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새 연재 |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못난 통치자 밑에 명재상 없다”

재상의 힘은 곧 국력

  • 김영수 | 사학자·‘史記’전문가

“못난 통치자 밑에 명재상 없다”

3/3
그런데 사광은 단순히 음악에만 정통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 박학다식했고 총명했고 또 올곧았다. 이 때문에 수시로 임금의 정책에 자문 노릇을 했고, 어떤 기록에는 그가 재상에 해당하는 태재(太宰) 벼슬에 있었다고도 한다.

한번은 당시 진나라 임금이던 도공(悼公)이 사광에게 눈이 그렇게 어두운데도 어쩌면 그렇게 소리와 음악에 뛰어나냐며 칭찬했다. 그러자 사광은 노기 띤 목소리로 “내 눈 어두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임금이 어두운 게 문제”라며 유명한 ‘천하오흑흑(天下五黑黑)’ 논리를 설파했다. 즉, 천하에 다섯 가지 어둡고 어두운 것이 있다는 뜻으로 임금이 통치를 잘못하는 5가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줄여서 ‘오흑론(五黑論)’이라고 한다. 사광의 입을 통해 들어보자.

첫째, 군왕이 신하가 뇌물이나 도박·투기 따위로 유명한데 이를 모르는 것입니다.

둘째, 군왕이 사람을 제대로 바르게 기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군왕이 어진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넷째, 군왕이 군대를 자주 사용하여 백성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군왕이 백성의 삶이 어떤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사광은 백성은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는 ‘민귀군경(民貴君輕)’을 맹자(孟子)보다 훨씬 앞서 최초로 주장한 민본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였기에 최고통치자 앞에서 거리낌 없이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못난 통치자 밑에 명재상 없다”

맹인 재상 사광의 오흑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통렬하다 못해 가슴 아프다.

재상의 존재감, 총리의 현실

재상은 역사적으로 정치 무대에서 줄곧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맡아왔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천하의 안위를 한 몸에 짊어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재상권(宰相權)의 크기는 정치 판국의 안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즉, 재상권이 무겁고 크면 국력이 강했고, 그 반대면 국력이 쇠약했다는 점도 엄연한 사실이다.

나아가 재상은 최고통치자의 자질을 보완함과 동시에 통치자의 자질을 완성해주는 기능까지 수행했다. 일찍이 상(商)나라 탕(湯) 임금은 이윤(伊尹)이란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 다섯 번이나 청을 올렸다. 저 유명한 ‘오청이윤(五請伊尹)’이란 고사성어의 출전이다. 이윤은 탕 임금의 정성에 감복해 탕을 보좌해 하(夏)나라를 멸망시키고 상나라를 세우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윤은 나아가 탕 임금에게 요리를 가지고 통치의 이치를 설파했고, 탕 임금은 이윤의 도움으로 훌륭한 명군으로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길 수 있었다.

최근 국무총리 지명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정말 우리가 21세기 개명된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총리 후보자의 자격 공방도 답답했거니와 현재 우리나라에서 총리가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인가, 통치자가 과연 총리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에 맞는 권력을 부여하는가 등등 모든 점을 다시금 곱씹어보게 했다. 솔직히 지금 이 시대 총리의 현실은 수천 년 전 왕조 체제에서 재상이 가졌던 존재감에도 못 미치는 수준 아닌가.

엄연한 역사적 사실 하나가 가슴속으로 비수처럼 날아왔다. 역대로 현명한 통치자 밑에 현명한 재상, 즉 성군현상(聖君賢相)은 가능했어도, 못난 제왕 밑에 현명한 재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맹인 재상 사광은 정치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잘난 척만 하는 임금 도공 앞에서 오흑론으로 그를 질타한 것은 물론 끝내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거문고를 그를 향해 내던졌다고 한다(기록에 따라서는 사광이 도공을 거문고로 내리쳤다고도 한다).

신동아 2015년 4월호

3/3
김영수 | 사학자·‘史記’전문가
목록 닫기

“못난 통치자 밑에 명재상 없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