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총력특집 | 미완의 합의, 불안한 미래 |

〈발굴단독〉 文 평화체제 ‘노무현 국정원’ 구상대로 실현 중

종전 관리기구 설치→유엔사 폐지→미군 역할 변경 →군비 제한·감축 →남북연합군 수순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06-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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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전 승자는 시진핑? 북·미 합의는 ‘쌍잠정’ ‘쌍궤병행’

    • 종전 선언 아이디어 낸 것은 ‘노무현 국정원’

    • 12년 걸려 당시 보고서대로 움직이는 중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포옹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5월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포옹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로 엄지를 치켜세우고 장난스러운 제스처를 한다.
     
    “싱가포르 인민들은 격동된 마음을 금치 못하며 무한한 존경심을 안고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싱가포르 거리의 환영 인파와 김 위원장이 오버랩된다.

    “조·미 수뇌분들…”

    북한 조선중앙TV가 북·미 정상회담 전(全) 과정을 기록영화 형식으로 6월 14일 방영했다. 6월 10일 김 위원장이 평양공항에서 출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40분 남짓 이어진다. ‘조미 관계의 새 역사를 개척한 세기적 만남’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평양 시민들이 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김 위원장을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조선중앙TV는 이번 회담이 지구촌을 들었다 놓았으며 김 위원장이 한반도 정세 흐름을 주도했다고 부각했다. 

    노동신문도 6월 13일 싱가포르 회담을 대서특필했다. 사진 33장을 1~4면에 실었는데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있는 컷이 28장에 달한다. ‘조미 수뇌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노망난 늙다리(dotard)가 분이 된 것이다. 공동성명 전문도 실었다. ‘극단적 적대 관계 끝장’ ‘새로운 조미 관계’ ‘적대적 조미 관계 종지부’라고 표현했다. 



    노동신문은 “(두 정상이) 비핵화를 이룩해나가는 과정에서 단계별, 동시행동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대해 인식을 같이했다”고 보도했다.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 보장(북·미관계 정상화·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적’ ‘단계적’으로 맞바꾸자는 게 그간 북한의 주장이었다. 

    이렇듯 북한은 싱가포르 회담에 만족한 모습이다. 표면상으로 북한 외교의 성취다. 실체 있는 양보 없이 혜택을 얻어냈다. 비핵화 로드맵과 대략의 이행 시간표가 없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도 명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핵무기를 가진 지도자’로 간주했으며 미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했다. 평양은 오랫동안 요구해온 한미연합훈련 중지도 받아냈다.

    中 “한미동맹은 냉전 시대 유물”

    북한은 주한미군을 인정하는 듯한 언급을 내놓으면서도 핵무기와 등가(等價)로 여겨왔다. 동아시아·서태평양에서 패권 의지를 드러낸 중국에 한미동맹은 ‘냉전 시대 유물’이며 해안에서 일정 범위에 미군 전력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반접근’ ‘지역거부’ 전략의 장애물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북·미 정상회담의 승자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중국이 북한·북핵 문제 해법으로 제시한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협상 동시 진행)과 쌍잠정(雙暫停·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에 북·미가 합의한 형태다. 

    중국은 연쇄 정상회담 국면에서 북한의 후견국 노릇을 했다. 시 주석은 베이징(3월 25~28일), 다롄(5월 7~8일)에서 김 위원장을 두 차례 만났다. 시 주석이 강조해온 ‘지구촌 평화 공존 운명공동체’ 일원으로 김 위원장을 대접하면서 전략적 협력 및 의사소통을 강조했다. 북·중 정상회담은 북·미 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전략 회의 성격이 짙다. 

    북한이 대외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대북제재의 대부분을 베이징이 수행했다. 중국이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평양이 준수하면 대북 제재가 느슨해질 공산이 크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베이징은 대북 제재를 조기 완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북·중 국경의 수출입 화물 검사를 대폭 완화했다. 

    임진왜란, 청일전쟁, 6·25전쟁에 참전한 것에서 미뤄보듯 중국은 한반도를 전략적 완충지대로 여겨왔다. 북한의 지정학적 역할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이 같은 맥락에서 변한 게 없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한미동맹·미일동맹으로 이뤄진 한·미·일 군사 공조에서 약한 고리인 한국을 떼어내려고 노력해왔다. 한반도 전체를 중국 영향력 아래 두는 동시에 미국을 태평양 동쪽으로 밀어내는 게 전략 목표다. 중국은 평화협정 논의 과정에서 이 같은 목표를 관철하려 할 것이다.

    Soft Balancing → Hard Balancing

    2002년 우라늄 농축 의혹이 불거진 후 2차 북핵위기가 격발했다. 2003년 시작된 6자회담(북핵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여) 와중에 북한은 평화체제 전환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2005년 7월 북한 외무성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없어지는 것이며, 자연히 비핵화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핵무장 완성 단계 이전까지는 비핵화와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평화협정, 북·미 수교의 교환을 추구했다. 핵 폐기와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연성 균형(Soft Balancing)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핵무장 능력이 완성 단계에 도달한 이후에는 핵무기와 미국의 핵 위협을 교환하는 경성 균형(Hard Balancing)으로 요구 수준을 높였다. 

    평양은 북·미 협상을 통해 ‘단계적’ ‘동시적’으로 비핵화 과정을 밟으면서 경성 균형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선제적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한 평양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받고’ 미사일 실험장 등을 ‘폐쇄하는’ 것은 경성 균형으로 가는 ‘행동 대 행동’의 첫 단추다. 

