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대를 이어온 고집 vs ‘싼티’ 벗고 스타덤

  • 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입력2009-04-03 1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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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난 맛집 중엔 몇 세대에 걸쳐 이어온 ‘손맛’에 자부심이 남다른 곳이 많다.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바롤로의 주인장 또한 ‘아버지에게 배운 것말고는 달리 비법이 없다’고 말한다. 한편 저렴한 와인으로 주저앉는 듯했던 바르바레스코는 한 사람의 과감한 시도 덕분에 일약 스타 와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둘 다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이지만, 한 사람이 있기 전에는 바롤로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최고급 와인이라면 누구나 바롤로를 떠올린다. 단단한 타닌 위에 장미꽃 향기가 싱그럽다. 오래 숙성돼 확실한 맛을 선사하고, 음식과의 궁합도 탁월해 다양성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와인이다. 바롤로에 밀려 바르바레스코는 오랜 세월 2위에 머물렀으나, 탁월한 생산자 안젤로 가야를 만나 지금은 당당히 바롤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자타공인 바롤로의 최고봉, 자코모 콘테르노의 진면모를 살핀 후에 바르바레스코의 추격을 알아보기로 하자. ‘와인의 왕’으로 불리는 바롤로 중에서도 몬포르티노(Monfortino)는 최고의 바롤로다. 몬포르티노는 양조장 자코모 콘테르노(Giacomo Conterno)에서 생산된다. 보통의 바롤로보다 2년 이상 더 숙성하니 바롤로 리제르바에 속한다.

    콘테르노 가문은 1908년, 우리나라로 치면 평안북도쯤 되는 피에몬테 지방의 작은 마을 몬포르테 달바에 작은 선술집을 차렸다. 식당용 와인을 자체적으로 양조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바롤로의 전형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의 양조장 주인 로베르토 콘테르노(Roberto Conterno)는 형과 누나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동안 고향에 혼자 남아 양조장을 지키고 있다. 양조장 이름 자코모 콘테르노는 그의 조부 이름이다.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긴 발효기간이 빚은 견고한 품질

    자코모(Giacomo·1895~1971)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거들어 양조 일을 익혔다. 당시에는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 좋은 포도를 구입해 와인을 만들었다. 그는 네비올로 품종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다. 텁텁한 타닌을 단맛이 나도록 버무리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오랫동안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잔당을 없애고 타닌의 진한 맛이 입 안에 확 퍼지는 와인을 만들어냈다.



    이후 마을에서 이름난 레 코스테(Le Coste) 포도밭에서 포도를 구매했다. 1920년엔 포도 품질이 특히 좋아서 와인을 종전보다 길게 숙성시키고, 그 이름을 몬포르티노라고 정했다. 이것이 몬포르티노의 최초 빈티지로 알려져 있다. 긴 발효기간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자코모는 네비올로의 두꺼운 껍질에 함유된 타닌을 잘 빼내 오랫동안 숙성시키면 최고의 와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벽돌집같이 단단하고 기운찬 바롤로의 특성이다. 이후 여러 양조장에서 몬포르티노의 품질을 본보기 삼았다.

    몬포르티노는 고향 마을 몬포르테 달바에서 따온 이름이다. 직접 양조한 와인의 강하고 인상적인 맛이 큰 인기를 끌면서 선술집을 찾는 손님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자코모가 몬포르티노를 매년 출시한 것은 아니다. 포도 품질이 뛰어난 해에만 출시했다. 포도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보통의 바롤로만 담갔다. 자코모는 아버지를 여읜 1934년부터 1971년 숨을 거둘 때까지 21개 빈티지의 몬포르티노를 생산했다.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대를 이어 자코모 콘테르노를 지키고 있는 로베르토 콘테르노.

    품질에서만큼 자코모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설득해 유리로 된 드미자니에 와인을 담아 팔지 않도록 했으며, 대신 긴 나무통인 카라(carra)에 와인을 담아 마차에 싣고 가가호호 방문해 팔았다. 멀리 제노바와 토리노까지 직접 찾아가 납품했다. 드미자니에 담긴 와인은 수명이 짧았지만, 나무통에 담으면 오랫동안 묵힐 수 있었다.

