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호

중·국·통 | 이문기 세종대 교수

“시진핑, 시대의 영웅이거나 역사의 반동이거나”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12-02 19: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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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화민족 부흥의 신시대’가 ‘중국 정치 불확실성의 신시대’로

    • 3大 위험요인 ①경제 위기 ②엘리트 균열 ③대외관계 실패

    • 위기 닥치면 대만 카드 활용해 중화민족주의 격발할 것

    • 균형 잡힌 외교(Balanced Diplomacy)로 친미·친중 교집합 찾아 넓히라

    • 주한미군 문제 포함한 ‘빅 픽처’ 구상에 보수·진보 지혜 모아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중국은 친구인가, 적(敵)인가.

    중국이 강국으로 부상했다. 글로벌 차원에선 아닐지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에 도전하면서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어떤 양상으로 일어날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반도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조중(朝中·북한과 중국)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 병립하는 정전(停戰) 상태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퇴조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도 요동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적자 해소 및 제조업 부흥을 위해 중국과의 일전에 나섰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를 통해 패권 의지를 드러냈다.

    ‘신동아’와 미래전략연구원은 2017년 1월호부터 2년간 ‘중·국·통’을 진행하면서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답하고자 했다. 신동아와 함께 23명의 중국통(中國通)과 대담한 이문기(52) 세종대 교수가 24회면서 마지막회 주인공이다.




    “두려워하거나 깔보고 무시하거나”

    2017년 5월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회의. [AP=뉴시스]

    2017년 5월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국제회의. [AP=뉴시스]

    이문기 교수는 중국 정치 연구자다. 고려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에서 중국 정치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정치의 변동과 한중관계 연구에 주력했다. 최근에는 정치학에 역사학을 접목한 한중관계사에도 주목한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를 넘어 국가 발전 전략을 고민하자는 취지로 2001년 출범한 민간 싱크탱크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초대 원장은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신동아와 미래전략연구원이 2017년 1월호부터 2년간 ‘중·국·통’을 진행했습니다. 

    “석학과 관료들의 통찰력 가득한 분석과 견해를 접하며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중국통 23명과 대화하면서 한국 사회의 중국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굉장히 분열적이라는 점을 느꼈습니다. 특히 외교·안보 문제에서 견해가 충돌했습니다. 과도한 두려움과 경계가 하나의 편향이라면 깔보고 무시하는 정서 또한 편향이죠. 중국에 대한 인식이 분열적인 까닭을 세 갈래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적 특수성으로서 역사가 주는 무게가 상당합니다. 수천 년간 이웃에서 살았기에 조공 질서를 비롯해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둘째는 한미동맹과 한중관계 사이에서 균형점 찾기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셋째는 강대국으로서 중국의 정체성이 미완성인 데다 불확실하다는 점입니다. 중국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서구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문제는 논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게 전부이고 옳다는 독선적 이해를 넘어 중국을 객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중수교 주역인 신정승 전 주중대사(2017년 8월호)는 “중국이 큰 나라가 되리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이제는 부상한 중국이 한국에 힘을 투사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중국에서 공부할 때와 비교해 격세지감이 듭니까. 

    “중국이 부상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 전후만 해도 보잘것없었죠. 유학생, 상사원이 우대받았습니다. 역사를 통틀어 중국인에게 그때처럼 존중받은 적이 있을까요? 중·국·통에서 다수 전문가가 말씀했듯 분기점은 2008~2010년입니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인해 미·중 간 국력 격차가 축소되고 미국이 주도해온 질서가 흔들린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국에서 고조합니다. 2010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을 추월한 사건도 상징적이었고요. 한중수교 20주년이던 2012년 ‘한국과 중국의 갑을관계가 역전됐다.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칼럼을 일간지에 기고한 게 떠오릅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우월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빠른 속도로 위치가 바뀌었어요. 중국인이 한국을 대하는 방식이랄지 접근법도 변화했습니다. 환대받고 우쭐대던 시절이 끝나버린 겁니다.” 

