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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대를 이어온 고집 vs ‘싼티’ 벗고 스타덤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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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난 맛집 중엔 몇 세대에 걸쳐 이어온 ‘손맛’에 자부심이 남다른 곳이 많다.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바롤로의 주인장 또한 ‘아버지에게 배운 것말고는 달리 비법이 없다’고 말한다. 한편 저렴한 와인으로 주저앉는 듯했던 바르바레스코는 한 사람의 과감한 시도 덕분에 일약 스타 와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둘 다 오늘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이지만, 한 사람이 있기 전에는 바롤로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다. 최고급 와인이라면 누구나 바롤로를 떠올린다. 단단한 타닌 위에 장미꽃 향기가 싱그럽다. 오래 숙성돼 확실한 맛을 선사하고, 음식과의 궁합도 탁월해 다양성의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와인이다. 바롤로에 밀려 바르바레스코는 오랜 세월 2위에 머물렀으나, 탁월한 생산자 안젤로 가야를 만나 지금은 당당히 바롤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자타공인 바롤로의 최고봉, 자코모 콘테르노의 진면모를 살핀 후에 바르바레스코의 추격을 알아보기로 하자. ‘와인의 왕’으로 불리는 바롤로 중에서도 몬포르티노(Monfortino)는 최고의 바롤로다. 몬포르티노는 양조장 자코모 콘테르노(Giacomo Conterno)에서 생산된다. 보통의 바롤로보다 2년 이상 더 숙성하니 바롤로 리제르바에 속한다.

콘테르노 가문은 1908년, 우리나라로 치면 평안북도쯤 되는 피에몬테 지방의 작은 마을 몬포르테 달바에 작은 선술집을 차렸다. 식당용 와인을 자체적으로 양조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바롤로의 전형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의 양조장 주인 로베르토 콘테르노(Roberto Conterno)는 형과 누나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동안 고향에 혼자 남아 양조장을 지키고 있다. 양조장 이름 자코모 콘테르노는 그의 조부 이름이다.

바롤로 vs 바르바레스코
긴 발효기간이 빚은 견고한 품질

자코모(Giacomo·1895~1971)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거들어 양조 일을 익혔다. 당시에는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 좋은 포도를 구입해 와인을 만들었다. 그는 네비올로 품종의 속성을 꿰뚫고 있었다. 텁텁한 타닌을 단맛이 나도록 버무리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오랫동안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잔당을 없애고 타닌의 진한 맛이 입 안에 확 퍼지는 와인을 만들어냈다.



이후 마을에서 이름난 레 코스테(Le Coste) 포도밭에서 포도를 구매했다. 1920년엔 포도 품질이 특히 좋아서 와인을 종전보다 길게 숙성시키고, 그 이름을 몬포르티노라고 정했다. 이것이 몬포르티노의 최초 빈티지로 알려져 있다. 긴 발효기간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자코모는 네비올로의 두꺼운 껍질에 함유된 타닌을 잘 빼내 오랫동안 숙성시키면 최고의 와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벽돌집같이 단단하고 기운찬 바롤로의 특성이다. 이후 여러 양조장에서 몬포르티노의 품질을 본보기 삼았다.

몬포르티노는 고향 마을 몬포르테 달바에서 따온 이름이다. 직접 양조한 와인의 강하고 인상적인 맛이 큰 인기를 끌면서 선술집을 찾는 손님도 많아졌다고 한다. 그렇다고 자코모가 몬포르티노를 매년 출시한 것은 아니다. 포도 품질이 뛰어난 해에만 출시했다. 포도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보통의 바롤로만 담갔다. 자코모는 아버지를 여읜 1934년부터 1971년 숨을 거둘 때까지 21개 빈티지의 몬포르티노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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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어 자코모 콘테르노를 지키고 있는 로베르토 콘테르노.

품질에서만큼 자코모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설득해 유리로 된 드미자니에 와인을 담아 팔지 않도록 했으며, 대신 긴 나무통인 카라(carra)에 와인을 담아 마차에 싣고 가가호호 방문해 팔았다. 멀리 제노바와 토리노까지 직접 찾아가 납품했다. 드미자니에 담긴 와인은 수명이 짧았지만, 나무통에 담으면 오랫동안 묵힐 수 있었다.

스테인리스스틸 발효통 효과

2004년에 작고한 로베르토의 부친 조반니는 생전에 “나는 단 한 가지 방법으로 바롤로를 만든다. 그건 소위 구식 방법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라 그것말고는 모른다. 그것은 오직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베르토 역시 아버지에게서 배운 방식 외에는 달리 특별한 비법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 부자(父子)의 말에는 자부심과 고집이 스며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자부심과 전통 고수에 대한 고집이 남달랐던 조반니지만, 스테인리스스틸 발효통만은 받아들인다. 그전까지 조반니는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발생하는 와인의 상태 변화 때문에 늘 노심초사했다. 서늘하고 가끔은 시리기도 한 양조장에서 날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그러나 스테인리스스틸 통을 도입한 후 걱정을 덜었다. 편리하게 온도를 유지하고 와인 상태를 지켜주는 덕분에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 있었다. 조반니는 와인 찌꺼기를 일절 거르지 않으며 정제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만든다. 포도를 따서 담을 때도 플라스틱통 대신 나무통을 쓴다. 나무통은 포도 냄새가 배지 않으니 여러 품종이 섞여도 별 탈 없고, 세척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4년에 마침내 포도밭을 소유하게 됐다. 14ha 면적에 네비올로, 바르베라 등을 재배한다. 1978 빈티지가 자기 소유 포도밭에서 생산된 최초 빈티지다. 1978 빈티지는 현재까지 출시된 몬포르티노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파커의 ‘와인 애드버킷’은 1978 빈티지에 100점을 준 바 있다. 현재는 98점을 유지하고 있다. 시음 후기를 보면 ‘잊을 수 없는 와인’이라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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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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