    스테인리스스틸 발효통 효과

    2004년에 작고한 로베르토의 부친 조반니는 생전에 “나는 단 한 가지 방법으로 바롤로를 만든다. 그건 소위 구식 방법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라 그것말고는 모른다. 그것은 오직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베르토 역시 아버지에게서 배운 방식 외에는 달리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 부자(父子)의 말에는 자부심과 고집이 스며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자부심과 전통 고수에 대한 고집이 남달랐던 조반니지만, 스테인리스스틸 발효통만은 받아들인다. 그전까지 조반니는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발생하는 와인의 상태 변화 때문에 늘 노심초사했다. 서늘하고 가끔은 시리기도 한 양조장에서 날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그러나 스테인리스스틸 통을 도입한 후 걱정을 덜었다. 편리하게 온도를 유지하고 와인 상태를 지켜주는 덕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었다. 조반니는 와인 찌꺼기를 일절 거르지 않으며 정제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만든다. 포도를 따서 담을 때도 플라스틱통 대신 나무통을 쓴다. 나무통은 포도 냄새가 배지 않으니 여러 품종이 섞여도 별 탈 없고, 세척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4년에 마침내 포도밭을 소유하게 됐다. 14ha 면적에 네비올로, 바르베라 등을 재배한다. 1978 빈티지가 자기 소유 포도밭에서 생산된 최초 빈티지다. 1978 빈티지는 현재까지 출시된 몬포르티노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파커의 ‘와인 애드버킷’은 1978 빈티지에 100점을 준 바 있다. 현재는 98점을 유지하고 있다. 시음 후기를 보면 ‘잊을 수 없는 와인’이라고 기록돼 있다.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바르바레스코를 고급화하는 데 성공한 가야의 셀러.

    전체 포도밭 중 9ha에는 네비올로를, 나머지 5ha에는 바르베라를 재배한다. 몬포르티노는 9ha의 네비올로 중 2ha쯤 차지하는 최고의 포도로 생산된다. 최고의 포도가 생산되는 이곳을 카시나 프란차(Cascina Francia)라고 한다. 7000~1만병 생산된다.

    이탈리아 와인 가이드 중 하나인 ‘에스프레스 와인 가이드’는 최근 2008년판 출간기념으로 경매를 열었는데, 거기서 가장 비싸게 팔린 와인이 몬포르티노다. 1990 빈티지가 출품됐는데, 입찰 개시와 동시에 많은 경쟁자가 달려들어 결국 추정가격에서 85% 상승한, 병당 432유로(약 82만원)에 낙찰됐다. 이는 안젤로 가야의 바롤로 스페르스 동일 빈티지(194유로)보다 높으며, 1988 빈티지 사씨카이야(177유로)보다 훨씬 높다. 최고의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인 솔데라, 볼게리의 최고급 와인 마세토보다도 높은 가격이다.

    ‘좀 있다 마시면 더 좋은 와인’

    한편 바롤로 북동쪽에 바르바레스코가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에 ‘GAJA’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주류매장 이름을 연상시키지만, 전혀 관계가 없다. 실제 발음도 ‘가자’가 아니라 ‘가야’다. 안젤로 가야(Angelo Gaja)는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빗어 넘겨, 그렇지 않아도 넓은 이마가 더 훤해 보인다. 바르바레스코는 마을 이름이면서 와인 이름이다. 마을을 대표할 만한 와인이라면, 그 마을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다. 마을의 개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마을에 대한 애정과 긍지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바르바레스코는 인근에서 생산되는 바롤로(Barolo)의 그늘에 늘 가려 있었다. 바르바레스코는 바롤로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면서도, 바롤로에 비해 포도의 타닌이 적은 편이라 껍질과 즙을 분리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짧은 편이고, 생산량이 바롤로의 35%정도에 불과하다. 바롤로보다 좀 더 부드럽고 향이 더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15년 이상 숙성되면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맛과 향을 지닌다.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바르바레스코를 최고급 와인 반열에 올려놓은 안젤로 가야.

    만약 안젤로 가야가 없었더라면, 와인 애호가들은 아직도 바롤로는 알아도 바르바레스코는 몰랐을 것이다. 안젤로 가야는 바르바레스코를 와인 애호가들의 쇼핑 리스트에 오르게 한 1등 공신이다. 그의 와인 철학은 이렇다. ‘지금 마셔도 좋고, 좀 있다가 마시면 더 좋은 와인을 만들자! ’ 그는 거칠기만 했던 바르바레스코를 부드럽게 바꿔 애호가는 물론이요 초보자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사실 와인이 좀 거칠어도 마을 사람들한테는 별문제가 안 된다. 늘 먹고 마시던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에 흔한 양고기와 곁들인 바르바레스코는 지역 식당의 인기 메뉴다. 기름진 양고기 살점을 씹으면서 바르바레스코를 한 모금 삼키면 그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와인의 타닌 성분이 기름진 고기를 맛깔스럽게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민이 매일 마시는 와인이라도 생산량이 남아돈다면 내다 파는 수밖에 없다.