    -최근 중국 정치의 변화는 ‘역사의 퇴행’이라고 할까요. 시진핑 1인으로 권력 집중이 일어납니다.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표방한 ‘신(新)시대’는 사실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집권을 알리는 ‘시(習)시대’ 선언이나 다름없었죠.”

    참기래(站起來)→부기래(富起來)→강기래(强起來)

    -이희옥 성균관대 성균중국연구소 소장(2017년 11월호)은 중국 정치가 ‘민주 없는 집중제’가 되리라고 우려했습니다. 서진영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명예교수·2017년 10월호)은 “1인 체제는 공산당 몰락으로 가는 길”이라고 일갈했고요.

    “중국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 발전 단계를 셋으로 나눈 후 현재가 세 번째 도약의 시대라고 여깁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뤄낸 중국 통일은 참기래(站起來·일어서다),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는 부기래(富起來·부유해지다), 시진핑 시대는 강기래(强起來·강해지다)로 규정합니다. 중국몽(中國夢)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통해 글로벌 리더 국가가 되겠다는 뜻이고요. 신시대 선언은 중국 역사에서 또 다른 거대환 전환을 이뤄내는 초입에 시진핑이 서 있으며 강기래를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카리스마적 권력을 통해 ‘통일 중국’ ‘부유한 중국’을 실현했듯 시진핑이 강력한 1인 통치를 해야 중국몽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는 겁니다. 역사적 책임을 시진핑이 지겠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자오후지(趙虎吉)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2017년 9월호)와의 대담이 떠오릅니다. 그는 “권력 집중은 더 큰 개혁을 위한 수단”이라면서 “권력이 강해야 정경유착을 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이 국가에 만연한 부패와 개혁 지체에 위기의식을 가진 것 같습니다. 중진국 함정에 빠져 좌초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고요. 질적으로 한 단계 성숙한 경제·사회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데 큰 걸림돌이 기득권층의 부패와 개혁 저항입니다. 시진핑 집권 후 고강도 반부패 운동을 지속해온 이유죠. 덩샤오핑 사후 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해왔는데 정치 안정을 가져온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과감한 개혁이 어렵다는 치명적 약점도 있습니다.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개혁이 지체되고 부패 문제에 손도 못 댄 배경에 집단지도체제가 있습니다. 2006년부터 경제성장 방식의 질적 전환에 나섰으나 구호만 반복될 뿐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강력한 권한 집중이 이뤄져야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이겨낼 수 있으며 과감한 개혁 정책도 펼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반부패운동-개혁심화-권력집중은 연동된 논리 구조에 따른 패키지예요.”

    -자오후지 전 교수는 “싱가포르식 1당 우위 다당제로 갈 것”이라고 중국 정치의 미래를 내다봤으며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2018년 1월호)도 “중국공산당이 싱가포르의 1당 우위 모델을 염두에 두고 정치제도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만, 현실은 시진핑 종신집권으로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시진핑은 당의 핵심을 넘어 인민의 영수(領袖)로 불리며 당헌에 시진핑 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삽입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시진핑 사상 학습 열풍도 일어납니다. 중국 정치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싱가포르는 1당 우위 다당제 모델인데 사실상 1당 독재입니다. 중국이 싱가포르 모델을 채택할 가능성은 있는데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진핑 3연임해도 이변, 못 해도 이변”

    -서구식 민주주의는?

    “중국이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당제에 기초한 ‘선거 민주’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지배적 담론이에요. 중국이 지금과 같은 권력 구조와 정치 체제를 갖고는 진정한 강대국이 될 수 없습니다. 강압적인 권위주의 질서를 유지하며 ‘글로벌 리더’ ‘존경받는 국가’가 된다? 기대하기 어렵죠. 국제사회가 지지할 수 있는 정치 구조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중국몽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중국에서 싱가포르식 모델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지 20년이 돼갑니다. 싱가포르는 1당 우위 다당제, 강력한 법치 및 관료제와 개방적 시장경제를 결합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정치체제 중 중국의 현실과 가장 유사합니다. 공산당이 압도적 우위에 서 있되 비(非)공산당 계열의 정치적 목소리가 체제 내로 수렴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낸다면 싱가포르 모델이 중국에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민주화’는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입니다.

