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시 예측에 과연 족집게는 있는가. 과학적·경제학적 분석과 경험, 육감, 심지어 점쟁이까지 동원되는 증시 분석의 세계. 시골의사는 그래프와 통계에 목을 매고 투자에 나선 개미 투자자와 사설기관의 기술적 분석 투자를 놓고 2회에 걸쳐 메스를 댄다. 이번 호에선 기술적 분석의 토대를 쌓은 다우 이론과 기술적 분석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버모어의 전설적 투자 기법이 오늘날 증시에 끼친 영향과 그 부작용에 대해 논한다.
기술적 분석의 태두 찰스 다우. 그의 이론은 오늘날 많은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주식시장을 분석하는 방식은 대개 기본가치 분석과 기술적 분석으로 나뉜다. 전자는 기관투자자들이 상용하고, 후자는 기관투자자보다 정보나 분석력이 떨어지는 개인투자자들의 전유물에 가깝다(물론 기관투자자들도 이를 아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증권방송이나 주식을 가르치고 주가를 예측하는 사설기관들의 분석도구 역시 기술적 분석 일색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기술적 분석이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도 많은 사람이 배우려 하고, 또 오래도록 전승비급(傳承秘·#54622;)으로 생명력을 유지해온 것일까.
투자와 도강(渡江)
‘기술적 분석’ 분야는 ‘다우 이론’을 주창한 찰스 다우로부터 비롯됐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에 ‘월스트리트저널’을 창간한 언론인이자 시장 분석가였다. 다우는 1900년부터 1902년까지 그가 편집을 책임지던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시장가격의 평균’ 개념을 주창했다. 지금에야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안이었다.
그의 논지는 단순했다. ‘급류가 일건 물결이 잔잔하건 강을 건널 수는 있다. 하지만 강폭이 좁고 물결이 잔잔할 때 배를 띄우면 강을 건널 가능성이 높지만, 홍수로 강물이 넘쳐날 때 강을 건너면 배가 뒤집힐 위험이 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강을 건너려 한다’는 것.
그는 자신이 창업한 다우존스 앤 컴퍼니(Dow Jones & Company)를 통해, 1896년까지 시장 평균주가를 공표한 데 이어 1897년부터는 산업 평균주가와 철도 평균주가를 발표했다. 이는 현재의 종합지수와 같은 개념으로 배를 띄우기 전에 홍수가 날지 물결이 잔잔할지를 보여주는 일기예보 같은 것이었다. 그러자 개별종목의 가격과 정보에 의존하던 투자관행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시장상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지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찰스 다우가 지수를 제안한 것은 가격을 단순 수치로만 보면 추세를 알 수 없고, 투자는 추세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다우는 평균주가와 철도지수의 관계를 주목했다. 그는 당시엔 운송주가 모든 산업주의 핵심이었으므로 철도주의 향방이 주식시장 전체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믿었다.
그는 이렇게 평균주가로 씨줄을 엮은 다음, 거기에 다시 날줄을 매겼다. 평균주가에는 세 가지 흐름이 있으며, 가격 흐름은 이 세 가지 흐름, 즉 이들의 추세를 모두 검토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찰스 다우는 고작 수십 편의 칼럼을 썼을 뿐이고 굳이 주가를 예측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론에 대해 ‘다우 이론’이라고 명명하지도, 알리지도 않았다. 다만 그에게 영향을 받은 ‘월스트리트저널’의 후임 편집자 찰스 해밀턴이 그에게서 배운 이론과 지식을 바탕으로 ‘주식시장의 규준(The Stock Market Barometer)’이라는 책을 써 그의 이론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S. A. 넬슨이라는 분석가가 1902년 ‘주식투자의 a,b,c,’라는 책에서 그의 이론에 ‘다우 이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핵심은 장기 추세, 조정, 일간 흐름
어쨌거나 다우 이론의 핵심은 씨줄이 아닌 날줄에 있다. 가격 흐름엔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크고 중요한 흐름은 장기 추세, 즉 긴 기간의 대세하락이나 상승과 같은 흐름이라는 논리였다. 이 흐름은 대개 2년에서 수년까지 이어지는 큰 흐름으로써 시장의 모든 요인이 가격에 반영될 때까지 유지된다는 것. 이를테면 대세하락은 향후 일어날 모든 부정적 사건이나 우려들이 모두 시장에 반영될 때까지 이어지고, 상승은 경기확장과 이익개선에 대한 기대와 향후 가능한 모든 호재가 주가에 다 반영되는 순간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월가가 만든 다우지수와 이동평균선은 기술적 분석의 토대가 된다.
