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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⑪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4반세기 동안 ‘맨유’ 제국 이끈 영국 축구의 지배자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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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섭고 냉정하다. 걸핏하면 독설과 폭언을 일삼는다. 언뜻 보면 ‘괴팍한 성격의 고집쟁이 영감’이지만 카리스마와 냉철한 판단력, 젊은 인재를 육성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축구 감독이 됐다. 바로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최고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있는 알렉스 퍼거슨 경(卿)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지만 퍼거슨 감독은 무려 26년 넘게 ‘맨유’를 이끌며 맨유를 세계 최고의 인기 구단이자 감동적인 스토리 콘텐츠를 보유한 기업으로 만들었다. 특히 그는 과거의 명성에 기대어 근근이 명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최고의 감독이자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항상 감독직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즐거움이 사라질 때까지 이 직업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돈이 오가는 프로 스포츠계에서 감독의 목숨도 파리 목숨에 불과할 때가 많다. 제아무리 명장이라 해도 현재 성적이 좋지 않으면 시즌 도중 경질되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하지만 강산이 거의 세 번이나 바뀔 시간인 만 26년간 세계 최고의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이 있다.

한국 축구 팬에게는 박지성이 뛰는 팀으로 유명한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다. 1986년 11월 맨유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현재까지 26년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프리미어리그 감독들의 평균 수명이 1년 7일이라는 통계를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맨유 감독으로 총 1428경기를 치러 이 중 847경기에서 승리했다. 대부분의 감독이 승률 50% 미만인 점을 감안할 때 59.3%의 승률 또한 대단한 기록이다.

이뿐만 아니라 퍼거슨은 맨유에서 영국 프로 축구팀 사상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달성을 비롯해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데이비드 베컴,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두 호날두,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라이언 긱스, 에릭 칸토나, 박지성, 로이 킨 등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스타 선수도 발굴하며 그 자신을 그 어떤 스타 선수보다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런 퍼거슨 리더십의 요체는 과연 무엇일까.

퍼거슨은 누구인가



퍼거슨은 1941년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주요 도시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선박장에서 일하는 전형적인 영국 노동자 계층의 일원이었다. 집안 형편은 가난했지만 퍼거슨과 한 살 아래인 그의 동생 마틴 퍼거슨은 모두 축구에 재능을 보여 일찌감치 축구선수가 됐다.

선수 알렉스 퍼거슨의 경력은 감독 퍼거슨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퍼거슨은 1958년 퀸스파크에서 정식 선수로 데뷔했다. 주 포지션은 포워드였다. 이곳에서 2년을 보낸 뒤 1960년 세인트 존스턴으로 이적한다. 가능성을 인정받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64년 던퍼민 애슬레틱에서 선수 퍼거슨은 축구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세 시즌 동안 88경기 66골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스코틀랜드의 최고 명문팀인 글래스고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스타 선수가 많았던 레인저스에서 퍼거슨은 기대에 미치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1969년 폴커크로 이적해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하며 지도자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퍼거슨은 1974년 은퇴한 후 이스트 스털링셔라는 아마추어팀에서 정식 감독으로 데뷔했다. 주전 골키퍼도 없는 악조건, 주급 7만 원에 불과한 열악한 현실에서도 특유의 지도력을 보인 그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세인트 미렌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도 2부 리그의 약체팀이었던 세인트 미렌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활약을 보였다.

그 성과로 그는 명문팀 애버딘의 감독직을 맡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1970년대 당시에도 스코틀랜드 축구의 양대 산맥은 퍼거슨이 선수로 뛰었던 레인저스와 셀틱 두 팀이었다. 하지만 퍼거슨 휘하의 애버딘은 이 양강 구도를 깨뜨리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83년에는 스코틀랜드 팀 역사상 최초로 유러피안컵 우승까지 차지했다. 퍼거슨은 애버딘에서 지내는 8시즌 동안 프리미어 우승을 포함한 총 10개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감독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맨유와의 운명적 만남

애버딘에서 명장의 기반을 닦은 퍼거슨을 탐내는 팀은 많았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는 물론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다른 유럽 빅 리그의 명문 클럽들로부터도 러브콜을 받았지만 그는 1986년 맨유를 택했다. 퍼거슨이 맨유를 택했을 때 맨유 구단과 팬, 심지어 그 자신도 맨유에서 26년간 수장으로 근무할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퍼거슨이 오기 전 맨유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25년간 감독으로 근무한 명장 매트 버스비 경의 색채가 짙게 남아있었다. 1968년 버스비가 감독을 그만둔 후 무려 5명의 감독이 맨유를 거쳤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퍼거슨 역시 맨유 감독을 맡은 초기에는 팬들의 기대만큼 빨리 맨유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퍼거슨의 부임 첫해 맨유의 리그 성적은 11위에 불과했다. 1987~88년 시즌에는 리그 2위에 올라가 우승에 한 발짝 다가섰으나 1988~89년 다시 7위로 미끄러졌다. 1989~90년 시즌 초반에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자 분노한 팬들은 그의 사퇴를 요구했다.

위기의 순간을 돌파할 수 있었던 계기는 결국 성적이었다. 1989~90년 시즌 맨유는 퍼거슨 부임 후 최초로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첫 우승 후 퍼거슨은 팀 전력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며 성공 가도를 달려나갔다. 1990~91년 시즌에는 스페인의 명문팀 FC 바르셀로나를 꺾고 UEFA컵 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은 맨유가 23년 만에 이뤄낸 유럽 클럽 대항전 우승이었기에 맨유 팬들의 기쁨은 더 컸다.

1992~93년 시즌에 퍼거슨 감독은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 첫 우승을 달성했다. 시즌 초반에는 리그 10위까지 떨어졌으나 이탈리아 출신 에릭 칸토나를 영입한 후 상승세를 타면서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은 잉글랜드 1부 리그가 프리미어리그로 이름이 바뀐 첫해에 달성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 컸다.

퍼거슨이라는 날개를 단 맨유는 단순히 프리미어리그의 주요 팀이 아니라 세계적인 명문 클럽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1993~94년 시즌에는 팀 설립 후 최초로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이를 더블 크라운이라 한다. 당시만 해도 보잘것없는 신예였던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게리 네빌, 폴 스콜스 등을 대거 중용한 퍼거슨은 1995~ 96년 시즌 또 한 번 더블 크라운을 이뤄냈다. 영국에서 더블 크라운을 두 차례 달성한 감독은 퍼거슨이 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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