    “멀어졌어요. 아주 먼 미래의 일이 될 겁니다. 후진타오 집권기에는 정치적 개방이랄지 정치 개혁 실험이 활발했습니다. ‘선거 민주’가 중앙은 아니더라도 지방에서는 확산되리라는 기대가 높았는데 시진핑 집권 후 전부 역전됐습니다. 중국의 부상이 도달할 종착점이자 궁극적 난제는 정치체제 개혁입니다. 다당제와 선거 민주는 어렵더라도 시민의 정치 참여, 국민에 의한 권력 통제 등 민주적 가치를 구현해야겠죠. 내부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지만 중국이 꿈꾸는 세계 리더 국가가 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입니다.”

    그는 ‘중화민족 부흥의 신시대’가 역설적으로 ‘중국 정치 불확실성의 신시대’를 재촉하고 있다고 봤다.

    “시진핑 1인 권력 강화와 장기 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치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중국 현대사에서 1인으로의 권력 집중은 예외 없이 정치 혼란을 초래했어요. 마오쩌둥 시대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 시기의 톈안먼 사건은 공산당 내부가 정책 방향을 두고 균열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 시대를 거치면서 확보된 권력 교체의 예측 가능성이 시진핑 집권 이후 사라졌습니다. 정치국 상무위원(총서기+6인), 정치국원(25인) 등 차기 지도부가 누가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위기 닥치면 대만과의 조기 통일론 꺼내 들 것”

    언론을 통제하기에 알려지지 않을 뿐 내부적으로 불안 요인이 상존합니다. 체제 내 갈등을 견제와 균형에 의해 희석하는 게 민주주의의 장점인데 중국에는 그런 제도가 없습니다. 중국 내부에서 시진핑 체제의 업적에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일각에선 3연임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분석도 합니다. 미국과 무역전쟁에서 입은 타격, 공세적 대외정책이 가져온 부정적 효과가 부각돼 3연임이 무산될 수도 있어요. 덩샤오핑 사후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한 이래 처음으로 시진핑이 3연임해도 중국 정치사의 대전환이자 이변, 시진핑이 3연임을 못 하고 물러나도 이변이 돼버린 상황입니다. 예측 가능성이 줄고 불확실성이 커졌죠.”

    -시진핑 독주 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변수로 경제 문제가 첫손에 꼽힙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2017년 3월호)은 “중국 경제가 융·복합 위기에 처했다”고 봤습니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2018년 10월호)은 “미국 경제가 워낙 좋아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버티기 어렵다”고 진단했고요.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면 시진핑 체제가 타격을 입습니다.

    “세 갈래의 위험이 존재합니다. 첫째는 경제 위기로 인한 민심 이반, 둘째는 엘리트 정치의 균열, 셋째는 대외관계에서의 실패예요. 그중 통제가 가장 어려운 게 경제 문제죠. 경제는 핵심이자 3가지 위험 요인의 공통분모입니다. 시진핑은 반부패 운동 과정에서 정적(政敵)을 양산했습니다. 정치적 반대파가 지금은 잠복해 숨죽이나 민심 이반이 나타나면 엘리트 정치가 균열할 수 있습니다.”

    -‘무역전쟁’은 대외관계 관리 실패라고 하겠습니다.

    “중국공산당은 덩샤오핑 이후 후진타오 시기까지 경제 발전에서 통치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대외전략은 정치 안정과 경제 발전을 위한 환경 조성 수준에서 이뤄졌고요. 시진핑 체제는 통치 정당성을 국내적 성공뿐 아니라 대외적 성공과 연계하려고 합니다. 중국 특색의 강대국 외교를 펼쳐 대외적 부상을 이뤄냄으로써 통치 정당성의 근거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낮은 자세로 적극적 역할을 자제하던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분발유위(奮發有爲)로 대외정책이 전환됐습니다. 무역전쟁을 봅시다. 미국이 강하게 나오면 중국이 항상 수그러드는 양상을 보였는데 이번엔 맞대응했습니다. 대단히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도 도광양회 시기에는 내놓을 수 없는 전략이죠.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중국 압력이 거세지면서 대외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대미관계에서의 실패가 통치 정당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외적 위기가 대내적 위기로 전이될 때 위기 모면 카드는 민족주의 정서를 고양하는 것입니다. 중화민족주의 정서를 격발할 카드가 있습니다. 대만 문제가 그것이죠. 조기 통일론을 꺼내 들면 중국은 하나로 똘똘 뭉칩니다.”

