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
정지영은 놀랍게도 논개가 왜장을 안고 죽었다는 얘기는 입증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논개가 역사 속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6·25전쟁 이후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는 이데올로기 장치로 논개의 충절이 활용된 결과다. 그 이야기 안에서 논개는 기생으로서 본래 타락한 존재이지만, 국가에 충성을 바치면 순결해질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됐다. 논개를 민족의 이름으로 현창하지만 사실 여성과 소외 계층을 배제하는 위계 논리가 민족 담론 안에 작동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요네타니의 글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사람들의 운명을 추적한 것이다. 그 수가 대략 수만에 달하고, 종전 이후 6000여 명이 귀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뜻밖에도 귀환 포로들이 대부분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음을 담담히 서술한다. 그동안 일본의 대규모 인신 약탈을 비난하는 소리가 높았지만, 막상 귀환 포로들을 조선에서 어떻게 대접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영휘의 글은 홍의장군 곽재우가 정유재란 때,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는 이야기가 후대에 조작된 것임을 실증한다. 영조대 노론의 정신적 지주인 조헌과 칠백의총을 현창하자, 그에 대항하여 남인 집단이 ‘동고록’을 출간해 화왕산성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상의 글들은 임진왜란에 대한 한국인의 민족적 기억이 실제로는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는 당혹스러운 사실을 일깨워준다.
한편 존 B 던컨은 역사에서 기억이 국가나 특정한 집단에 의해 조작되는 것만은 아님을 폭넓은 시각에서 보여준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민간에 유포된 ‘임진록’에 드러난 일본과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지적한 뒤, 개항 이전에 이미 조선의 비엘리트층 사이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향촌 사회를 뛰어넘는 일체감이 존재했다고 평가한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경험은 점진적으로 한국 사회에 ‘민족’이 형성되는 기반을 제공한 셈이다.
이순신의 기억에 대한 계보를 추적한 정두희는 나아가 기억 연구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순신에 대한 근대적 기억을 검토한 결과 신채호를 제외하면, 모두 이순신이 당면했던 조선의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일본에 대한 분노를 감추었다고 지적한다. 이순신은 무서운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도피처(229쪽) 였던 셈이다. 정두희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한 기억의 역사를 역사적으로 파헤치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랴오둥과 중국적 세계질서
이 책의 총설에서 김자현은 임진왜란을 근대 일본이 취한 팽창주의의 역사적 전조로 보는 시각을 경계한다. 그것은 근대 세계의 형성을 정적인 대륙세력과 역동적인 해양세력의 충돌로 이해하는 유럽 중심적 사고방식에 근거한 이해라는 것이다(33쪽). 임진왜란은 종종 책봉-조공에 기초를 둔 동아시아의 전통적 질서를 무너뜨린 획기적 전쟁으로 평가되지만 그러한 지적은 그 뒤 어떠한 질서가 이 지역에 들어섰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한 설명은 강대국 일본의 대두라는 근대적 상황을 연상시킬 뿐이다.
전통적인 세계질서의 파괴라는 담론은 또 한편으로 이 전쟁에 참가한 명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하지만 케네스 스워프는 명의 황제인 만력제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또한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에 명의 서북방 닝샤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는데, 만일 이 사건이 없었더라면 명의 주력군이 일본군보다 먼저 서울에 당도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명의 황제는 조공국에 대한 책봉국의 의무를 강조했고, 그 점에서 중국의 전통적 외교관계는 여전히 견고했다는 것이다(353쪽).
김한규의 글은 이 문제에 대한 거시적인 이해를 돕는다. 그는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역사적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당 시기에는 초원지대의 유목민족에 맞서 관중에 근거한 중원왕조가 동아시아 세계를 주도하였으나, 송-청 시기에는 랴오둥에서 건립된 요, 금, 원, 청 등 정복왕조가 잇달아 출현하여 동아시아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런데 원과 청 사이에 있었던 명은 고대시기처럼 재차 중원에서 건립된 한족 왕조였고, 그 결과 이 시기 랴오둥은 주변부로 전락했다. 힘의 공백지대가 된 랴오둥에 고려(말)와 조선(초)이 진출을 시도했고, 그 다음 일본이 나선 것이 임진왜란이었다. 따라서 이후 랴오둥에 출현한 청의 누르하치가 동아시아 패권을 재차 장악한 것은 송-청 시기 동아시아 세계 질서의 정상적인 회귀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임진왜란이 주변 지역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기는 했으나, 주자학과 문관 관료제에 기초한 동아시아의 전통적 세계는 당분간 견고하게 유지됐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 책은 임진왜란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앞으로 논의되어야 할 많은 숙제를 남겼다.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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