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겨울 그리고 가을 _ 유종호 지음, 현대문학, 353쪽, 1만5000원
전쟁 중인 1951년의 경험담을 적은 이 책을 쓰면서 어느 때보다도 글쓰기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휘둘리고 떠밀리기만 했던 옛날과는 달리 내 편에서 사람들을 심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기억하는 대로 재현하는 것이, 그대로 그들을 심판해서 그 사람됨을 규정해놓는다는 생각은 유쾌했다. 당시의 불안과 절망감에서 해방되어 다시 한번 느긋하게 그 시절을 사는 듯한 느낌도 아주 괜찮은 새 경험이었다. 나를 겁주고 모욕했던 시대에 대해 복수한 것 같은 느낌이다.
기억의 앨범을 마련한 것은 사적이고 감상적(感傷的)인 이유에서지만 옛일을 기록해서 소소한 대로 사회사적 기여를 하자는 생각도 강했다. 젊은 세대의 역사적 상상력을 계발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몽된 역사적 상상력은 엄정한 지적 훈련을 통해서 가능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과거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세목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만 연마될 수 있다. 가령 1·4후퇴 당시 사람들은 등짐을 지고 피란길에 올랐다. 당시 중학생 또래 아이들은 어떤 입성을 입고 있었을까? 요즘처럼 파카나 두꺼운 점퍼를 입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사람은 현재의 상황과 코드로 과거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엔 상당한 부잣집 자녀가 아니라면 외투 같은 것은 입을 생각을 못했다. 그러니 대부분 교복 차림이고 내의라도 두툼하게 입었다면 다행이었다. 그나마 어른들은 두루마기나 외투를 입은 이가 있었다. 또 당시엔 돌이 씹히지 않는 밥을 먹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이 없는 양곡 밥을 먹게 된 것도 30년밖에 되지 않는다. 사소해 보이지만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선 중요한 사안이다.
거의 60년 전 일인데 어떻게 그리 세세히 기억하는가, 혹 지어낸 부분은 없는가, 하고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묻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철학자 박치우(朴致祐)가 맞이한 빨치산으로서의 죽음을 비롯해서 모두 당시 보고 들은 것의 재현일 뿐이다. 레이션 박스에서 나오는 콘돔에 대한 노무자의 반응이나 천막생활에서 생긴 고환가려움증에 쇠 녹 방지 약을 발랐다가 고생하는 얘기나 한센병 환자를 숨기고 밥장사를 한 밥집의 공포를 꾸며댈 재주가 내게는 없다. 모두 실제 경험이고 그것을 간파하는 것이 독자 쪽의 능력일 것이다. 부정적으로 나오는 인물인 반장 황씨도 겪지 않고선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현장 경험자만이 아는 진실을 ‘참무리’라고 명명한 적이 있다. 참말의 ‘참’과 달무리의 ‘무리’를 합친 말이다. 내가 재현하고자 했던 것은 1951년의 상황과 미 해병대 보급부대 주변의 ‘참무리’다. 계몽된 역사적 상상력이란 과거의 ‘참무리’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철학자 산타야나의 말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를 “상기하자 6·25”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은 피상적이고 극히 표피적이다. 우리의 과거사 전반에 해당되는 사안이란 게 나의 생각이다.
유종호│문학평론가│
아톰의 슬픔 _ 데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일본 애니메이션 창시자로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의 20주기 기념 산문집이 출간됐다. 이는 인류의 오랜 숙제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답서다. 그는 만화가 아닌 글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나는 ‘우주소년 아톰’을 그리며 과학지상주의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첨단과학이 폭주하면 어떻게 될까, 행복을 위한 기술이 인류 멸망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제를 담았습니다.” 그는 세상의 많은 사람이 ‘이길 수 없는 악당에게도 용기 있게 맞설 줄 아는 아톰’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저자는 묻는다. “지구는 이제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인류는 어디서부터 항로를 이탈한 것일까요?” 문학동네/ 188쪽/ 8500원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사전 뒤집기 _ 김규회 지음
상식을 삶의 재미로 여기는 저자가 상식책을 내놓은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상식 중 상당수가 신뢰하기 어렵고, 잘못된 상식은 인생에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겨서다.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영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다, 병맥주와 캔맥주는 맛에 차이가 있다는 ‘잘못 알고 있는 세상이야기.’ 우리나라 화폐에 여성은 등장하지 않았다, 삼천 궁녀는 실제 있었다, 온달은 바보였다는 ‘잘못 알고 있는 국사이야기.’ 동방견문록은 실제 여행기다, 피사의 사탑은 기울어지게 설계했다는 ‘잘못 알고 있는 세계사이야기.’ 판다는 곰이다, 개는 색맹이다, 낙타는 혹 때문에 오래 버틴다, 물은 많이 마실수록 건강에 좋다는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읽기 쉽게 정리돼 있다. 케이앤제이/ 312쪽/ 1만2000원
피어라, 남자 _ 김광화 지음
책의 부제인 ‘농부 김광화의 몸 살림, 마음 치유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한 남자의 자아성찰기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보듬어가는 과정이고, 2부는 몸과 마음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3부는 부부 간에도 설레는 관계를 유지하는 법, 4부는 사람 관계를 맺는 법이다. 저자는 치유 과정을 거치며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신감을 얻었고, 덕분에 잃어버렸던 아버지와 남편 자리를 되찾았다. 저자는 치유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치유가 되면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게 되고, 또한 새로운 나를 만나기도 하지만, 새로운 자아를 만난다고 해도 여전히 고쳐나갈 부분이 많다. 그러니 치유는 늘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이루/ 252쪽/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