    -양안관계 전문가인 문흥호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장(2018년 10월호)은 “대만은 지금도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는 미국의 불침항모”라고 했습니다.

    “미국과 정면충돌을 피하는 수준에서 민족주의를 격발하는 방식으로 대만 카드를 활용할 겁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얻어맞았습니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2017년 5월호)은 “트럼프는 중국 외환보유고를 날로 먹으려는 장사꾼”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2018년 5월호)는 “중국식 강대국 외교는 미국을 더는 추종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중국이 너무 일찍 ‘도광양회’를 버리고 ‘분발유위’를 선언한 게 아닐까요. 김태호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2018년 8월호)는 “중국 군사력이 미국에 견주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오판한 것 같습니다. 도광양회에서 분발유위로 전환이 빨랐다고 봐요. 자국의 부상을 지나치게 낙관하면서 대외전략에서 조급함을 보였습니다. 미국이 가진 체제 내구성과 리더십 복원력을 과소평가했고요. 무역전쟁 초기에는 중간선거용 정도로 여기고 전례 없는 맞대응에 나섰는데 미국의 압박이 무역역조 만회나 선거용으로 이뤄지는 단기적 압박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미중관계가 앞으로 상당 기간 교착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여요. 장기전으로 가면 기초체력이 센 쪽이 유리한데 미국이 훨씬 튼튼하죠. 중국 내부에서도 시진핑 지도부가 조급했다는 반성 기류가 있습니다. 김재철 교수가 설명했듯 민족주의파와 국제주의파가 대외전략에서 경쟁해왔습니다. 시진핑 집권 1기에는 민족주의파 노선이 득세했는데 국제주의파가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외전략이 공세적 부상에서 다소 후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미동맹과 ‘충돌’하는 한중관계”

    2017년 9월 7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사드기지로 반입된 발사대 4기를 주한미군이 점검하고 있다.

    2017년 9월 7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사드기지로 반입된 발사대 4기를 주한미군이 점검하고 있다.

    -시진핑은 시대의 영웅일까요. 역사의 반동일까요.

    “시대의 영웅, 역사의 반동은 양극단이죠. ‘중국 부상의 성패가 곧 시진핑의 성패’면서 공과(功過)도 시진핑이 온전히 떠안게 됐습니다. 중국몽 실현, 신시대 중국의 부상이 시진핑이라는 개인의 성패와 등치된다는 얘기입니다. 시진핑이 자기 의도대로 중국몽을 실현하면 시대의 영웅이 될 겁니다. 장쩌민, 후진타오 레벨이 아니라 마오쩌둥, 덩샤오핑을 잇는 현대사 영웅으로 자리매김하겠죠. 역사의 반동은 과장된 표현이겠으나 실패한다면 개인 책임을 최소화하면서 평범한 지도자로 퇴장할 공산이 큽니다. 정치적으로 책임지면서 불명예 퇴진하는 모습이 연출되지는 않을 겁니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2017년 1월호)는 “중국이 아시아에 거점을 둔 지역 패권을 추구한다”면서 “심리전, 탐색전에 능해 약해 보이면 더 밀어붙이니 흔들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사드 갈등은 봉합된 모양새입니다만 “한중수교사(史)는 사드 이전과 이후로 양분될 것”이라는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말씀대로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요. 북한 비핵화 협상과 맞물려 중국이 사드 배치 철회를 다시 요구할 수도 있을까요. 일대일로 특사로 중국에 다녀온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2017년 7월호)이 말한 “거대한 빙하가 수면 윗부분만 녹기 시작한 단계”가 지금껏 이어지는 듯한 국면입니다

