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지와 주권론
일반의지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합의하는 거대한 공동체는 무해한 경우라면 집단적 행복의 유토피아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공동체란 ‘당이 언제나 옳다’는 강령에 따라 선과 악이 결정되는 전체주의 국가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루소는 자유국가 이념의 아버지이면서 민중 독재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야누스의 모습을 떠안았다.
루소의 일반의지는 주권과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주권은 입법하는 것이며, 법은 일반의지의 공정한 작용이다. 주권의 본질은 세 가지다. 첫째, 주권은 양도할 수 없다. 주권은 일반의지의 행사이고, 그 의지는 양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양도될 수 있다면 그건 주권이 아니라 힘이나 권력이다. 둘째, 주권은 분할할 수 없다. 일반의지의 행사가 주권이어서 분할할 수 없는 단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분할한다면 그것은 특수의지가 되며, 그것의 행사는 주권이 될 수 없다. 셋째, 일반적 약속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권은 사회계약에 의해 정치체가 부여받은 모든 성원에 대한 절대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루소의 주권론이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루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유명한 영국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영향을 받았다. 마르크스가 헤겔의 변증법을 배워 유물변증법을 창안했듯이, 루소는 홉스의 주권론을 인민주권론으로 승화시켰다. 홉스의 이론을 루소가 이어받아 혁명적인 민주주의 이론으로 재탄생시킨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것이야말로 루소의 천재적인 착안이라고 평가한다.
정치적 권위는 본질적으로 국민 안에 있다는 게 루소 정치사상의 핵심이다. 여기서 정치적 권위는 다름 아닌 주권을 가리킨다. 정부나 국가 행정은 주권에 종속된 기관이며, 행정 기능이 위임된 위원회 같은 것에 불과하다. 국가를 구성하는 법률은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하고, 정부는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정부의 통치가 일반의지에 반할 경우 국민은 언제든지 의회를 소집해 행정가를 소환할 수 있다.
루소는 국가와 사인(私人)의 관계를 규정하는 헌법(공법), 사인과 사인의 문제를 다루는 민법 등을 형법과 구별하면서 형법에 대해서는 ‘법을 지키게 하는 법’이라고 정의했다. 루소는 민주주의가 항상 공동선을 보장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외부 기구는 정치보다 우위에 있는 공평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유명한 말 뜻은 자연 상태의 자유와 평등, 건강한 도덕심을 회복하는 길을 찾자는 데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지금에야 상식처럼 들리지만, 당시 지배계급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이 출간되자 파리 고등법원에서 압수명령과 함께 루소에 대한 체포명령이 떨어진 게 이를 입증한다.
이 책은 1762년 1월 1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출판됐다. 공식적으로 프랑스 국내에 반입되지 못했고, 은밀하게 들여온 책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알려졌다. 프랑스혁명으로 감옥에 갇힌 루이 16세가 “나의 왕국을 무너뜨린 놈은 루소와 볼테르”라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당시 ‘일반의지’ ‘사회계약’이라는 말은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는 문구는 그 뒤 수많은 반체제 운동가가 슬로건으로 숱하게 사용해 유명해졌다.
근대정치 태동의 원동력
프랑스혁명은 이 책에 담긴 이념을 빌려왔다. ‘모든 주권은 국민 안에 있다’는 것과 ‘법은 전체 의사의 표현’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이 책은 프랑스혁명은 물론 유럽 곳곳에서 근대정치 태동의 원동력을 제공했다. 미국 독립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한편으로는 루소가 창안한 멋진 정치공동체의 모델이 전제한 사회와 국가의 관계가 현실 세계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드러나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루소가 민주주의 스승인가, 전체주의 창시자인가’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19세기에는 비판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벤자멩 콩스탕은 “사회계약론은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의 가장 끔찍한 보조자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루소는 결코 전체주의 정권을 찬성하지 않았지만, 일반의지라는 이념이 많은 문제의 소지를 담고 있어 애초 취지와 다른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논란을 뛰어넘어 그의 정치철학은 현실정치, 21세기의 지구촌에서도 꾸준히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근대사의 문을 열어준 과학의 천재가 뉴턴이라면 인문학의 천재는 루소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미국의 저명한 문예잡지 ‘애틀랜틱 먼슬리’는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18세기를 대변하고,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19세기를 대변한다면,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은 20세기를 대변할 것이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다양한 ‘계약’을 통해 평화를 유지해오고 있기도 하다. ‘사회계약론’은 지금도 ‘이 타락한 인간 사회에 어떠한 정치체제를 구성할 때 인간이 자연 상태의 선한 본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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