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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제대로 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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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제대로 보고 있나요?

‘주간 시력’이 ‘야간 시력’보다 절대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책, ‘색맹의 섬’

색맹은 망막의 시세포에 이상이 있어 색깔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유전 형질이다. 부분색맹과 전색맹으로 나뉘는데, 부분색맹 중 적록색맹은 남성 20명당 1명꼴로 흔한 편이고, 빛을 받아들이고 색을 구별하는 시세포인 원뿔세포(추상체)가 없거나 거의 기능하지 않는 전색맹은 3만~4만명당 1명꼴로 희귀하다. 적록색맹이 ‘오렌지색 풀밭’처럼 붉은색과 초록색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전색맹은 세상이 온통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이쯤 들으면 “쯧쯧. 세상 살기 힘들겠네”라든지 “온통 잿빛이라니 무슨 재미로 살아?” 하는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신경학자인 올리버 색스의 생각은 다르다.

‘완전한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어떨까? 그 사람들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 자체를 느끼지 못할까? 그들도 우리가 보는 세계 못지않게 강렬하고 활기 넘치는 세계를 갖고 있을까? 어쩌면 그들은 명암과 질감과 움직임과 깊이를 뚜렷이 인지하는 능력이 더욱 발달해 어떤 면에서는 우리 것보다 더 강렬한 세계, 실체가 강조된 세계-우리로서는 위대한 흑백사진 작품 안에 담긴 울림을 통해서 어렴풋이 알아챌 수밖에 없는 세계-에 사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사소한 것, 하나마나 한 것에나 한눈을 파는 우리를 도리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올리버 색스 지음 ‘색맹의 섬’, 이마고)

올리버 색스에게 이런 궁금증을 풀 기회가 찾아왔다. 태평양 미크로네시아의 섬 핀지랩. 선천성 전색맹자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색맹의 섬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안과의사인 봅과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시각을 연구하는 생리학자이자 전색맹인 크누트가 동행했다.

색맹의 섬 핀지랩

특히 크누트는 일행에게 전색맹의 특징을 사전에 관찰할 기회를 제공했다. 전색맹자는 태양 아래서는 이중삼중으로 선글라스를 끼고도 쉴 새 없이 눈을 깜빡이거나 찌푸리고, 경련을 일으킨다(안진증). 원뿔세포가 없기 때문에 시력이 정상의 10분의 1밖에 되질 않아 식당의 차림표를 읽으려면 4배율 돋보기를 꺼내 들어야 할 정도다. 대신 새벽과 저녁, 달밤에는 고양이처럼 편안하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는 데 선수다. 이런 타고난 능력을 살려 크누트는 흑백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방문한 핀지랩은 적도 부근, 우리에게도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괌·사이판과 1946년에 원자폭탄 실험이 진행된 비키니 섬 사이의 산호섬으로, 폰페이 섬을 둘러싸고 점점이 박혀 있는 8개의 산호섬 가운데 하나다. 1775년 무렵 핀지랩 거주자는 1000명에 이르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섬을 덮친 태풍으로 인구의 90%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나머지도 대부분 굶주리다 죽어버려 몇 주 만에 생존자는 2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고립된 핀지랩 주민들은 불가피하게 근친교배로 인구를 늘려갔고,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색맹의 급증이다. 태풍 사건 뒤 200년 이상 지나자 섬 인구 700명 가운데 3분의 1이 ‘마스쿤(안 보인다는 의미)’ 보유자로 확인됐고, 57명은 전색맹이다. 다른 지역의 색맹 발생률이 3만분의 1 미만인 데 반해 핀지랩에서는 12분의 1이나 됐다. 이 사실만 봐도 핀지랩은 부인할 수 없는 ‘색맹의 섬’이다.

이런 영향은 1950년대에 핀지랩 주민들이 대거 이주한 인근 폰페이 섬에서도 나타났다. 핀지랩 출신이 모여 사는 만드에서는 지난 40여 년간 다른 마을과 접촉이 거의 없었던 탓에 전색맹 ‘마스쿤’이 핀지랩보다 더 흔하다.

핀지랩을 거쳐 폰페이 섬을 여행한 올리버 일행은 ‘색맹의 섬’에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타고난 팔자를 탓하며 조상을 원망하는 원주민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마스쿤? 물론, 환한 곳을 기피하고 시력이 형편없는 마스쿤들은 글자가 코에 닿도록 바짝 다가가지 않으면 책이나 칠판 글씨를 읽을 수 없어 학습 장애가 되기 쉽고, 대낮에는 장님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야외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대신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다녀야 하며, 커서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처지에 놓인다. 또 이들이 낳는 자식도 같은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짝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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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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