    “중국이 사드 문제를 재론해 비핵화 협상 국면을 혼돈에 빠뜨리거나 후퇴시키지는 않을 겁니다만 잠복된 문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한중수교사는 사드 이전과 이후로 양분될 것’이라는 서진영 명예교수 말씀은 동북아 정세의 구조적 전환을 적확하게 짚은 것입니다. 사드 이전까지 한중관계가 한미동맹과 양립이 가능했다면 사드 이후 한중관계는 한미동맹과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사드 문제는 한국과 중국의 양자 관계가 아니라 한국-중국-미국 삼자관계, 나아가 동북아 질서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미·중 대립구도가 해소되지 않으면 한중관계는 외교·안보적 불일치와 갈등이 항상화(恒常化)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 경쟁을 본격화하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뜻인가요.


    “과거에는 안미경중(安美經中) 논리가 통했습니다. 중국도, 미국도 용인했거든요. 한국은 20년 가까이 미국으로부터 안보적 이득과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동시에 취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사드라는 상징적 무기가 한반도에 배치되면서 선택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사드 배치 이후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능이 한반도에서 북한의 남침을 막고 평화를 지키는 게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고 포위하는 수단으로 바뀌었다고 인식합니다. 무기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균형이 훼손됐다고 본 거죠. 사드 갈등은 해결된 게 아니라 잠복한 것입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중국은 소아(小兒)적 대국… 때리면 맞으면서 버텨야”라고 했습니다. ‘소아(小兒)적’이라는 표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덩치는 대학생인데 지적 수준은 중학생이라는 비유죠.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비대해졌으나 소프트 파워가 약하고 다른 나라에 보편적 가치를 제공할 자원이 부족합니다. 국제 규범이나 제도에 맞는 외교 행태랄지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도 서투르고요.”


    중국의 ‘주한미군’ 인식

    -현인택 고려대 명예교수(전 통일부 장관·2017년 2월호)는 “중국의 강압 외교는 제국주의적 패권외교 행태”라면서 한미동맹의 강화를 주문했습니다. 윤영관 명예교수는 “세계 도처에 수많은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협력하면서 정치·군사적으로는 미국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윤 전 장관이 ‘균형 외교’를 강조했다면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전 주일대사·2017년 4월호)는 ‘비례 외교’를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동맹국,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이니 그 비중에 맞게 외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이 더 강해지면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딜레마가 더 커집니다.

    “원로 세 분께서 상이한 인식을 제시했습니다. 현인택 전 장관은 전통적 시각에서 중국의 부상을 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미국과 함께 중국의 부상을 견제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졌습니다. 일본의 주류 인식과도 맥을 같이하는 견해로 한·미·일 연대를 강조합니다. 윤영관 전 장관은 균형 외교의 불가피성에 주목합니다. 섣불리 한쪽을 골라잡기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최상용 전 대사의 견해는 현 전 장관, 윤 전 장관의 주장을 절충한 것이고요.

    윤 전 장관 말씀과 기본적으로 견해를 같이합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기반으로 한 자기주도적 균형외교 전략’이 필요해요. 기존 대국과 신흥대국 사이에 끼여 딜레마 상황에 처한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은 한중수교 이후 25년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용적 균형 외교를 해왔습니다. 한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포기하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남북관계가 대결로 치달을 때는 균형 외교를 펼치는 데 제약이 큽니다. ‘자기주도적 균형 외교’란 강대국에 일방적으로 편승하거나 순응하는 전략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한쪽을 골라잡는 식의 편승외교는 국익과 거리가 있을뿐더러 영구 분단을 자초하는 길이에요.

    친미와 친중을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친미·친중의 교집합을 확장해야 해요. 친중이 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 범위에서 자율성의 공간을 넓혀가는 게 필요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과 세력전이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데다 장기적으로 진행됩니다. 강대국의 세력 관계를 능동적으로 살피면서 실용적인 외교를 펼쳐야 합니다.”


