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밀애’ ‘화양연화’ ‘언페이스풀’(왼쪽부터)
사람들은 대개 결혼을 한다. 그리고 결혼한 사람 중 많은 이가 ‘바람’이라고 하는 외도의 유혹을 겪어보았다고 고백한다. 때로 누군가는 “외도를 했노라” 말하기도 한다. 결혼은 인생에서 중대한 일 중 하나다. 결혼의 긴장이 배우자의 죽음 다음 순위에 있다는 것도 결혼의 속성 중 일부를 짐작케 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성(性)과 성장배경이 다른 한 사람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연애는 기록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결혼에는 문서 기록과 더불어 법적 책임이 따른다. 가족의 일원이 됨으로써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새로운 의무조항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일탈 욕망을 부추기는 금기
금지가 열정을 불러일으킬 때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은 제도가 허용하지 않는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이는 비단 신화의 문제만이 아니라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토마스 하디의 소설 ‘쥬드’에서처럼 근친끼리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이미 결혼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랑을 경험하기도 한다. ‘데미지’는 며느리를 사랑하게 된 시아버지를 그려내고, ‘페드르’는 의붓어머니를 사랑한 아들의 이야기다. 이른바 ‘패륜’을 그리고 있다.
‘패륜’이란 무엇인가. 제도를 역습하고 윤리를 전복하는 행위들, 우리의 일상과 질서를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들, 그런 것들이 바로 패륜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영화에서만큼은 ‘패륜’을 허용하는 것일까. 아니 왜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금지된 욕망들을 영화를 통해 재현하고 체험하는 것일까. 과연 금지란 무엇이며, 사랑은 또 무엇일까.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제도로부터 일탈하고픈 사람들의 욕망이 용해된 전복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정념을 막을 수는 없다. 머리는 그 정념을 금지해야 한다고 명령하지만, 영혼 속 어딘가에 있는 열정은 그 명령을 거부하기 일쑤다. 정념과 도덕이 함께 간다면 다행이지만, 또 정념과 제도가 함께 머무른다면 축복이겠지만 세상엔 예외가 너무도 많다. 질서를 넘어서는 사랑, 어쩌면 그것은 금지된 것이기에 더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