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 봉사활동을 하러 온 YWCA 학생들과 함께 콩밭에서.
도시 생활에서 시간은 참 중요했다. 시간 맞춰 가야 하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시간에 맞춰야 했다. 아침에 못 일어나는 나는 참 힘들었다. 아침이면 모든 기운이 빠진 듯, 등짝에 한짐을 진 듯. 몸부림치다 쫓기듯 일어나고. 아이 재촉해 유치원 보내고, 나도 준비하고 나서야 했다. 아침마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았지. 아침에 느긋하게 똥을 눌 겨를이 있나. 전날 채운 속을 비우지 못하고 새날을 시작하곤 했다.
지금 우리 집 마루에도 시계가 하나 걸려 있긴 하다. 지금 몇 시지? 하고 시계를 볼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 맞춰 해야 할 일이 없다. 자연에서는 때를 알고 때에 맞춰 살아간다.
열두 번을 더 우는 뻐꾸기
겨울에는 일찍 잔다. 해가 일찍 떨어져 어두우니 여섯 시도 안 돼 저녁 먹고. 그리고 나면 겨울밤이 얼마나 긴가. 책 보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도 일찍 잔다. 그리고는 늦게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야 춥기만 하니 해 뜨도록 이불 속에서 지낸다. 책을 보기도 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 봄이 돼 해가 길어지고 일거리가 늘어나면, 점점 일찍 일어난다. 하지(夏至) 무렵이 되면 해 따라 새벽같이 일어나지. 남편은 새벽 5시 먼동이 틀 무렵이면 들에 간다. 그런 남편을 보고 마을 할아버지가 잠도 안 자고 밤새 일을 했냐고 하실 정도다. 저녁 해거름 시원하니 해질 때까지 일하게 된다. 집에 와서도 오리와 닭을 돌보고 집안에 들어오면 8시가 훌쩍 넘는다. 그러니 여름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다. 고단하면 한낮에 잠깐 누우면 된다.
아이들은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절로 깨어난다. 일어나서 마당에 나와 오리 밥도 주고 자기 밭에도 한번 가보고. 아이들이 이렇게 움직이면 아침밥 준비를 한다. 시간이 되니 먹는 게 아니라 배고플 때 먹기 위해서다. 우리 집 밥 때는 식구들 배고플 때다. 아침에는 더운밥에 새로 찌개를 끓이고 금방 뜯어온 싱싱한 푸성귀를 올리고. 아주 푸짐하게 한 상 차린다. 온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밥 먹는 시간은 서로를 나누는 시간이다. 오늘 할 일, 어젯밤 꿈, 아침에 들은 새소리….
창피한 이야기를 하나 하면, 서울서 지독한 변비였다.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소리 없이 나오는 독한 방귀. 큰애도 학교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급했다.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고, 책가방을 벗지도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학교에서는 생각이 없었는데 집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급하게 밀려나온다고.
신선한 똥 누기
시골로 이사 와서, 우리 집을 짓기 전에, 마을 빈집에 살았다. 그 집엔 대문간에 뒷간이 달려 있다. 오지를 묻은 뒷간. 그런 뒷간이 낯설어 힘들었다. 남의 집이니 맘대로 고칠 수도 없고 참고 살긴 살아야 하는데 어찌나 불편했던지. 비가 오시는 날이나 밤에 가려면 더욱 힘들었다. 한데 그 불편한 뒷간에 하루 한번 가는 신기한 일이 생겼다. 머리가 아닌 몸을 움직이는 삶. 아무래도 많이 먹는 푸성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편안함. 이런 삶이 준 선물이었나 보다.
큰애가 학교를 그만두었을 때다.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공부를 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아침 먹고 치우고 맨 먼저 큰애와 공부를 하곤 했다. 햇살 쏟아지는 창가에 앉은뱅이책상 하나 놓고 둘이 마주앉아 공부를 하다 보면 잠깐! 큰애가 뒷간을 다녀오고 잠시 뒤 내가 가고. 그 시간이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왔는지. 공부 시간에 똥이 마려울 수 있다니.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이만큼 편안할 수 있구나.
이렇게 시골 생활이 조금씩 자리잡히면서 몸 리듬이 자연스레 바뀐다. 요즘은 아침에 뒷간을 가곤 한다. 시골 살다 보니 다른 건 몰라도 뱃속 하나는 편하게 산다.
며칠 전에 큰애가 “먹고 자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이제 알았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먹고 싶으면 그걸 만들어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내 몸이 바라는 대로 산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하루하루 속에 있다. 큰애는 한창 자라는 사춘기. 자기 몸을 건강하게 가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