    오크통을 맹신하지 말라

    바르바레스코를 내다 팔기 위해선 가장 먼저 거칠고 텁텁한 맛을 해결해야 했다. 가야는 그러지 않고는 바르바레스코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지역 최초로 프랑스산 작은 오크통(바릭)을 사용했다. 와인의 질감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가야는 225ℓ들이 바릭을 들여왔다. 바릭은 와인과 접촉하는 표면적이 캐스크보다 커서 와인에 오크 특유의 향을 입히고, 타닌을 더 많이 배어나게 한다. 결과적으로 바르바레스코의 질감을 부드럽게 바꾸었다. 가야의 와인을 맛본 레스토랑업자와 수입상들 모두 품질에 만족하고, 부드러운 바르바레스코를 소비자에게 선뜻 권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바릭을 사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가야는 오히려 바릭의 효과를 줄여야 제대로 된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적당한 정도의 바릭 숙성은 와인 품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와인을 망친다는 것이다. 가야는 수년 전부터 완제품 바릭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직접 바릭을 짠다. 재료는 물론 프랑스산이지만, 제작 과정을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오크를 수입해 3년간 비를 맞게 하고 태양과 공기를 쐬어 오크의 거친 타닌을 제거한 다음에 통으로 조립한다. 가야는 젊은 와인 생산자들이 와인을 바릭에 너무 오래두거나, 지나치게 강한 오크로 바릭을 만드는 것에 염려를 나타냈다. “요즘 지역 생산자들은 타닌이 강한 바릭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러면 오크의 거칠고 강한 성분이 와인에 배어 와인 고유의 개성이 가려집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절제의 미덕이 진정한 바르바레스코의 맛을 결정한다.

    가야는 단일 포도밭 와인을 생산한다. 하지만 전통 바르바레스코는 여러 포도밭의 포도를 섞어 다양한 토양의 특성을 반영하는 게 특징이다. 가야 역시 여러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보통의 바르바레스코를 만든다. 그러면서 그 지역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단일 포도밭의 바르바레스코’도 생산하는 것이다. 가야의 이러한 시도는 이탈리아 와인을 순식간에 귀족 와인으로 승격시켰다.

    가야는 1967년에 소리 산 로렌조(Sori San Lorenzo)라는 포도밭의 포도만 써서 같은 이름의 와인을 출시했다. 다른 밭에서 난 포도와 섞이면 각각의 밭이 가진 특성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다고 판단, 특정 밭의 개성이 묻어나는 와인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그의 의도는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매년 10만병 정도 생산하는 일반 바르바레스코와 달리 단일 포도밭 와인은 소출이 적다. 1200병 미만으로 양조되는 이런 와인은 맛과 향의 집중도가 대단히 높고, 여운이 오래 지속돼 큰 인기를 누렸다. 경매시장에서는 희소성으로 인해 상당히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수집 열풍이 불었다. 단일 포도밭 와인으로는 이 밖에도 코스타 루씨, 소리 틸딘 등이 있다.

    이탈리아 와인의 명예회복

    그동안 와인 애호가들은 유럽의 와인문화가 로마에서 비롯됐음을 알면서도 이탈리아 와인에는 관심이 없었다. 프랑스가 일찌감치 와인 고급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장인정신에 입각해 와인을 양조해온 것과 달리, 이탈리아는 생활의 한 방편 정도로 와인을 취급해온 탓이다. 그러다 보니 품종 개량을 통한 우량 품종 개발이나, 녹색수확(포도가 익기 전에 포도송이를 솎아줌으로써 포도 생산량을 통제하는 것)을 통한 품질 향상 등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 비교적 인지도가 높았던 키안티가 신맛 일변도의 가볍고 저렴한 와인으로 수십년간 양산되는 바람에,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이탈리아 와인은 그렇고 그런 와인으로 각인됐다. 로마의 적통(嫡統)이라는 선민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가야는 품질 면에서나 가격 면에서 모두 이탈리아 와인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탈리아 와인이 싸구려라는 고정관념은 가야의 바르바레스코가 득세하면서 조금씩 사그라졌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 와인을 프랑스 와인 수준으로 격상하는 데 가야가 한몫 단단히 한 셈이다. 이후 이탈리아 와인 생산자들은 그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가야는 고향 마을 바르바레스코를 와인세계의 중심에 올려놓은 동시에, 이탈리아 와인 이미지를 고양시킨 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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