    “비핵화 과정의 ‘뜨거운 감자’ 주한미군”

    -그게 쉽지 않은 일이죠.

    “어렵죠. 친미가 반중으로 받아들여지거나 친중이 반미로 여겨지면 곤란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친미·친중의 교집합은 협소할 수도, 넓을 수도 있습니다. 교집합이 협소하더라도 확장해나가야 해요. 한국은 균형자(balancer)가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국력을 뛰어넘는 일이에요. 미·중 사이에서 균형자 노릇을 하려다가 양쪽에서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밸런싱(balancing·힘의 균형) 개념으로서의 균형 외교 또한 우리가 가진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힘의 균형’을 추구하자는 게 아니라 ‘균형 잡힌 외교(Balanced Diplomacy)’를 하자는 얘기예요.”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2017년 12월호)은 “중국 중심 동북아 시대 개막은 시간문제”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보수인데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라면서 이 회장이 주한미군 관련 발언을 취소한 게 떠오릅니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2018년 9월호)는 “평화체제 협상 시 주한미군 철수 논의가 불가피하다”면서 “주한미군이 미국에 계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미국을 동아시아 밖으로 밀어내려는 것은 중국의 일관된 전략 목표라고 봐야 할까요.

    “두 분이 솔직한 견해를 엿보이거나 내뱉은 겁니다. 북한 비핵화를 통해 동북아의 새로운 평화 질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면서 현재 잠복된 게 주한미군입니다. 중국의 국력이 더욱 강해지면 자신들이 주도해 동북아 안보 질서를 짜려고 하겠죠.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핵심에 주한미군이 있고요. 주한미군 문제를 보는 중국의 시각에 오해가 많은 듯한데 베이징은 그동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한미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죠.

    “그런 언급 또한 특정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공식 견해는 아니었습니다. 중국이 주한미군 문제에 공개적으로 대응한 최초의 사건이 사드예요. 중국이 철수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않은 것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주한미군이 없으면 남북 간 불장난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본 거죠. 그런데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은 사드를 미국이 자국을 견제하기 위해 배치했다고 봅니다. 중국은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이 북한에 대한 견제와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을 억제하는 데 있다면 용인하나 그 기능과 역할이 중국 견제로 확대되면 강력히 반대합니다.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이 점진적으로 확대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변화한 게 사실입니다.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평화협정 문제가 현실화하면 주한미군은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평화협정을 맺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주한미군 주둔 명분이 부족해집니다. 종전선언 논의부터 유엔사 존치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유엔사 존속이냐 해체냐, 일본으로의 이전이냐를 두고 논의하는 것으로 압니다.”


    고려의 실용적 균형외교 및 자강(自强)

