 건전성이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07년에 마이너스를 넘나들던 미국의 가계저축률은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해 5%를 넘나들고 있다. 시간이 흐른 후 재무적 건전성 측면 때문에 줄던 민간 부문의 신용은 다시 확대될 법하다. 그렇다고 해서 2002년부터 2007년까지와 같은 대출과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반을 둔 고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긴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정책 및 시장금리가 상당 기간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저금리하에서 진행되는 달러캐리 트레이딩과 자금 이탈 가능성은 계속해서 달러화 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위상 약화와 미국 경제의 불안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달러화 가치의 장기적 하락 압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이제 달러화 앞에는 끝없는 가치 하락이라는 미래만이 놓여 있는 것일까. 달러화의 가치 하락과 함께 위안화 등 다른 통화들의 위상이 빠른 속도로 달러화가 이룩해놓았던 것과 같은 위상으로 올라설 것인가.

    정치경제적인, 심지어 군사적인 힘의 균형까지 영향을 미치는 통화 변동에 확실한 답을 내긴 어렵다. 하지만 위의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은 이렇다. 달러화 가치는 장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를 막는 여러 요인이 존재하며, 단기적으로도 달러화가 한 방향의 움직임만을 나타낼 것으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중국을 위시한 이머징 국가의 성장 전략이 여전히 수출에 맞춰져 있고 이러한 전략하에서 글로벌 소비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의 통화가 상대가치 방어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소 어려운 주제이므로 풀어서 설명해보도록 하자.

    앞서 필자는 달러화 약세 요인에서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즉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폭이 크고 장기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 자체가 실제로든 심리적으로든 달러화 가치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경상수지가 중요한데 만약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만큼 자본수지 흑자가 유입되지 않는다면 달러화는 자본이 흘러들어올 수 있을 만큼 싸져야 한다.

    예를 들어 여전히 미국 국채를 대규모로 매수하고 있는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이 미국 국채 매입을 중단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미국의 국채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던가, 정부의 자금 조달 자체가 어려워져 연방준비은행이 돈을 찍어 국채를 매수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달러화 가치는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머징 국가 성장 전략이 달러화 가치 하락 방어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중국 등 아시아 중앙은행들은 왜 미국 국채를 계속 매수하고 있는 것일까. 앞서 살펴봤듯이 한편으로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위상을 약화시키려 노력하면서, 왜 다른 한편으로는 대규모의 외환보유고를 누적시키고 그 돈으로 국채를 포함한 미국 자산을 사들이는 것일까.

    답은 이들 국가의 성장 전략이 여전히 수출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수출경쟁력과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상대적으로 낮추려는 노력은 결국 중앙은행의 달러화 매수 증대로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달러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나라별로 양상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축적되는 일본 민간 부문의 과잉 저축이 흡수되는 과정에서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절상될 가능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중앙은행이 시장에서 달러를 흡수하게 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일본 가계의 유난스러운 리스크 기피증이 흑자를 통해 얻어진 달러화의 매도로 이어질 수 있어 이를 방치하기 어려운 일본은행이 대신해서 달러화 가치 변동 위험을 떠안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외환통제를 통해 국내 거주자들의 외국 금융자산 보유를 금지해 왔다. 중국 거주자들은 교역을 통해 얻은 달러를 반드시 인민은행에 가지고 가서 위안화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쌓이는 외환보유고를 다시 미국 국채 매수에 사용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위안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유지되고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는 큰 폭으로 유지된다. 중국은 일본과 달리 좀 더 명확하게 외환보유고 확충과 위안화 가치 방어를 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양국 모두 환율을 방어함으로써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시장에 쌓이는 달러 유동성을 중앙은행이 매수했던 것이다. 이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 하에서도 달러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지 않는 주된 이유다.

    물론 쌓인 외환보유고를 달러화 자산 매수에 사용한다면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화 가치 하락 위험에 노출된다. 달러화 가치가 크게 절하될 경우 각국 중앙은행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국은 그런 위험을 떠안음으로써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할 수 있다. 이머징 국가 입장에서 과연 어떤 전략이 유리할 것인가. 그리고 지금 어떤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가. 적어도 현재 상태에서 각국이 선택한 전략은 분명해 보인다.

    달러캐리 회수 시점

    지금은 달러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달러캐리 트레이딩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올해 들어 2,3분기 중 달러캐리 트레이딩이 집중되고,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하락한 것은 결국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한 연방준비은행의 대대적인 팽창정책이 달러 조달 비용을 낮춘 가운데 글로벌 주식시장, 특히 이머징 국가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달러 조달 비용 하락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달러캐리 트레이딩은 다음의 두 경우에 회수될 가능성이 있다. 우선 글로벌 주식시장이 조정 국면 또는 하락 국면에 들어설 때다. 이 경우 각국 주식시장에 투입돼 있던 달러화는 다시 미국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달러캐리 전에 횡행했던 엔캐리 트레이딩 역시 엔화 가치가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보다는 글로벌 주식, 상품시장의 움직임에 의해 움직이도록 하는 원인이 됐었다.

    다른 한 가지 경우는 미국이 정책금리를 올릴 때다. 정책금리를 올리면 달러캐리 트레이딩의 회귀 현상이 달러화 강세를 유발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시점은 미국 경제가 다시 정상궤도로 복귀하는 시점일 수 있다. 달러캐리 트레이딩의 회귀가 아니더라도 달러화 강세 압력이 발생할 만한 시점이란 얘기다.

    하지만 경기와 무관하게 달러화 약세에 따른 글로벌 상품가격의 상승이 미국 정책금리 인상의 이유가 된다면 그 때는 캐리 트레이딩의 회귀가 빠르게 일어나고 안전자산 선호 현상까지 겹쳐 이머징 국가의 대미 달러환율이 빠르게 절하될 수 있다. 2008년 중반 유가 급등기에 나타난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은 이렇다.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 하락 가능성은 매우 높다. 미국 경제가 조만간 정상적인 성장 과정에 복귀할 것인지 여부는 불투명하고, 연방준비은행의 저금리 기조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강대국들과 산유국들은 호시탐탐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지위를 약화시키기 위한 기회를 찾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달러화의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변수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특히 이머징 국가가 수출을 중심으로 한 성장전략을 포기하기 전까지는 달러화의 약세가 일방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의 저금리가 달러캐리 트레이딩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단기 자금 흐름은 장기적인 달러화 가치의 움직임과 무관하게 외부 여건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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