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은행, 정부·여당 돈 풀 때마다 등판하는 ‘애니콜’ 되다

[금융 인사이드] 또 은행 돈으로?

  • 나원식 비즈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4-03-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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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여당, 은행 20조 원 끌어 중소·중견기업 살리기 나서

    • 실적 악화 + 고금리에 신음하던 기업들, “매우 고무적”

    • 은행권 “정치권 무리한 환원 요구, 대내외 투자자 신뢰도 떨어뜨려”

    [Gettyimage, 각사]

    [Gettyimage, 각사]

    “민간은행이 맞춤형 기업지원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정부도 기업금융 관련 규제를 합리화해 기업금융을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2월 14일 민당정협의회)

    정부와 여당이 어려움에 빠진 중소·중견 기업 살리기에 나섰다. 고금리 위기 극복과 신사업 전환을 지원하겠다며 2월 14일 총 76조 원 규모 맞춤형 기업금융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 가운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자금 약 20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소상공인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와 이자 환급 등 소상공인 금융 지원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이번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

    기업은행과 5대 시중은행이 5조 원을 투입해 중소기업의 금리 5% 초과 대출에 대한 금리를 1년간 최대 2%포인트 감면해 주는 내용 등이 담겼다. 또 신사업 진출과 사업 확대 등 자금이 필요한 중견기업을 위해 최초로 중견기업전용펀드도 출시하기로 했다.

    빚 ‘1000조 원’ 찍은 기업들… “숨통 트여”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기업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에 정부와 여당이 내놓은 이번 방안은 시의적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탓에 기업의 빚이 늘고 있는데다 고금리의 영향으로 부담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5.2%다. 2022년 같은 기간에 기록한 121%보다 4.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한국의 기업부채 비율은 홍콩(258.0%), 중국(166.5%), 싱가포르(130.6%)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특히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중소기업의 은행 대출 잔액은 1001조4000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말 1003조8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돌파했고, 연말 대출 상환 등으로 12월엔 999조9000억 원으로 소폭 줄었다가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서 부담은 더 커졌다.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신규 취급액 기준으로 2020년 평균 연 2.97%에서 2021년 2.98%, 2022년 4.44%로 쭉 올랐다. 지난해엔 평균 5.34%까지 치솟았다. 2012년 5.66%를 기록한 이후 11년 만에 5%대로 다시 올라섰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 대출 만기가 한꺼번에 몰릴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5대 시중은행의 올해 중소기업 대출 만기 도래액은 204조 원가량인데, 이 중 40%가량의 상환 기간이 4~7월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몰린 중소·중견기업들은 정부·여당의 대책을 환영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글로벌 위기가 끝나가고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시기에 분야별로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도 “중견기업은 높은 금리에 정책자금 공급 부족 등 구조적 한계로 애로가 심각하다”며 “중견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금리 부담을 완화하고 직접금융 강화 방안이 대책에 포함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정치권 필요할 때마다 은행 쥐어짜서야…”

    2월 15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맞춤형 기업금융 은행장 간담회에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이 5대 시중은행장, 산업은행 회장, 기업은행장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동아DB]

    2월 15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맞춤형 기업금융 은행장 간담회에 김주현 금융위원장(가운데)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이 5대 시중은행장, 산업은행 회장, 기업은행장 등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동아DB]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시중의 유동성이 한계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면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것. 자금 지원으로 연명하는 기업이 늘어나게 되면 구조조정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무조건적 지원이 아닌 한계기업과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을 구분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거세다.

    은행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팔 비틀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금융 당국은 최근 은행권이 기업금융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했음을 강조했다.

    2월 15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맞춤형 기업금융 은행장 간담회’에서 “적극 참여해 준 5대 은행장에 감사를 드린다”라며 “은행들이 기존 주택담보대출 위주 소비자금융에서 벗어나 기업에 대한 지원을 넓혀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은 정책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미 은행권은 지난해 상반기 금리인하 등을 포함한 8000억 원 규모의 상생금융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후 하반기에는 정부의 압박으로 국내 21개 은행이 전부 참여한 2조1000억 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방안’을 추가로 내놓기도 했다.

    이후 올해 2월 은행들은 상생금융의 일환으로 소상공인 이자 환급을 진행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권은 개인사업자 대출을 보유한 차주가 지난해 납부한 이자에 대해 총 1조3455억 원 규모 1차 환급을 집행했다.

    지난해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소상인·금융소비자단체 회원들이 정부에 가계부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동아DB]

    지난해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중소상인·금융소비자단체 회원들이 정부에 가계부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동아DB]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다시 선심성 정책에 은행을 이용하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은행 관계자 A씨는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대기업에 비해서는 부실이 많은데, 대출을 확대하고 우대금리를 제공하면 수익·건전성 등에 대한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올해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은행권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대출금리 하향세가 이어지게 되면 이자이익 축소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 금융연구원은 국내 은행의 올해 순이자마진(NIM)을 지난해(1.66%)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예상했다.

    금융 당국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확대 등을 대비해 은행에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도 부담이다. 대손충당금은 대출채권 가운데 회수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추정해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설정하는 예산이다. 실제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금융 당국의 압박에 9조 원에 육박하는 대손충당금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5조 원가량에서 크게 늘어난 규모다.

    은행권은 정치권에서 앞으로도 때마다 은행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 이자 환급은 일회성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이를 정례화할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시장금리 상승 등으로 쉽게 실적을 끌어올렸을 경우 일부를 세금 방식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닦자는 이른바 ‘횡재세’ 논의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이와 비슷한 성격의 이자 환급에 대한 주문은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난다.

    은행 관계자 B씨는 “중소·중견기업이 살아야 우리 경제가 안정되고 은행으로서도 수익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공감한다”면서도 “정치권이 은행 이익에 대한 환원을 지속해 요구하는 모습은 대내외 투자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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