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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나는 복수의 변주곡

사랑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나는 복수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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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가 복수다. 억울하게 당한 주인공이 치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악한에게 되갚음할 때, 관객은 통쾌하다. 그러나 복수가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또 정당한 복수, 합리적 복수라는 게 있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복수를 꿈꾼다. 자비롭게 용서하라지만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나는 복수의 변주곡

박찬욱 감독의 복수3부작,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왼쪽부터).

얼굴 없던 분노여, 사자처럼 포효하던 분노여, 산맥을 넘어 질주하던 증오여, 세상에서 가장 큰 눈을 한 공포여. 강물도 목을 죄던 어둠이여, 허옇고 허옇다던 절망이여, 내 너에게로 가노라. 질기고도 억센 밧줄을 풀고, 발등에 깃털을 얹고 꽃을 들고, 돌아가거라. 부드러이 가라앉거라. 풀밭을 눕히는 순결한 바람이 되어, 바람을 물들이는 하늘빛 영혼이 되어.

- 이진명,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복수’의 사전적 의미는 ‘원수를 되갚는다’다. 원수를 갚는 것, 그러니까 복수와 용서는 한 끗 차이다. 상처 받은 영혼이 등장한다. 아이를 잃거나, 처절하게 버림받아 자존심이 상했거나, 부모나 친구를 잃은 사람들. 대개 ‘복수’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상실을 전제로 한다. 만일 노력해서 복구가 가능하다면, 그러니까 이전 상태로 회복이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복수를 꿈꾸지 않을 것이다. 복수란 내가 잃어버린 만큼 상대도 무엇인가를 잃기 바라는 마음, 그래서 그 상실의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상처의 열평형 상태, 복수는 회복이 아니라 상처의 전이를 위한 노력이다.

회복할 수 없는 어떤 상실 앞에서 복수를 다짐하지 않는다면, ‘용서’의 이름으로 그것을 지워내는 방법이 있다. 이는 상대방을 구원하는 것이라기보다, 나 자신을 결핍과 상실의 고통에서 견인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으로부터 나를 놓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용서란, 극한의 노력을 요구한다. 용서라는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 때, 하나밖에 없는 나의 부모를 괴롭혔을 때, 사랑하는 아내나 남편에게 해코지를 했을 때, 그래서 그들과의 행복했던 순간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과거완료형이 되고 말았을 때, 어떻게 쉽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최근 강호순이라는 연쇄살인범 때문에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그는 여러 가족에게서 딸 혹은 어머니를 무참히 앗아갔다. 함무라비법전을 따르지 않는 한, 상처를 똑같이 되돌려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미 산술적으로도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영화나 문학에서 ‘복수’는 아주 오랫동안 다뤄진 소재 중 하나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많은 이야기는 자신의 남편을 바람나게 한 여자들에 대한 헤라의 복수이고, 자식을 빼앗아간 제우스에 대한 복수이며, 여러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복수 성격의 형벌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것을 되갚기로 다짐한 햄릿은 복수극의 고전적 영웅임에 틀림없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누명을 쓴 채 지하 동굴에 갇힌 몽테크리스토 백작 역시 복수를 이야기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회복할 수 없는 상실에 맞닥뜨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복수와 용서, 둘뿐이라면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

사랑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나는 복수의 변주곡

‘브레이브 원’

복수라는 뫼비우스의 띠

‘복수’에 관해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영화는 아마도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일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은 각각 자신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어떤 것을 잃은 주인공들의 대응을 처절하면서도 독특하게 그려내고 있다.

먼저 ‘복수는 나의 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설킨 복수의 고리를 보여준다. 신부전증을 앓는 누이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청각장애가 있는 동생은 자신의 신장을 팔려고 나선다. 하지만 장기매매 사기꾼에게 걸려들어, 신장을 빼앗기고 돈도 잃는다.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구하러 나섰다가 수술비조차 잃고 만 것이다.

공교롭게도 때마침 누나에게 맞는 신장이 구해진다. 동생 ‘류’는 수술비를 얻기 위해 애인의 권유에 따라 ‘착한 유괴’를 계획한다. 돈이 많은 가정의 아이를 유괴한 뒤, 수술비만 받고 아이를 돌려주기로 말이다. 돈 많은 사장의 도움으로 누나의 목숨을 살린다는 계획은 언뜻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문제는 실행 과정이 계획처럼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은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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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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