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신로 오타케 개인전 전경.
신로 오타케는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이 남자, 그 또래 일본인에 대한 편견을 보기 좋게 깨놓는다. 유화, 드로잉, 콜라주에 설치작품까지 170여 점이 놓인 전시장에 들어서면 방대한 스케일과 변화무쌍한 면면에 놀라게 된다. 알고 보니 1985년 일본인 최초로 영국 런던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s)에서 개인전을 연 인물. 2012년에는 일본인 작가로는 유일하게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도 초청받았다. 백남준 등이 참가한 적 있는, 세계에서 가장 실험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미술전이다. 이번 개인전은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두루 만날 수 있는 국내 첫 전시다.
신로 오타케 작업의 정수로 꼽히는 ‘Scrap Book’ 시리즈를 보자. 한 장, 한 장 섬세하게 빚은 입체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실은 문자 그대로 스크랩북이다. 신문·잡지에서 오려낸 그림과 사진, 돌돌 말린 실 꾸러미와 천 조각 등 각종 소품을 책 위에 다닥다닥 붙인 뒤 드로잉과 채색을 더했다. 얇은 것은 50쪽, 두꺼운 것은 895쪽에 달하는 이런 ‘책’을 작가는 1977년부터 60권 이상 만들어왔다. 각각의 페이지를 구성한 뒤 적절한 요소를 콜라주하고 자신만의 서사를 더하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씩 걸린 작업의 결과다.
100×70cm 크기의 최근작 ‘Time Memory’도 신로 오타케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일견 미니멀한 추상화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캔버스에 붙은 수많은 종잇조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집에 오는 우편물 봉투를 찢고 오려 콜라주를 완성했다. 스크랩북 속의 그림이 그러했듯, 누렇게 바래고 형태가 뭉개진 ‘Time Memory’의 봉투들은 저마다 하나씩 옛 기억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낡음이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한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Time Memory 6’(2011).
‘시간의 축적’은 신로 오타케의 작업을 포괄하는 주제어다. 그는 버려졌거나 더는 쓸모없어진 재료를 켜켜이 쌓고 자신의 창조성을 덧입힘으로써 추억을 재구성한다. 이를 위해 자신이 체류한 곳의 물건들을 꼼꼼히 모은다. 이번 전시에 맞춰 제작한 설치작품 ‘Found Lightscape / New Seoul’도 마찬가지다. 버려진 네온램프 무리와 기계음으로 구성한 이 작품 안에는 작가가 서울 도심에서 느낀 ‘빛과 소음’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작가 이력에 따르면 신로 오타케는 20대 중·후반 시절 매우 전위적인 예술가였다. 금속 파열음을 내는 등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인 노이즈 록 밴드 ‘JUKE/19’ 멤버로 활동했다. 세계적인 작가가 된 후에도 그는 1996년 일본 음악가 야마타카 아이와 함께 음악·미술 그룹 ‘Puzzle Punks’를 만드는 등 음악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9년 일본 나오시마에 독특한 콘셉트의 목욕탕 ‘I♥湯(탕·일본어 발음 ‘유’)’를 세우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 실험도 진행 중이다. ‘I♥湯’의 공식 홈페이지는 작가 신로 오타케를 “예술 분야에 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한계를 짓는 분위기(atmosphere of impasse)’에 맞서 싸움으로써 예술계 안팎의 다양한 그룹으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받는 인물”로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이 경계 없는 자유로움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Found Lightscape / New Seoul’(2012).
‘Scrap book #65’(2005.3~2010.5).
다양한 소품과 기법을 활용해 ‘시간의 축적’을 표현하는 작가 신로 오타케.
● 일시 | ~2013년 1월 20일까지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월요일 휴관)
● 장소 |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4-2
● 관람료 |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 문의 | 02-733-8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