    -북·중관계에 대해 박종철 경상대 교수(2018년 9월호)는 “김일성-마오쩌둥 시대의 혈맹 신화가 재현되고 있다”고 봤으나 이희옥 교수는 “북·중은 상호 불신 관계”라면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여깁니다. 한 외교 당국자는 ‘전략적 이해관계 불일치하의 일치’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북·중관계는 혈맹도 맞고, 상호 불신이 깊은 것도 맞습니다.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과 불일치한 부분이 공존하는 이중적 관계죠. 일치하는 부분은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사회주의국가로서 이념적 연대가 강하고 지정학적으로 상호의존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망하는 구조예요. 불일치는 중국 개혁·개방 이후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서방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경제 발전에서 중요했는데 북한이 핵 개발과 폐쇄 정책을 고수하면서 불일치가 생겼습니다. 북한이 비핵화 용의를 나타내면서 불일치 지점이 현저하게 감소합니다. 지정학적 안보 의존과 역사적 혈맹이 부각될 수밖에 없죠. 이 같은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중수교 이후 한국이 친미와 친중을 병행했듯 북한 또한 친중과 친미를 병행하는 개방국가가 되도록 유인해야 합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연구자인 한명기 명지대 교수(2018년 2월호)는 “끼인 자는 선택의 기로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면서 “광해군, 인조 때처럼 외교 사안을 두고 각 정파가 아전인수(我田引水)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외교 사안의 정쟁(政爭)화는 심각한 문제예요. 역사를 훑어보면 안보 위기는 항상 삼각구조에서 발생했습니다. 과거에는 중국과 그 어떤 세력 사이에 끼었을 때 위기가 발생했죠. 삼각구조가 극심했던 때는 고려시대입니다. 470년 역사 중 350년을 북방 유목민족과 중원의 중화제국 사이의 삼각구조에서 살았죠. 초기는 고려-송-요(거란), 중기는 고려-송-금(여진), 말기는 고려-원(몽골)-남송 관계였죠. 임진왜란은 조선-명-일본, 병자호란은 조선-명-후금(청)의 삼각구조였고요. 청일전쟁과 6·25전쟁은 한반도-중국-해양세력 삼각구조였습니다. 한반도가 중원의 중국과 양자 관계에서 안보 위기를 겪은 적은 없습니다. 고구려 때 수·당과 전쟁을 벌였는데 만주를 지배하면서 중원과 패권 경쟁을 했기에 예외로 봐야 합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안보 위협이었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삼각구조에서 가장 실패한 사례가 병자호란, 가장 성공적인 시기가 고려입니다. 고려는 실용적 균형 외교와 자강(自强)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해 470년을 생존했습니다. 요·금이 침략했을 때 자강에 입각한 안보를 해나가면서 북방의 신흥국가와 중원에 이중조공을 하는 등 타협도 했죠. 주목할 점은 고려가 안보 위기를 대비하면서 자강 노력을 충분히 취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삼각구조는 한반도-중국이라는 대륙세력-미일동맹이라는 해양세력입니다. 역사적 경험에서 살펴보면 자강과 실용적 균형 외교가 불가피합니다.”

    -한국 정치는 병자호란 때처럼 국가 이익이 아닌 정파 이익에 따라 외교 사안을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보수와 진보로 양분돼 진영 논리에 몰두한 채 상대방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폄하하면서 국내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외교·안보 문제를 이용하려 하죠. 역사의 교훈에서 보면 한국의 현실은 매우 비관적입니다. 병자호란 때 조선은 당파적 이해관계의 틀로 제가끔 위기를 해석하고 내부 경쟁에 몰두합니다.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가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고자 후금과 어리석은 정면 대결을 펼칩니다.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사이의 10년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잃어버린 10년’이었죠.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10년 동안 내적 자강과 실용 외교를 펼쳤어야 합니다. 내정이 분열하고 당파 논리가 횡행하면 삼각구도의 파고를 넘기 어렵습니다.”


    천하질서와 조공체계

    -삼각구도가 나타난 것은 중국이 “민족주의 중국몽을 채택”(김재철 교수)한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전인갑 서강대 교수(2018년 4월호)는 “베이징이 중국의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재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봤습니다. “중국적 가치의 자장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인데요. 한국은 미국 중심의 질서에 편승해 지금껏 번영을 이뤘습니다.

    “중국의 장기적 의도가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자국 중심의 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경제력과 군사력 등 하드파워는 갖추겠지만 주변 국가들이 수용하고 존중할 만한 가치와 이념을 제시할 준비가 매우 부족합니다. 중국 부상의 치명적 약점이죠. 소프트파워 알맹이를 유학 전통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아직은 구체성·보편성을 얻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2018년 11월호)와의 대담도 의미가 상당했습니다. ‘중국이 재해석한 천하질서는 조공체계와 어떻게 다른가’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는데요. 조 교수는 “한국부터 설득해보라고 중국 사람들에게 말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중국이 만들려는 패러다임은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도 통할 수 있다. 한국을 설득할 수 있으면 세계를 설득할 수 있다.”

    “중국이 독자적 가치와 이념을 제시한다면 일차적으로 한국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어야 세계에서 통한다는 조경란 교수의 지적은 매우 적절합니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중국이 한국의 경험과 소프트파워 자산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민주, 평화, 인권, 높은 시민의식 등 한국의 강점이 곧 중국의 약점이거든요.”

