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김정은, 尹 흔들기 위해 文 이용할 것”

구해우 前 국정원 북한담당기획관의 독해법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2-05-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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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정부, 친북 제대로 한 것도 아냐

    • 한반도 핵전쟁 가능성 30% 내외 상태

    • 尹 정부, ‘비핵·개방 3000’서 진화 못해

    • 손병희 중도회통사상 호출한 이유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은 “김정은은 앞으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남남갈등의 한 축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지호영 기자]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은 “김정은은 앞으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남남갈등의 한 축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지호영 기자]

    북한 문제는 한국 정치의 아포리아다. 층층이 딜레마가 쌓인 복합 방정식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그 누구도 궁극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반 걸음 더 나아가거나 뒷걸음질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20대 대통령 윤석열이 처한 현실은 좀 더 고약하다. 밖으로는 미·중 양강 구도가 정착했고, 안으로는 양극화 수준으로 진영 논리가 심화했다. 어떤 청사진을 내놔도 절반은 반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구해우(58) 미래전략연구원 원장을 떠올린 건 그 때문이다. 그는 고려대 법대 재학 시절 주사파 지하 조직인 ‘자민통(자주민주통일)’을 이끌었다. 2000년대 초반 전향해 SK텔레콤 북한담당 상무를 지내며 평양을 오갔다. 2009년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2014년 국가정보원 북한담당기획관(1급)을 지냈다. 뼛속까지 보수인 남재준 국정원장 시절이다. 좌우를 오간 독특한 이력인데, 그의 고백대로라면 2020년 겨울을 기점으로 “중도 사상 수행자가 됐다”고 한다.

    4월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문재인 정부를 “얼치기 친북 정권”이라고 했고, 윤석열 정부는 “보수우파 카르텔 위에 얹혀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 퇴임 직전 이뤄진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에 대해서는 “보수우파, 진보좌파를 분열시키고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라면서 이에 응한 문 전 대통령을 두고 “한심한 수준의 국정 운영을 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도 대선 기간 중 ‘대북 선제타격’을 언급한 윤 대통령을 향해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어설픈 친북 행보나 하다가…

    북한이 미사일 도발에 이어 7차 핵실험 징후까지 보인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이 친서를 교환한 게 적절했느냐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친북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하는 듯하면서 실제 문제를 해결한 건 없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북한에 굴종적인 정권이다. 북·미관계나 동북아 정세를 제대로 파악도 못 한 채 어설픈 친북 행보나 하다가 죽도 밥도 아닌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펼친 게 문 정부의 본질이다.”

    북한은 문 전 대통령이 향후 남북대화의 상징적 인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본 게 아닐까.

    “김정은은 앞으로도 문 전 대통령을 남남갈등의 한 축으로 이용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대북 강경 정책을 펴면 문 전 대통령을 여야를 분열시키는 축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다.”



    문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물러나 비교적 인기 있는 퇴임 대통령이 됐다. 북한이 그 점까지 염두에 뒀을까.

    “야당이 된다 해도 일정한 정치적 몫이 생긴다. 북한이 신(新)정부를 흔들려고 할 텐데, 그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이 야당의 중요한 지도자로 역할을 할 수 있다. 북한은 이 점까지 활용하기 위해 서한을 보냈다고 봐야 한다.”

    4월 2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전날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처음이다.

    “대단히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김정은이 자신만의 ‘핵 독트린’을 발표했다. 핵무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이래 ‘반격용’으로 정의됐다. 선제적 사용 가능성은 터부시됐다. 핵전쟁에 대한 터부가 올해부터 깨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월부터 진행되는 과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은 3월 말 발표한 ‘2022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에서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공식 언급했다.”

    미국 국방부는 3월 29일(현지 시간) ‘NPR’ 요약본을 통해 “미국과 동맹, 파트너들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극단적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의 핵 공격에 대한 억지와 보복 목적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단일 목적(sole purpose)’ 원칙을 폐기한 셈이다. 그가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씨가 언제 대만과 한반도로 튈지 모른다. 이런 국면에서 김정은이 핵 선제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나는 연초부터 30% 내외까지 와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전쟁 가능성 30% 말인가?

    “북한은 재래식 전력만 갖고 남한을 이길 수 없다. 즉 핵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에 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대선 당시) ‘대북 선제타격’을 언급한 게 대단히 적절치 않다. 김정은의 핵 선제 사용 가능성에 명분을 살려주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뱉어놓은 말도 있고 여론도 봐야 하니 (대북 강경)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도 있다. 그러면 한반도에서 핵전쟁 가능성이 높아진다.”

    文의 달빛정책

    문 전 대통령은 4월 26일 방송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의 대담에서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 대화와 관련해 “김 위원장이 안전만 보장된다면 얼마든지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진단했다.

