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시 노성면 소재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 고택은 고건축 전문가들과 전통문화 연구자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필수 답사 코스일 정도로 전통미를 잘 간직한 종가다.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보존이 잘 되어 있어 한해 평균 1만5000여명의 답사객이 이곳을 찾는다.
윤증 고택에서 눈여겨볼 곳은 사랑채 앞에 놓인 석가산(石假山)이다. 사랑채에 앉아 정원을 둘러보면 40∼50cm 크기의 돌들로 조성된 ‘미니 산’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이것이 바로 금강산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석가산이다. 화창한 날 사랑채 마루에 앉아 멀리 동남쪽을 바라보면 계룡산 암봉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선을 마당으로 내리면 금강산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사랑채 옆에는 ‘도원인가(桃源人家)’라는 편액 글씨가 걸려 있는데 ‘무릉도원에 사는 사람의 집’, 즉 ‘금강산 봉우리에 걸린 구름 위에 떠 있는 집’이란 뜻이다.

한때 요긴하게 쓰였던 각종 생활용품.
사람들이 윤증 고택에 주목하는 이유는 집 자체보다는 이 집을 통해 전해내려오는 조선의 선비정신 때문일 것이다. 명재가 남긴 가장 큰 선비정신은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정에서 스무 번이나 벼슬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명재는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벼슬을 수락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