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 오가는 환율정책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 급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원론에도 나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5월까지만 해도 물가 급등은 유가가 오르는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며 어느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발언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면 “중장기 물가를 봐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물론 수출을 주도하는 일부 대기업은 환율이 급등하면 속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면에서는 중소 납품업체들이 납품단가를 올리지 못한 채 수입물가 상승분을 고스란히 떠안고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정책 당국이 알아야 한다. 고환율에 의존한 수출주도형 성장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인 선진국 달성은 요원하다는 얘기다.
정부의 ‘성장 우선’ 정책은 오래가지 않았다. 6월 초가 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 강만수 장관도 유가가 150달러에 육박하고 물가가 급등하자 비로소 “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새로운 경제 환경을 감안해서 금리와 환율이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 금융정책은 정책 효과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이후에나 나타난다. 시차를 고려한 선제 대응이 중요한 이유다. 경제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원자재 가격 급등을 우려하며 물가안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하는 마당에 현 정부는 선제적 대응은 고사하고 뒷북이나 치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 우리 경제가 이 정도나마 굴러가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뒤늦게나마 정부의 경제정책이 ‘안정’으로 옮아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무게중심이 ‘냉·온탕’을 오가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고환율 정책이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갑자기 환투기 세력과 ‘일전불사’를 외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하다. 실제로 7월 초엔 환율 안정을 꾀한다는 목적으로 보유 외환을 하루에도 수십억 달러씩 쏟아 부었다. 이 바람에 7월 초엔 환율 등락 폭이 수십원에 달하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나 볼 수 있었던 현상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는‘인기 없는’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지난 5개월 동안 고도성장의 환상에 빠져 시장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경제정책을 펼쳤다. 설사 연평균 7% 경제성장을 달성한다고 해도 물가폭등으로 서민의 고통만 심화시킨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경제 어려울수록 국민과 ‘소통’ 중시해야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 생길 수 있는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직접 ‘현 상황이 경제위기’라고 외치면서 심리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으니 국민은 누구를 믿고 의지하란 말인가.
경제정책이 성공하려면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 시장원리에 충실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취임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보여준 모습은 ‘친(親)기업적’일지는 모르지만 ‘친(親)시장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장에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도 존재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추구하는 가장 바람직한 시장구조는 기업이나 소비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경쟁적인 시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장은 공급자가 힘의 우위를 갖는 공급자 중심 구조를 형성한다. 소수인 공급자는 담합으로 얻는 이득이 커서 결속력이 강한 반면 다수인 소비자는 개인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적어 단합해야 할 유인(誘因)이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는 시장에서 약자인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시장감시기구를 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기업 정부’라고 공언하는 것에 영향을 받은 때문일까. 공정거래위원회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국가 간 수입물가나 비교하는, 조금은 엉뚱한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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