    “2018년 4월 27일 도보다리 대화 일주일 전 북한 노동당이 7기 3차 전원회의를 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핵 모라토리엄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는데, 정확히는 ‘핵실험 모라토리엄’이다. 내가 문건을 세 번 이상 정독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핵 무장력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더는 핵실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포인트다.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이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하는 게 진실에 부합할까, 노동당 전원회의 문건으로 나온 내용이 진실에 부합할까. ‘김정은이 선의를 가지고 말했다’는 식으로 회고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거나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4월 24일 보도된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하면서 “북한이 핵 군축의 첫 단계 조치를 취하면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인도적 지원을 넘어서는 인센티브를 북한에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조치로 “북한 핵시설에 외부 사찰관을 허용하는 것”을 거론했다.

    윤 대통령의 WSJ 인터뷰는 어떻게 봤나.

    “내용을 보면 이명박 정부 때의 대북 기조인 ‘비핵·개방 3000’ 정책과 거의 유사하다. 2018년 이후 남북한 체제 경쟁에서 군사적·외교적으로 북한 우위 구도가 확연해졌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회담 당시 문 전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에게 양보한 게 아니다. 끼어들려고 무지 노력했다. 그런데 미국뿐 아니라 김정은도 거절한 거지. 뒤바뀐 한반도 정세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현실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는 이 대목에서 좌·우파를 모두 공박했다.

    “진보좌파는 2000년대 초반 햇볕정책에서 진화한 게 없다. 문재인 정부는 햇볕정책에서도 퇴화한 달빛정책을 폈다. 보수우파는 탈냉전 시기 미국 중심 1극 체제에서 그랬듯 미국과만 잘 지내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한다. 그것이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통일 정책의 본질이다. 거기서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진화한 게 없다.”

    윤 대통령은 WSJ 인터뷰에서 미국·호주·인도·일본의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에 대해 “기회가 주어진다면 긍정적으로 참여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쿼드 가입이 중국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요하면 쿼드가 아니라 펜타곤 얼라이언스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정세의 특징부터 살펴야 한다. 미·중 신냉전 시대는 양강 구도하에서 다극 질서가 공존하는 체제다. 또 경제 패권과 기술 패권이 함께 가는 추세다. 국익 경쟁이 무한으로 펼쳐진다. 이를 고려해 새 국가 전략이 나와야 한다. 지금은 이 전제가 빠져 있는 상태에서 쿼드에 참여할 것이냐 말 것이냐 정도의 논쟁을 하는 셈이다.”

    쿼드 가입과 사드 추가 배치 가능성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이 미국 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있는데.

    “윤 정부가 미국 중심의 탈냉전 체제 당시 해왔던 방식을 관성적으로 반복하니 언론에 그렇게 비친다. 가치 관점에서 보건 전략 관점에서 보건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이 가장 중요하다. 단,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적 충돌이 아니라 지혜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보수우파는 문재인 정부가 했던 건 다 잘못된 거니까 모두 반대 방향으로 돌리려는 식이다. 쿼드 가입이나 사드 추가 배치 모두 할 수는 있는데, 새 국가 전략이 만들어진 뒤 고민해야 할 전술일 뿐이다.”

    패거리 의존하니 변화가 없어

    4월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을 공개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4월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을 공개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이명박 정부 때는 미국 중심의 논리가 강했고, 박근혜 정부 때로 가면 ‘중국 경도’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급변했다. 보수우파의 안보정책이 말 그대로 양극단을 오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친미 의존적 사고 경향을 보이는 인물이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박근혜 정부 때 윤병세 외교부 장관 밑에서 차관을 했다. 박근혜 정부 전반기 친중 정책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인사들이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정책 팀에 속해 있다. 진보좌파에도 패거리 카르텔이 있지만 보수우파에도 카르텔이 있다. 진보좌파는 얼치기지만 이념적 요소로 묶여 있다. 보수우파는 그야말로 이익 중심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간 추진한 정책에 대해 분석과 평가 없이 패거리에 의존하니 (외교안보통일 정책에)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

    진보 정부에서는 주사파 출신 등 대북통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에는 북한 당국과도 소통이 가능한 무게감 있는 대북전략통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과 협상하려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로, 북한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덕목이 중도다. 중도는 사물의 껍데기를 버리고 알맹이를 찾아내는 통찰력이다. 진보좌파와 보수우파 공히 주관적으로 북한을 해석한다. 예를 들어보자.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보수우파 중 최고의 북한 경제 전문가다. 김 교수가 2016년부터 중앙일보 칼럼을 통해 북한 경제가 붕괴 직전이라고 주장했다. 붕괴 직전이면 열병식을 어떻게 하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하나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북한 경제는 겉으로 발표된 통계를 갖고 분석하면 안 된다. 둘째로, 북한과 협상하려면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남북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협상 주체의 신뢰성 문제에 있다. 남과 북은 기본적으로 입장과 이해가 다르지만, 협상 주체로는 북측에서도 신뢰할 만한 인물이 나서야 한다.”

