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은 자신의 아이를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려고 애쓰는 한 여자(전도연 분)의 이야기다.
‘복수는 나의 것’에는 복수와 원한만 있을 뿐 완성이 없다. 류의 상실은 또 다른 시행착오를 낳고, 박 사장은 류의 목숨을 빼앗지만 자신도 죽고 만다. ‘1+1=2’가 아니라, ‘1+1=-2’라는 희한한 연산이 반복된다. 그들의 복수는 계속된 손실과 상실을 불러왔다.
이러한 연산은 ‘올드 보이’에서 반복된다. 누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완벽한 퍼즐을 준비해두었던 이우진은 마침내 복수에 성공한다. 이우진은 복수에 성공하고 나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오히려 ‘살아가야 할 이유가 더는 없다’고 판단,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에게 복수란 고통의 근원이었지만, 고통이야말로 그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 실존적 감각이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연작 가운데 마지막 편인 ‘친절한 금자씨’는 용서와 복수, 그리고 자기 구원이라는 주제를 다소 복잡하면서도 헐겁게 이어가고 있다. 금자는 자신을 아이로부터 분리시키고 감옥에 가게 한 백 선생에게 복수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으로 인해 아이를 잃은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금자는 용서를 구함으로써 백 선생의 죄를 가중시킨다. 금자 자신은 용서를 구하지만, 백 선생은 용서받고 싶은 마음조차 없는 파렴치한이기 때문이다. 개와 합성한 백 선생의 모습은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의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하지만 용서란, 그리고 자기 구원이란 대체 무엇일까? 용서받고 싶은 마음과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 이 두 갈래 길은 과연 동궤를 이루는 감정일까?
복수는, 피해자 처지에서만 가능하다. 반면, 용서는 자신이 가해자임을 자인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구원이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인 금자의 선택은 복수와 용서 사이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떠올린다. 복수 3부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복수’가 매우 사적인 형벌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복수하려는 이들은 법에 호소하기보다, 직접 가해자를 처단하고자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복수의 핵심은 바로 그 되갚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느려터진 법, 가볍기만 한 처벌
영화 ‘브레이브 원’의 이야기는 이렇다. 라디오 프로그램 ‘스트리트 워크’의 진행자 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 분)은 직접 마이크를 들고 도시의 소리를 취재한다. 그녀에게 소음 가득하고 먼지 낀 뉴욕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영화의 흐름이 빠르다. 파스텔 톤의 옷을 입은 에리카 베인은 섹시한 애인에게 전화해 청첩장 색깔을 의논한다. 이들 뉴욕 커플의 일상은 우리가 뉴욕에 대해 상상하는 양화들 그 자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밝고 상큼한 일상이 마치 백일몽처럼 빠르게 지나쳐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는 신속히 포장을 벗겨내고, 폭력적 도시의 일면을 공개한다.
결혼 계획에 들뜬 두 연인은 도심 한복판 공원에서 불량배들을 만나 폭행을 당한다. 여자는 3주간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 사이 약혼자는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사고 후 여자의 삶은 전과 확연히 다르다.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에리카의 몸은 회복되었으나, 영혼의 상처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인다. 죽은 약혼자가 되돌아올 리 없으니 말이다. 에리카는 여러 차례 경찰을 찾아가 범인 검거를 종용한다. 하지만 법은 느려터진데다 비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경찰에게 이런 살인 사건은 그렇고 그런 뉴욕 시내의 범죄 행각에 불과하다.
결국 에리카는 불법으로 총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도시의 악을 직접 처단하기 시작한다. 죄 없는 노인을 괴롭히는 지하철 건달, 창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 돈의 힘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그녀의 처단을 뉴욕 시민들이 환대한다. 법을 통한 처벌이 매우 불합리하고 부족하다는 것을 시민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등장한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오던 중, 자신의 아들이 눈앞에서 뺑소니차에 치여 죽는 모습을 목격한 아버지.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자동차 번호판은커녕, 차종도 기억하지 못한다. 뚜렷한 증거가 없으니 경찰은 이 사건을 박스 한구석에 밀쳐둔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범인을 찾아내 마땅한 벌을 받게 하고 싶지만, 법이 도와주지 않는다. 더욱이 뺑소니차량 운전자에 대한 최고형이 구금 10년형에 불과하다는 것도 성에 차지 않는다. 이제 아버지는 직접 범인 잡기에 나선다.
닐 조던 감독의 ‘브레이브 원’이나 테리 조지 감독의 ‘레저베이션 로드’는 모두 개인의 상실감을 전혀 다독이지 못하는 경찰과 법의 한계에 주목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브레이브 원’의 그녀는 복수에 성공하지만, ‘레저베이션 로드’의 아버지는 복수를 못한다. 못 한다기보다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을 치고 달아난 범인을 찾아내지만 죽이지 않고 놓아준다. 그리고 남아 있는 가족에게 돌아간다. 아버지는 뺑소니범을 마주하고, 아들의 죽음이 ‘고의’가 아닌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느꼈다. 역시 아이들의 아버지인 범인은 사고 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