대세하락 역시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주가가 추가상승하리라는 기대가 꺾이는 국면이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던지기 시작하고, 우둔한 투자자들이 매물을 소화하면서 거래가 줄어들고, 주식의 주인이 바뀌기 시작하는 시점. 둘째는, 경기부진과 기업실적 하락이 확인되고 상당수의 투자자가 시장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며 매도자가 우위에 서기 시작하는 단계다. 셋째 단계에 들어서면 경기침체와 실적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근거 없는 비관론이 득세하고, 뒤늦게 매수에 가담한 투자자들이 절망하고 주식을 투매하기 시작한다.
이런 장기 추세 외의 둘째 흐름은 대세상승과 하락 중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조정국면이다. 이때는 대략 30~60%의 주가하락(대세상승 중)이나 상승(대세하락 중)이 급격하게 일어난다. 이 순간 어리석은 투자자들은 대부분 대세가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지만, 현명한 투자자들은 그것이 아님을 믿고 기다리거나 기회로 여기고 추가 매수에 나선다. 이 흐름은 대개 3~4주에서 6개월 정가량 진행된다.
하지만 이때는 대개 전고점이 직전 고점을 돌파한 이후일 경우가 많고(추세반전의 경우에는 마지막 직전 고점이 의미 있는 최고가가 아니다), 조정시의 저점 역시 지난 저점보다 높다. 하지만 대세반전일 경우에는 저점이 지난 저점을 하회하는 경우가 많다. 또 거래량에서도 대세전환의 경우에는 하락시에 거래가 많고 상승시에 거래가 적지만, 추세내의 조정일 경우에는 상승시의 거래가 많고, 하락시의 거래가 적다.
마지막 흐름은 일간 가격 흐름이다. 이 흐름은 대개 큰 의미가 없다. 일간 흐름을 맞힐 수 있다는 아집은 일기예보가 온도나 풍량까지 정확히 맞히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일간 거래는 그것이 누적되어 큰 흐름을 만든다는 점에서 늘 추적하고 관찰해야 하는 대상이다. 일간 거래에서 중요한 흐름은 단지 거래가 수반된 박스권일 경우뿐이다. ‘거래가 수반된 박스권’이라는 말은 사려는 사람이 주식을 모으건, 팔려는 사람이 주식을 처분하건 간에 의미 있는 한 흐름의 변화라는 것이다.
이렇듯 다우 이론은 주식시장에서 파동과 추세의 개념을 만들었고, 이른바 지지선과 저항선의 개념을 창안했다. 주가의 의미 있는 저점을 잇고, 의미 있는 고점을 잇는 추세대를 그리거나 혹은 신고점을 돌파하는 순간 주가가 그것을 넘어서느냐 아니냐에 온 신경을 기울일 것을 제안했다. 이미 지난번 고점에 사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원금을 회복하기 위해 매수가격에 이르면 주식을 팔기 시작할 것이고, 고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주가는 상승할 것이라는 논지를 전개했다.
탁월한 통찰이었고, 지금 보더라도 분명히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팔 사람이 없다는 것과, 더 살 사람이 있다는 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또 더 이상 살 사람이 없다는 것과, 팔 사람이 있다는 것 역시 동의어가 아니다. 다우가 간과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박스권에 대한 탁월한 통찰
다우 이론의 또 다른 통찰 중 하나는 주가의 박스권 움직임에 대한 인식이었다. 해밀턴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주가가 수주 동안 5% 범위에서 등락을 거듭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청산을 위한 매물을 쏟아내고 있거나, 누군가가 매집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 청산을 의미하는지, 매집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박스권에서 주가가 위로 벗어날지 아래로 이탈할지에 대해 예측하고 포지션을 취한다. 하지만 그것은 눈앞의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주가의 움직임을 단순히 추세와 강도로만 해석하던 시기에, 새로 매입하는 주식의 주인이 향후 시장을 이끌 힘을 가진 투자자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생각한 것은 주가 해석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시장은 ‘기술적 분석’이라는 중요한 기둥을 세우게 된다.