    젊은 세대 사이의 반중 정서에 보수 진영이 포퓰리즘적으로 따라간다는 지적이 있다.

    “나는 2003년 중국이 동북공정을 시작한 이래로 일관되게 중국을 비판해 왔다. 그런데 지금 반중 정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 감정적이다. 정작 보수우파가 혐중 정서에 편승한다. 중국의 패권적 민족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갖고 분명히 비판해야 하지만, 20~30대의 감정적 혐중에 대해서는 이성을 갖고 설득해야 한다.”

    2000년대 초반 반미 정서를 활용하려 했던 진보좌파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똑같다. 나는 그때 (진보좌파의) 선동을 앞장서서 비판했다. 세계질서가 급변하고 2018년부터는 한반도 정세의 판이 바뀌었는데, 감정적 정서에 휩쓸리면 국가 위기가 심화한다.”

    윤 대통령은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 본토는 아니어도 일본이나 한국을 타격할 가능성은 있다. 그런 이유로 ‘완전한 비핵화’는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은데, ‘완전한 비핵화’라는 정책기조가 합당한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대학 때부터 핵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고 했고 대통령 된 뒤에도 똑같이 말했다.(웃음) 추상적 차원의 비핵화를 언급하는 건 나쁠 게 없다. 다만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마련해야 할 때는 냉철해야 한다. 지금은 완전한 비핵화보다 단계적으로 동결부터 시키는 게 중요하다. 또 북한이 전술핵 사용 단계까지 가 있기 때문에 북핵 위협에서 우리 안보를 지킬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나는 나토식 핵 공유제를 주장해 왔는데, 그조차 하나의 전술에 불과하다. 새 정부가 종합적 차원에서 북핵 위협과 관련한 안보 정책을 내놔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을 두고 진보좌파는 정보와 정치를 분리했다고 호평하고, 보수우파는 북한 비위를 맞추는 무기력한 조직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국정원은 보수우파 정부 때나 진보좌파 정부 때나 정치적으로 오염돼 있다. 남재준 원장 체제에서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남 원장이 북한 체제를 붕괴시켜야 한다고 하니 거기에 맞는 보고서를 생산했다. 국정원을 나온 뒤에 한 간부가 찾아와서 ‘대북 와해 공작이 잘 되고 있다’고 하기에 내가 ‘보고서나 올라가는 거지, 무슨 와해 공작이 잘 된단 말이냐’라고 했다. 장성택 숙청 이후 국정원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간부가 북한이 체제 붕괴의 길로 가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박지원 원장이 ‘김여정 위임 통치설’을 꺼냈다. 내가 그때 페이스북에 ‘정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썼다. 국정원에 정예 스파이 요원만 해도 수천 명이고 예산을 수조 원 썼는데 내가 혼자 분석한 것보다 못한 셈 아닌가? 정치적으로 오염됐기 때문이다.”

    중도회통사상이 필요한 이유

    그는 최근 ‘미완의 평화 혁명가 손병희’를 출간했다. 책에 따르면 손병희는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민족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 자유민주주의자를 거쳐 중도에 정착한 그의 삶과 겹쳐 보인다.

    왜 지금 손병희를 생각해야 하나.

    “좌파적 근대국가 혁명에 대한 시도였던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가 손병희와 최시형이다. 손병희는 1904년 진보회 결성을 주도했는데, 이 단체가 주도한 단발운동에는 15만 명이 참여한다. 일본 메이지유신처럼 우파적 근대국가 혁명을 하려던 시도다. 러일 전쟁을 앞두고는 한일 연대론이라는 파격적 주장을 했다. 1919년 3·1운동을 앞두고 중도회통사상을 통해 동학과 기독교, 불교 간의 연대를 추진하고 평화적 군중 운동을 주창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따르면 천도교도가 200만 명, 기독교도 35만 명, 불교도 20만 명이었다. 그런데 민족대표 33인을 구성할 때 기독교에 16명, 천도교에 15명을 배정했다. 그렇게 양보하면서 중도회통사상을 실천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세계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손병희의 중도회통사상이 절실히 요구된다.”

    탈냉전 다극 질서에서 민족주의가 강화하고 있는데, 손병희식 중도가 힘을 발휘하겠나.

    “민족주의의 부상은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어떤 민족주의냐다. 나는 자유주의와 공존하는 민족주의·애국주의를 강조해 왔다. 편견과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를 찾아내야 한다. 민족주의에는 핏줄 중심성이라는 부정적 요소가 있지만, 문화적 정체성과 공동체를 존중하는 긍정적 요소도 담겨 있다. 버릴 건 버리고 살릴 건 살리는 중도 사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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