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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 파괴, 일탈 욕망의 대리만족

여고생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 돌풍과 10대들의 감성코드

금기 파괴, 일탈 욕망의 대리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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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버공간에서 현실공간으로 옮겨온 여고생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에 10대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언어파괴와 세계의 단절, 일탈 욕망과 금기파괴 심리에 대한 생생하고 통쾌한 묘사 때문이다.
  • 한 10대 독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 저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학교생활이 어떤지 알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금기 파괴, 일탈 욕망의 대리만족
견우74라는 ID를 통해 인터넷에 연재된 소설 ‘엽기적인 그녀’는 2001년 영화화돼 수백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일년 후엔 역시 인터넷 연재소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다시 영화화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인터넷 공간에는 젊은 남녀들의 시시콜콜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 소설이 수십만 개 널려 있다. 중에서 수십만 명의 독자를 가지고 있는 소설만 해도 ‘백수의 사랑 이야기’ ‘내 사랑 싸가지’ ‘백조와 백수’ ‘옥탑방 고양이’ 등 십여 편에 이르며, 이들은 이미 출판돼 나왔거나 곧 출판될 예정이다. 몇몇 작품은 영화화가 결정돼 한창 작업이 진행중이기도 하다.

이 소설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소설을 쓴 사람들의 나이가 많아야 서른을 넘지 않는다는 점. 둘째, 그들 세대에 딱 들어맞는, 그러나 다소 과장돼 있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 셋째, 글쓰기 능력보다는 유머 감각에 의존한다는 점. 세 번째 특성은 이들 중 상당수가 ‘유머 게시판’에 연재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정에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귀여니’의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가 있다.

‘사이버문학의 2차 공습’

‘귀여니’(본명: 이윤세)의 ‘그놈은 멋있었다’(전2권, 도서출판 황매)가 출간된 2003년 3월15일을 후세의 문학 연구자들은 ‘사이버 문학의 2차 공습일’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출간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20만부 이상이 팔려 나간 이 작품(?)은 한국 출판에 판타지 문학 열풍을 불러온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전12권, 황금가지)에 이어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사이버 문학의 힘을 분석해보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80만부 이상이 팔렸으며 고교생들(주로 남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잡은 ‘드래곤 라자’와 비교된다.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와 세 가지 측면에서 같고 두 가지 측면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이버 공간을 자양분으로 삼고 자라나서 현실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왔다는 점. ‘드래곤 라자’는 1997년 10월3일부터 PC통신 하이텔의 ‘창작 연재란’에 연재되기 시작해 100만에 달하는 조회 수를 얻었으며 1998년 5월에 종이책으로 출간된 지 6개월도 안 돼 50만부 이상이 팔려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2001년 8월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의 한 인터넷 카페에 연재되기 시작해 30만명에 이르는 회원을 확보했으며 올 3월에 소설로 나온 이래 계속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둘째, 이영도와 귀여니 두 사람 모두 신춘문예 등을 통한 등단 절차, 문예지 중심의 문단 활동, 작품집 출간이라는 전통적인 문학 출판의 코스를 밟지 않았다는 점. 거칠게 말하면 ‘문단 공인 작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필자는 1987년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문학과지성사)가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필자는 ‘얼마나 좋은 작품이기에 등단도 안 한 작가의 작품을 출판했을까’ 하고 기이하게 생각했고, 출판사에서는 ‘워낙 좋은 작품이라서 등단 절차 없이 전작으로 출판하기로 했다’고 작품 뒤쪽에 애써 변명의 글을 달았다.

1991년에는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민음사)이 같은 형태로 출판됐고, 이제는 이런 출판 형태가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영도 이후’와 ‘이영도 이전’에는 쉽게 넘어설 수 없는 문턱이 존재한다.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가 성공한 이후 상당수의 문학청년이 위계를 갖춘 상상의 공동체인 ‘문단 입문’을 통하기보다는 사이버 공간에 자신의 글을 연재함으로써 대중의 맨 얼굴과 직접 맞닥뜨리는 쪽을 통해서 자기 글을 사회화하는 전략을 택하게 됐다. 이들은 문학 원로들의 승인이라는 귀찮은 통과의례를 거치기보다는 상상의 동료(독자)들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따분하고 짜증나는 입사식을 좀 더 재미나게 통과하려고 애쓴다. 그 결과 PC통신과 인터넷의 소설 연재 공간엔 하루에 수천 편의 소설이 등록되는 글쓰기 열풍이 몇 년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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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은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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