이에 대한 생각들은 후에 평균주가에 대한 변동성의 폭(밴드 이론)이나 표준편차를 반영한 투자자들의 심리적 움직임(볼린저 밴드)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때 해밀턴이 말한 대로 ‘박스’는 그것이 주가의 의미 없는 궤적이건, 향후 추세를 알 수 있게 하는 신호이건 가격의 움직임에 대한 투자자들의 재인식을 가능하게 했다.
해밀턴 이론의 두 가지 맹점
“인간은 과학적 실제보다 꿈을 믿고 싶어한다”고 역설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
그가 예전의 주가자료를 바탕으로 검증한 박스권에 대한 생각과는 달리 이후의 주가는 놀랍게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박스를 상향 이탈한 주가가 다시 박스를 하향 돌파하면서 급락한다든지, 혹은 박스권을 하향 돌파함으로써 보유주식을 모두 매도했는데 그 후 주가가 급등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당시 주식시장의 거래량과 거래 시스템에선 특정인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주가를 조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실제로 해밀턴의 주장을 경청한 많은 자본가는 박스권 주가를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박스권 돌파’라는 그림을 그려낼 수도 있었으며, 박스권 하향 돌파로 인해 개인투자자들이 공매도를 하거나 보유주식을 내던질 때 오히려 강력한 매수 드라이브를 걸어 수많은 개인투자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갔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두 가지 점에서 어리석은 판단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세력’에 관한 것이다. ‘세력(a man of influence)’이란 당시 미국시장에서 쓰이던 용어다. 만약 당신이 이 말에 관심이 있고, 이 말에 호기심을 갖는다면 당신은 여전히 1만달러만으로도 주가를 5% 이상 움직일 수 있고, 체결가와 현재가가 증권사마다 다르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거래량이 적고 시가총액이 작은 일부 종목을 대상으로 시세를 조작하는 불공정한 투자자들이 존재하지만, 똥은 피하면 그만인데 굳이 그 똥 속의 구더기를 두려워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 굳이 당신이 똥 푸는 사람 옆에서 코를 막아쥐고 행여나 그 안에서 누군가가 빠뜨린 금반지라도 하나 나올까 노심초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주가는 마치 공기나 물과 같아서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는 존재다. 누군가가 그것을 쥘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가는 손에 움켜쥔 한 줌의 공기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버린다. 주식투자를 계량화할 수 있고 그 계량화의 틀 안에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당신이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만 해밀턴의 두 번째 생각, 즉 박스권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두 개의 주가평균을 비교하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엄청난 자본이 몰리고 시가총액이 수조원을 넘는 기업의 주가가 박스권을 형성했다면 해밀턴의 생각을 빌려 그 박스권의 방향성을 예측해볼 수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추세상승을 이어가는데 특정 대형종목이 상승 중에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면, 그 박스의 이탈방향은 보다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박스권에 대한 해밀턴의 생각은 당시로선 획기적인 진전이었다는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반대로 가야 수지맞는다’
이런 이론들이 막 성립되기 시작했을 때, 정작 이 이론을 바탕으로 투자해 재미를 본 사람은 따로 있었다. 다우나 해밀턴은 이론가였지 투자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시 리버모어는 투자자였다. 리버모어는 1877년생으로 14세의 나이에 사설 주식시장의 시세판 보조원으로 출발해 15세 때 단돈 5달러를 들고 전업투자자로 나선 후 일생을 주식시장에서 보냈다.
