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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치의 달인

복종하라, 버텨라, 그리고 웃어라

‘미생’의 정치학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복종하라, 버텨라, 그리고 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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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직장 문화

미생 직장인의 정석, 그 첫째는 복종이다. 대기업 등 대다수 직장은 민주주의와 상극이다. 오너 또는 CEO가 절대권을 행사한다. 부서 내에선 부서장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위계적 구조가 공고하다. 유교문화 탓이라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의 직장도 크게 보면 위계구조다. 거긴 해고가 훨씬 자유롭다. 오너와 부서장이 직원의 명줄을 더 틀어쥔 셈이다. 직장 내 위계구조는 자본주의의 속성에 기인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구조가 완화되어 세련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게 직장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까라면 까야 한다

따라서 상사가 까라면? 까야 한다! 이유를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도 CEO에 오를 수 있다. 자꾸 역심(逆心)이 든다면 차라리 뛰쳐나가 창업을 하는 게 좋다. 역심이 드는 자신의 기질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적잖게 역심을 노출했다면 상사나 경영진의 마음속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더 열심히 복종해도 만회가 될까 말까일 것이다. 신경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권력이 뇌의 화학적 작용을 바꿔놓는다며 과도한 권력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권력의 맛을 아는 상사는 이미 당신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저절로 승복이 되는 상사를 만나는 것은 직장인에겐 홍복이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상사가 윗분의 인정을 받는 경우는 더더욱 희박하다.

무조건 버텨라

미생 직장인의 정석, 그 둘째는 끈기다. “무조건 버티라”는 선배들의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 버티다보면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가고 10 년이 간다. 10년 만에 한번 찾아오는 기회만 잡아도 성공한다. 어떤 사람은 일생에 단 한 번 온 기회를 잡아서 성공하기도 한다.

미생에서 계약직 장그래에게 상사인 오상식 차장이 이렇게 말한다. “이왕 들어왔으니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기는 버티면 이기는 곳이야.” 맞다. 버텨야 이긴다.

많은 직장인은 열심히 일하는데 상사를 비롯한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럴까? 잘라 말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걸 모르는 상사는 없다. 결국 알게 된다. 인정받지 못한다면 미련하게 일만 하는 건 아닌지 방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버티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끈기와 복종의 융합이 더 중요하다. 구조조정 시기에 상사들은 충성하는 부하를 버리지 못한다. 부하의 충성은 실은 중독성 높은 마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버는 재미, 부리는 재미

경영인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답한다. 사업을 하는 첫 번째 재미는 돈 버는 것이고, 두 번째 재미는 사람 부리는 것이라고. 사람 부리기는 권력 행사를 의미한다. 권력이 커지면 마약이나 게임에 빠졌을 때 나오는 도파민이 뇌에서 분비된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회사니까요”

미생 직장인의 정석, 셋째는 말이다. 말을 잘해야 한다. 미생 13회에서는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이 사장과 중역들 앞에서 요르단 중고차 사업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프레젠테이션 뒤 사장이 칭찬한다. 이어진 장그래의 말이 임원들을 울컥하게 한다. “우리 회사니까요.”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장그래에게서 “우리 회사”라는 말이 나와 더 큰 울림을 줬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막판 판세를 가른 한마디는 이것이었다. “대전은요?” 유세 중에 얼굴에 커터 칼 테러를 당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마취에서 깨어나 했다는 이 말은 반전 드라마를 불러와 한나라당에 승리를 안겼다.

회의와 프레젠테이션에선 역시 말 잘하는 직장인이 돋보이기 마련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뇌에 업무 내용이 잘 정리된 상태로 입력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뇌의 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있지만, 사실 이 능력은 후천적인 것이다. 말을 자주 해야 역으로 뇌도 성장한다.

말, 해 버릇하면 는다

어떤 직장인은 “원래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라고 말한다. 앞으로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원래 말주변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피하는 습성 때문에 그렇게 됐을 뿐이다. 말이란 해 버릇하면 금방 는다. 그 뒤엔 오히려 말려야 할 정도다.

처음 회의 참석 땐 자신이 할 발언 내용을 이슈별로 써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몇 개월만 하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 프레젠테이션도 처음엔 설명 자료를 따로 메모판에 담아 손에 들고 하는 것이 좋다. TV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손에 들고 있는, 그런 메모판이다. 그러나 이것도 나중에는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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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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