    또한 북·미 공동성명에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가 명시된 것은 평양이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관철한 꼴이다. 

    북한은 2016년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의 5대 조건으로 △한국 내 미국 핵무기 전면 공개 △한국 내 핵무기 및 핵 기지 철폐와 검증 △미국의 핵 타격 수단 한반도 불(不)전개 △대북 핵 불사용 확약 △주한미군 철수를 내걸었다. 

    평화협정 체결을 근간으로 북한과 빅딜을 이뤄내자는 구상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확정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평화협정 체결 △에너지 및 경제 지원 △북·미관계 정상화를 한 묶음으로 엮자는 주장을 몽상(夢想)이라고 깎아내렸다. 

    평화체제 논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이뤄진 남·북·미·중 4자회담 때도 ‘대안적 평화체제 논의는 시간을 갖고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2005년 7월 앞서 언급한 북한 외무성 담화가 나온 이후 노무현 정부는 핵 문제 해결 조치 진행→평화체제 구축 협의 진행→북·미 간 대타협 구도→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뤄진 구상을 마련했다. 국정원은 2006년 청와대 안보실에 이 같은 방안의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상징적 행사인 종전 선언을 따로 분리해냈다. 종전 선언은 ‘노무현 국정원’이 저작권을 가진 셈이다.

    ‘군사 문제’가 평화협정 논의 始終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까지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주체가 되는 종전 선언에 매달렸다. 종전 선언에는 미국의 동의가 필수불가결한데 워싱턴은 종전 선언에 큰 관심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다양한 형태로 평화체제 구축의 입구 격인 종전 선언을 추진했으나 출발점 주위를 뱅뱅 돌다가 공염불로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2007~2008년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서훈 국정원장은 2006~2008년 국정원 3차장(북한 담당)으로 일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마련한 구상이 12년 후 문 대통령, 서 원장에 의해 한걸음씩 완성돼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5월 10일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부·통일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핵심 정책을 토의할 때 첫 주제도 한반도 평화체제였다. 

    6·25전쟁은 국제법상 현재진행형이다.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停戰) 협정은 포성만 멈추게 한 것이다. 68년간 이어진 전쟁을 공식으로 끝내려면 평화협정을 맺는 게 상식이나 ‘노무현 국정원’이 종전 선언을 따로 떼어내는 묘안을 내놓으면서 복잡한 문제를 뒤로 미룰 수 있게 됐다. 뒤로 미뤄진 복잡한 문제란 군사 문제를 가리킨다. 평화협정 논의는 군사 문제로 시작해 군사 문제로 끝난다. 

    4월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 결과물인 판문점 공동선언에도 종전 선언이 명문화됐으며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에 합류해 남·북·미 3자가 종전 선언에 서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싱가포르 합류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종전 선언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기점(起點)이다. 

    평화협정 논의가 시작되면 군사 문제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난제(難題)가 한둘이 아니다. 남-북-미, 남-북-미-중 가운데 당사자를 어떻게 할지부터 협의해야 한다. 유엔사령부 존폐, 평화보장 관리기구 설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한 영토 문제, 군비 통제 및 감축 등 해결할 문제가 켜켜이 쌓여 있다. 북한이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핵우산 철거 및 한국 내 미군기지 사찰 요구를 내놓을 수도 있다.

    “주한미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유엔사가 폐지되면 한미연합사의 존재 명분이 곤궁해지고 주한미군 역할도 애매해진다. 한미연합사는 유엔사로부터 위임받은 한미 양국의 작전부대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해왔다. 1950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유엔사는 공식적으로는 6·25전쟁 참전국의 연합체지만 정전 관리 업무는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는 주한미군사령관(겸 한미연합사령관)이 맡았다. 유엔사 폐지가 결정되면 주한미군 계속 주둔 여부와 국가보안법과 노동당 규약 개폐 여부가 논의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안보실이 주관한 비공개 회의에서 논의한 평화협정 관련 군사 분야 추진 전략은 상설적 남북군사협의기구 설치→종전관리기구 설치→유엔사 해체→남북연합군 추진 등 4단계로 이뤄졌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준비’ 단계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 논의가 이뤄지고 상설 군사 문제 협의기구가 출범한다. 또한 비무장지대와 서해 NLL을 평화지대로 설정한다. 종전 선언이 이뤄진 후인 ‘진입’ 단계에서는 북·미 연락사무소가 개설되고 유엔사 기능을 전환한다. 핵 폐기 완료와 북·미 수교 및 평화협정이 맺어진 ‘전환’ 단계에는 유엔사를 해체하고 평화보장기구를 설치한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미군의 역할이 조정될 수밖에 없다. 군비 제한 및 감축을 거친 후 ‘정착’ 단계에서는 남북연합군을 추진한다. 

    보수진영에서는 종전 선언→불명확한 CVID(핵무기·핵물질 일부 은닉 혹은 핵무장 능력 유지)→평화협정→유엔사 폐지 및 미군 철수→북한 주도 통일대전으로 가는 수순을 우려한다.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안보와 직결된 군사 문제 논의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병력(주한미군)을 빼내고 싶다. 많은 돈, 우리가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훈련(war game)을 중단할 것이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등의 발언을 내놓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의 미국 측 사령탑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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