그는 풍운아였다. 주식투자로 무려 4번의 파산을 겪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하지만 이 전설적 투자자도 상품 선물투자 실패로 5번째 파산을 겪은 뒤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가 입은 손실은 그 어떤 수단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호텔방에서 입에 권총을 물고 자살함으로써 63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했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리버모어의 인생행로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투자자가 적지 않다. 1990년대 후반 성장주 거품시대에 돈을 번 소수의 개인투자자가 ‘전문가’로 불리며 추앙받던 시점에 출발해, 젊은이들이 실전 투자대회에 참여하면서 등장한 ‘실전고수’의 시대, 그리고 최근 대학마다 붐을 일으키는 주식동아리의 ‘주식연구회’ 열풍까지…. 제2의 리버모어를 꿈꾸는 많은 이가 전업투자자, 혹은 전문투자자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이들의 행로가 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행보가 리버모어의 그것과 너무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리버모어는 당대 주식시장의 추세이론이로 정립된 다우 이론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 스스로도 처음에는 텔렉스를 통해 쏟아지는 주식시세를 보고 매매를 시작했지만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뒤부터는 지수를 참조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강세장에 들어섰을 때 개별주식을 공매도 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일이며, 약세장에 들어섰을 때 개별 주식을 매수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곧 찰스 다우의 ‘두 개의 추세를 동시에 비교하면서 매매하라’는 이론과 일치한다. 이는 그가 시장 전체의 추세와 종목의 추세를 비교해 이 두 가지가 일치하는 방향으로 매매하는 게 최선이라는 다우 이론을 그대로 따랐거나 최소한의 영향은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당시는 다우가 발표한 가격지수가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이로 인해 기술적 분석이라는 분석기법이 태동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리버모어의 성공은 다우 이론, 혹은 기술적 분석론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리버모어는 수학적 통계를 중시했고, 기술적 분석에서 추세의 개념을 이해했다. 그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시세의 끝을 이루는 지점, 즉 고점 징후를 포착하는 데 동물적 감각을 발휘했다.
피라미딩과 추세저항
그가 말하는 고점 징후는 ‘가격이 최소 저항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반락하거나, 공매도한 주식을 다수의 투자자가 나눠서 살 때’다. 즉 대규모 자금을 가진 소수의 매집자 다량의 주식을 매도할 때, 이 주식을 매수하는 투자자의 수가 많다면(소액 투자자들이라면) 그 주식은 고점 신호라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험프리 네일의 ‘상반사고 이론(contrarily thinking theory)’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반대로 가야 수지맞는다(It pays to be contrary)’라는 주식시장 영원불멸의 교훈은 어떻게 보면 리버모어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시장에서 리버모어의 승리를 가져온 또 다른 이유는 ‘피라미딩(pyramiding) 기법’이다. 그는 자금관리의 유용성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는 늘 자금을 분할해서 투자했으며, 최소 투자분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면 추가적인 포지션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포지션’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즉, 자산의 1/3을 100달러에서 사고, 이익이 나서 105달러가 되면 다시 1/3을 더 투자하고, 또 110달러가 되면 나머지 1/3을 투자하면서 평균 매수단가를 올린 것이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투자자가 늘 심리적 우위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늘 이렇게 투자함으로써 현재가가 평균 매수단가보다 위에 있도록 포지션을 관리했다. 전체 포지션의 이익이 일정 목표에 이르면 청산에 나섰지만, 반대로 가격이 평균 매수단가를 위협해도 미련 없이 보유 포지션을 포기했다. 그는 이에 대해 “당신이 확실하게 먹을 수 있는 비스킷과, 누군가가 빼앗아 갈 수도 있는 빵이 있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그의 피라미딩 기법은 투자자금 관리의 원칙이 되어 워런 버핏의 철학으로, 그리고 오늘날 파생상품 거래에서 자금관리의 교범으로 정립됐다.
또한 그는 추세저항의 원리를 스스로 체득했다. 당시 다른 기술적 분석가들이 추세에 대한 지지선의 개념을 정립한 상태였지만, 그는 그것을 ‘최소저항과 최대저항’의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즉 직전 고점들을 연결한 가상의 추세저항선을 최소 저항으로, 일정기간 최고점의 가격에 해당하는 지점을 최대저항으로 구분한 다음 최소저항은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진다는 수준으로까지 생각을 넓혀갔다.
