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경제일수록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을 중시하고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52개 주요 생필품에 대해 ‘가격 관리’를 하겠다고 한 것은 한마디로 생뚱맞다. 1970년대에나 통용되던 방식 아닌가. 독점가격도 아니고 공공재도 아닌 일반 재화의 가격을 ‘관리’하는 일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오죽하면 현 정부 경제팀을 ‘올드보이’라고 부를까.
이명박 대통령이 4월28일 재계 총수들을 만나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공격적 경영으로 과감하게 투자해서 일자리를 창출해달라”고 주문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놓고 고심하는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또 실제로 불황 때 투자해서 호황기가 되돌아왔을 때 열매를 거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울 때 위험관리에 들어가고 재고가 쌓일 때 투자를 줄이는 긴축경영이야말로 진정한 시장경제 원리가 아닌가. 기업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며 법 테두리 안에서 ‘탐욕스럽게’ 최대한 이윤을 늘려나가는 게 본연의 일이다. 그것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쇠고기 협상 파동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이를 시장의 기대치에 순응하는 경제정책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얻는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후 처음 단행한 개각에서 ‘소통’을 무시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유임시키는 대신 최중경 차관을 경질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대리 경질’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노무현 정부 실패 타산지석 삼아야
시장은 성장론자인 강 장관의 유임을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선택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일관된 경제정책 추진이 필요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고 해명한 이 대통령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장관을 바꾼다면 그것이 오히려 시장의 신뢰를 잃는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강 장관의 유임으로 경제정책의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뀐 게 없다는 시장의 반응에 대해선 귀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경제를 생각할 때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떠올리곤 한다. 그는 노동자들과 저소득층의 절대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중립적인 정책으로 시장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얻으면서 브라질 경제를 살려내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탄생 배경 역시 이와 비슷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좌편향적이라는 시비에 휘말리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대 어느 정부보다 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획기적인 복지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서민들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더 많이 지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시장의 신뢰를 저버리고 선진화 구호를 외쳐본들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21세기 글로벌 경제시대에 개발독재 시대 초기에나 통할 법한 패러다임으로 경제를 이끌어선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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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난 5개월 동안의 경제정책이 결과적으로 대기업과 소수 고소득층을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에도 한번쯤은 귀 기울여야 한다. 무릇 정치란 고통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끌어안고 어루만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경제는 경제적 효율성만 우선시하다 보니 양극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이 열린 마음으로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되돌아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