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버스터미널.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상당한 중요하고도 편리한 기능을 한다. 이것이 없다면 개인은 아주 강심장이 아닌 한, 사회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사회 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역할 속에서 서로 관계 맺으면서 공동체가 유지되고 개인도 정신적으로 지탱해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페르소나가 너무 강력해져서 자아와 멀리 떨어져버리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희생당하기 쉽다. 사회적 가면, 그 역할이 강화되면 될수록 페르소나와 자아는 충돌할 수 있다. 어느덧 페르소나가 자아의 영역을 침범해 자아 자체가 되는 수가 있다. 페르소나와 자아가 겹쳐버릴 때, 그의 진정한 자아는 희생당한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사회적 가면에 더 집착하게 돼 그만의 독특한 ‘개인적 삶’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그 임원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 곧 페르소나뿐 아니라 그의 내면에 형성되어 있는 자아도 들여다봐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불협화음을 일으킬 경우 사회적으로 성공한 임원이라는 페르소나와 섬세한 자아가 충돌하게 된다.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페르소나와 자아가 적절히 대응하면서 서로를 지켜줘야 하는데 그것이 위태로워질 경우 심각한 정신적 교란을 겪게 된다. 직책이 올라가고 권한이 막강해질수록 자아를 돌아보고 보호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누굴 핫바지로 알아, 내가 말이야….” 이런 호승심(好勝心)으로 상대방을 제압할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위로하지는 못한다.
익명의 공간!
그래서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시간이 꽤 흘렀다. 나는 익산으로 가는 10시 55분 KTX를 타기 위해 무려 18분이나 일찍 어두컴컴한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순천만의 안개

순천 시내.
이렇게 느낌표를 찍으면서 쓰는 중이다. 나는 지금, 태풍 너구리로 인해 너무 일찍 어둠에 갇혀버린 순천만을 한참이나 헤매다가 도시로 들어와서 어느 모텔에 자리를 잡고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게 아침에 커피 한잔 마신다고 허비해버린 5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두 시간이나 늦게 시작한 강의는 6시에나 끝났고, 저녁을 급하게 먹은 후, 구례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순천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벌써 7시가 넘어버렸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집어타고 순천만으로 달렸지만, 곧 어두워지고 말았다. 전망대가 있는 생태공원 입장은 어렵게 되어 하는 수 없이 그 옆으로 끝도 없이 뻗어 있는 길을 택해 걸었다. 걷고 또 걷는 사이에 이미 어둠이 순천만을 지배해버렸다. 어떤 길이 어떤 쪽을 지향하는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나는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걷고 또 걸었던 길을 되짚어 걸어 나오니, 아까 탔던 택시가 그대로 서 있었다. 택시 기사는 내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
“터미널로 가시죠.”
그렇게 해 나는 시내로 들어와 숙소를 잡지 않을 수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시 살폈다. 요즘 인터넷 환경에서는 2분 정도 검색하면 이 빛나는 단편의 전체를 다시 읽을 수가 있다. 오늘날 일정 수준의 공민 교육을 마치고 바쁜 일상에도 약간의 독서 생활을 유지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단편소설을 들어서 알고 있으며 읽어서 알고 있는, 그 대목을, 다시 읽어본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안개는 강과 호수에 생성된다. 공기 중에 물의 비율이 높을 때, 그 물 분자들이 서로 뭉치면서 구름이 되기도 하고 지상의 낮은 곳에 안개가 되어 자욱하게 끼게 된다. 순천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항아리 모양으로 내륙 깊숙이 밀려들어간 만(灣)이다. 전체 35.5㎢에 달하는 면적이고 3.5㎞의 하류 구간과 2221㏊의 넓은 갯벌, 230㏊의 갈대밭으로 구성된 곳이다. 내륙 깊숙이 밀려들어온 순천만, 그곳의 습지가 안개의 모국이다. 김수용 감독이 영화 ‘안개’로 이 소설을 다룬 적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충남 당진의 갯벌과 김포에서 찍었다. 영화를 찍기 위해 순천에 내려온 김수용 감독은 “순천만의 갈대밭과 넓은 펄이 너무 아름다웠던 까닭”에 촬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만 아름다울 뿐이런가.
세상에 대한 지독한 환멸! ‘무진기행’을 진공팩에 넣어 끝도 없이 압축하면 결국 이 한마디가 남게 된다. 환멸! 타락한 세상, 부조리한 세상, 천박한 세상에 대한,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타락하고 부조리하고 천박한 세상에 끼어들어 한 목숨 부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쓰디쓴 환멸! 그것이 ‘무진기행’이다. 소설 속의 ‘무진’은 순천이다. 김승옥의 고향 순천이다. 요즘이야 순천만 갯벌 체험에 생태 여행 그리고 ‘정원 박람회’ 등으로 인해 찾는 사람이 늘었지만 오래전에는 그런 사정이 못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