지금도 기술적 분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저항선에 대한 개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를 ‘기술적 분석의 아버지’라 불러도 넘치지 않는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가격이 일정한 평균값을 중심으로 등락한다는 사실도 경험적으로 알았고, 그것이 후에 ‘가격 밴드 이론’의 출발점이 됐다. 그는 또 평균값(오늘날의 이동평균선)을 중심으로 등락폭이 좁은 상태에서 오랜 기간 가격이 공방을 벌이면, 그 범주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간파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좁은 박스권에 갇힌 주가가 상승하거나 하락할 것을 예단하고 투자함으로써 시간과 비용의 손실을 입는 것에 비하면 그의 안목은 탁월한 수준이었다.
그는 주가가 박스권에 갇히면 기다리고 인내했다. 그리고 주가가 박스권을 벗어나는 순간을 기다려 자금의 일부를 투자하고, 본격적인 추세로 이어지면 나머지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위 ‘고점매수, 저점매도’의 원조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주식을 싸게 사려고 한다. 그래서 1만원에서 8000원 사이를 오르내리던 주가가 8000원을 바닥으로 9500원까지 오르면 더 견디지 못하고 매수에 나선다. 그는 그런 식의 투자를 경멸했다. 그는 “시장은 투자자에게 어떤 설명도 이유도 대지 않고, 그냥 자기가 가는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시장을 이해하려 들거나, 혹은 자신의 생각을 시장에 끼워 맞추지 말라”고 했다.
선지자의 교훈
하지만 리버모어가 위대한 투자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정작 자신이 깨우친 기술적 분석의 도구들로 시장을 판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은행가들의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늘 살펴라”라고 했다. 그는 시장의 수급을 철저히 분석하고, 경제의 펀더멘털을 점검한 바탕 위에서 약세장과 강세장을 구분했다. 이렇게 분석한 판단을 근거로 공매도와 매수 여부를 결정했다. 그는 늘 영감을 강조했다. 주가 테이프를 바라보다 보면 확신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감은 시장 주변요인에 대한 끝없는 탐색과 연구의 바탕 위에서 번쩍였다.
그가 기술적 분석을 중시한 것은 이런 시장 판단 위에서 주식을 매수하거나 매도할 시점을 찾을 때만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오늘날의 펀드매니저처럼 기술적 분석을 노름꾼들의 화툿장으로 멸시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추세선과 보조지표에 목을 매는 오늘날의 데이트레이더와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유연했고, 시장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파멸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간과한 데서 시작했다.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미국은 1900년대 초처럼 세상의 정보들이 느릿느릿 전해지지도 않았고, 시장환경이 뉴욕에 앉아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런데도 수십 년이나 자신의 판단과 직감을 믿고 기존 방식을 버리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고, 게다가 파생상품에서 레버리지의 위험을 간과한 게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 이래저래 리버모어는 오늘날 투자자들에게 교훈을 남긴 인물이다.
다우와 리버모어의 분석투자이론은 오늘날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증권방송의 ‘대박 강의’를 따라 추세선이라는 줄을 긋고 이동평균선이라는 선을 따라 매매하며 하루에도 서너 번씩 주식을 사고판다. 이들은 온라인 증권사가 가장 고마워하는 고객들이다. 물론 지금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이용하는 기술적 분석 방법이 모두 두 사람의 이론을 따른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들이 세운 기본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금융공학이 발달하고 복잡한 수식이 주가예측에 이용되면서 기술적 분석 방법들이 수백, 수천 가지로 늘었지만, 그래도 과거의 주가를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기술적 분석은 희망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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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이론은 알프레드 코올스에 의해 전적으로 근거 없음이 확증된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의 주가 예측들을 모아 컴퓨터로 분석해본 결과, 전문가들의 전망(심지어 기술적 분석이 아닌 정통 기업분석이론까지 포함해서)이나 기술적 분석가들의 주가 예측이 겨우 40% 정도의 적중률을 보였음을 밝혀냈다.
문제는 일부 투자자들이 여전히 그 사실을 믿으려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술적 분석이 틀렸다면 그것은 신호를 잘못 해석한 사람의 탓이지 이론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변명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권방송이나 각 언론사 홈페이지 증권란에는 기술적 분석으로 주가를 예측하고 그것을 파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누군가는 돈을 주고 그것을 산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춤추는 세상’ 이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세상 사람들은 달의 궤도를 측정하고, 화성의 착륙지점을 0.1m 오차로 찾아가는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화성에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여기에 다른 이유는 없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꿈이 깨지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