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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교과서인가 전체주의의 보조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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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교과서인가 전체주의의 보조자인가

사회계약론<br>장 자크 루소 지음, 이환 옮김, 서울대학교출판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호화·사치 생활로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루이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악의적으로 덧씌워진 얘기의 하나다. 혁명세력이 왕실에 대한 불신을 증폭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와 흡사한 말이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어떤 공주가 농부들로부터 빵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브리오슈(버터를 듬뿍 사용해 만든 단과자빵)를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는 일화다. 여기서 공주는 뻔뻔한 여자로 매도되지 않는다. 공주가 알고 있는 빵 이름이 브리오슈뿐이었던 데다 호의로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루소는 빵이 없으면 와인을 마시지 못했다고 한다. 한번은 와인을 마시려는데 빵이 없었다. 그 순간, 루소는 이 삽화를 떠올리고선 브리오슈와 함께 와인을 마신 일을 ‘고백록’에 썼다. 루소가 ‘고백록’을 쓴 것은 오스트리아 공주였던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에게 시집오기 전의 일이다.

앙투아네트는 루소의 영향으로 전원생활을 동경했다. 일반 농가를 재현하고 직접 소젖을 짜기도 했다. 루소 때문에 귀부인들도 아이에게 모유를 직접 먹이는 풍습이 생기자 그녀는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베르사유의 공원에 손님들을 불러 자신의 젖가슴을 본떠 만든 도자기 잔에 우유를 따라주곤 했다. 그녀는 훗날 제네바에 있는 루소의 묘지를 찾아갈 정도였다. 루소가 쓴 책 한 권 때문에 자신이 혁명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자유의 절대화

프랑스혁명 지도부의 정전(正典)이 된 책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원제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이다.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기 10년도 전에 세상을 떠난 루소는 결코 혁명을 사주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그렇지만 자유, 평등, 주권, 일반의지 같은 ‘사회계약론’의 핵심 단어들은 혁명주의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프랑스혁명의 교과서가 된 것이다.



‘사회계약론’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 더한 사슬에 묶인 노예다”라는 도발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한 마디는 사실상 프랑스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였다. 루소는 이 책의 거의 모든 장에서 인간이 본성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루소는 무엇보다 자유의 절대화를 부르짖었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며 인간의 권리, 나아가서는 그 의무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보상도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인간의 권리’란 말은 이 책에 처음 등장한 뒤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타고난 자유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바로 사회계약의 목적이라고 루소는 강조한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자연 상태에서 누리는 ‘자연적 자유’, 사회계약 이후 시민 상태에서 누리는 ‘시민적 자유’, 인간이 진실로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하는 ‘도덕적 자유’로 구분한다.

루소는 ‘사회계약’을 국가 성립의 기초라고 여겼다. 국가는 정신적이고 집합적인 단체이며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계약으로 탄생한 국가는 구성원 개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이익에 반하는 이해를 갖지 않고, 가질 수도 없다고 했다. 루소는 사회계약의 특성이 힘과 자유의 전면적 양도에 있다고 판단했다. 국가는 그 신성한 계약에 의해 성립하며 이에 반하는 일은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우리는 저마다 신체와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삼아 일반의지의 최고 지도 아래 둔다. 그리고 우리는 구성원 하나하나를 전체와 나누어질 수 없는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사회계약의 본질이다. 사회계약이란 인민 모두가 자신의 권리와 자기 자신을 공동체 전체에 완전히 양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탄생하는 것이 개인 의지의 집합체인 ‘일반의지’다.

‘사회계약론’에서 열쇳말은 ‘일반의지’다. 일반의지는 ‘국민의 뜻’이다. 오늘날 선거는 한 사회의 일반의지가 드러나는 계기다. 일반의지는 독립의 힘이고 민중의 의지다. 일반의지가 글로 표현된 것이 법이다. 사람들이 최고의 충성을 바쳐야 할 것이 법이며, 그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논리에 루소 사상의 방점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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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순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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