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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곤봉 결투

고야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곤봉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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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에 대한 풍자

‘검은 그림’ 연작은 187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국제적으로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람객들은 이 작품들을 미친 화가의 작품으로 여기고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상파 화가들만이 이 연작을 주목했는데, 어둡지만 강렬한 이미지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야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들이 인상주의 화가들만은 아니었습니다. 20세기 전반에 등장한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화가들도 작지 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19세기 초반에 활동한 화가이지만, 고야는 20세기적 감각을 가졌던 셈입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을 산 고야가 우려한 것은 이성의 과잉이 아니라 이성의 과소입니다. 당시 스페인 사회는 영국, 프랑스와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발전 속도가 느렸습니다. 고야는 자신의 조국 스페인이 이성보다는 종교적 열정에, 합리성보다는 비합리적 의례에 관심이 더 큰 것을 불만스러워했습니다. 이웃 나라 프랑스의 대혁명을 이끈 계몽주의에 공감한 고야는 당시 스페인의 비이성적인 현실에 대한 회의와 풍자, 고발을 ‘로스 카프리초스’에 담았습니다.

제가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와 ‘곤봉 결투’를 주목하는 이유는 고야 이후의 시대적 변화에 있습니다. 고야가 죽고 난 다음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한 계몽주의는 역사에서 승리했습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근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국가 대다수는 발전 목표를 이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짧은 시간에 모범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궈냈습니다.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곤봉 결투

‘곤봉 결투’

병든 사회의 치유법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고 해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성과 합리성이 승리를 이뤘다고 생각하는 현대사회에서도 비합리성·광기·폭력과 같은 괴물은 여전히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뒤흔들어놓습니다. 도리어 오늘날 불확실한 정보나 편견을 기반으로 해 다른 이를 비난하고 배척하며 낙인찍는 폭력적 행위가 더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매일 모 방송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 하루에 일어난 주요 사건사고에 대해 평론을 합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 시대 각종 사건 및 사고가 하루하루 더 잔혹한 형태로 진화한다는 점입니다. ‘이보다 더 잔인한 사건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제의 기대가 오늘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 마음이 매우 착잡해집니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선한 존재일까요, 아니면 악한 존재일까요.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천국에 가까운 곳일까요, 아니면 지옥에 가까운 곳일까요. 참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따뜻한 관계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상담사인 저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긍정성을 놓고 싶지 않지만, 타인의 목숨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의 범죄성을 목도할 때면 ‘과연 인간에게 희망이 있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결국 인간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세상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다는 절충적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곤봉 결투
박상희

197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오늘도 여지없이 편견, 광기, 폭력으로 인한 사고가 신문과 인터넷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며 고야의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모색한 화가입니다. 고야 시대의 제어되지 않는 광기는 긴 역사의 강을 넘어 현재에 더 활개를 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회는 무엇이 부족해 이렇게 병든 사회가 되어버리는 걸까요. 고야의 메시지처럼 우리의 이성이 잠들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아니, 이성뿐 아니라 우리 안의 사랑도 너무나 깊이 잠들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신동아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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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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