    -중국에서 힘을 얻는 ‘천하질서’ 담론은 조공체계가 떠올라 불편합니다.

    “선입견을 거세하고 보면 국제관계의 정당성 측면에서 전통적 조공체계와 근대적 세계질서의 우열을 가리긴 어렵습니다. 각 시스템이 그 시대에 부합해 작동한 겁니다. 전통적 조공체계는 공식적으로 국가 간 관계에 위계성을 표방하지만 조공국(주변국)의 내적 자율성을 충분히 인정했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1648) 이후 현존 질서인 국민국가 체계는 공식적으로는 국가 간 평등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힘에 의한 불평등 체제죠. 중국이 내놓은 신형국제관계와 인류운명공동체는 아직 공허합니다만, 강대국의 강요와 전횡 등 국민국가 체제가 가진 위선적 요소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도 있습니다. 중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가지려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언론·사상의 자유 등 민주적 가치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중국과 민주주의 국가 사이의 인식 격차가 엄청나죠. 중국이 전통 사상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국제 질서의 이념과 가치를 제시하겠다는 구상을 가졌는데 앞서 말했듯 아직은 구체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데다 보편성을 얻기도 어려운 수준입니다.”


    “동북공정 버금가는 상처 준 사드 보복”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중국은 이웃을 강압하는 미국식 패도(覇道)가 아닌 도덕과 인의의 왕도(王道)로 국제 질서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합니다만 한국과의 사드 갈등과 일대일로 전략에서 드러난 모습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인해 한국에서 반중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오랫동안 아물지 않을 내상이 한중관계에 생긴 겁니다. 경제 보복은 사실 미국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중국이 흉내를 낸 격인데 미국의 보복과 다릅니다. 미국은 국내법을 이용하든지 유엔을 동원하든지 절차적 합법성을 찾습니다. 중국은 그게 없어요. 비공식적으로 보복합니다. 대중의 민족주의 정서와 결합해 불매 운동이니 하면서 맹목적으로 진행되기에 보복당한 국가가 참기가 더 어렵습니다. 규범성이 떨어지기에 당하는 쪽은 황당하기까지 하죠. 사드 보복 이후 한국 내 반중 감정이 고조한 것을 중국에서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것도 문제예요. 한국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중국의 대(對)한국 정책은 계속 실패할 것입니다. 사드 보복은 2005년 동북공정에 버금가는 상처를 한국에 줬습니다.”

    -겨울이 되면서 중국발(發) 미세먼지가 다시 밀려옵니다. 추장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원장(2018년 6월호)은 “중국도 미세먼지 저감에 총력전을 펼치나 아직은 멀었다”고 했습니다. 동아시아 정세도 미세먼지 가득한 날 만큼이나 시계(視界)가 불투명합니다. 빅딜이 이뤄질 것 같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더딘 속도로 이어집니다. 한국은 앞으로 미·중 사이에 더 갑갑하게 끼일 수밖에 없을 테고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 논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합니다만 다른 악마가 있어요. 동아시아 신(新)질서에 대한 빅 픽처(Bic Picture)가 부재합니다. 한국과 북한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 간 전략적 이해관계를 조율할 큰 그림이 필요합니다. 남북관계가 잘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미·중관계가 대결과 갈등으로 역행하는 상황이기에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신냉전’이라는 개념도 등장했고요. 미·중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낼 힘을 기지지 못한 우리는 겸손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보수는 낡은 사고에 갇혀 있으며 진보는 보수를 설득할 만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큰 그림을 그려야 해요.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배척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정권을 잡은 쪽에서 비전을 내놓지 못하면 상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단적인 예가 주한미군 문제예요. 굉장히 위선적으로 핵심을 비켜가며 말합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은 어찌할 겁니까.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주둔은 별개라는 주장은 단기적이고 임시방편적 논리에 불과합니다. 빅 픽처 구상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 권력에 초연할 수 있는 한국 사회 원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전문가들 또한 권력이나 정파적 이해로부터 초연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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