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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도둑맞은 열혈 여인의 그림창고

보스턴 이사벨라 미술관

렘브란트 도둑맞은 열혈 여인의 그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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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소한 분위기 탓에 관람하기가 편안하지 않다. 심지어 각 작품에는 안내 표지가 없다. 책받침 같은 것에 작품 배열 지도만 그려 놨다. 이걸 들고 다니며 실제 작품과 연결해야 누구의 무슨 작품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이사벨라 미술관의 매력이고 품격이다. 이사벨라 미술관은 해마다 남부럽지 않은 관람객 규모를 자랑한다.

2012년 이 미술관은 본관 옆에 새 건물을 지어 공간 문제를 해결했다. 건축비는 우리 돈으로 무려 1300억 원에 달한다. 두 건물은 통로로 연결되는데, 새 건물에서 옛 건물의 외관도 감상할 수 있다.

아들 잃고 세계여행 나선 재벌 부부

미술관을 설립한 이사벨라(Isabella Stewart Gardner·1840~1924)는 이름에서 보듯 스튜어트 가문에서 태어나 가드너 집안으로 시집간 여자다. 친정과 시댁 모두 거부로 친정아버지는 뉴욕, 시아버지는 보스턴 재벌이었다.

이사벨라의 아버지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뉴욕에서 아마포로 침대시트, 타월, 의류 등을 만드는 리넨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리넨은 당시 가장 중요한 생필품으로 수익성이 매우 높았다. 이사벨라의 아버지는 품질 좋기로 유명한 아일랜드산 리넨을 독점해 많은 돈을 벌었고 광산업에도 투자해 크게 성공했다.



이사벨라는 스무 살이 되던 1860년 보스턴 출신의 청년 잭 가드너와 결혼했다. 친구의 오빠였다. 시아버지는 선단을 거느린 무역상으로 나중에는 철도, 광산 등 투자에도 성공해 보스턴 재벌로 불렸다. 부잣집 며느리 이사벨라는 미술품 수집과 예술가 후원, 그리고 자선사업에 많은 돈을 쓸 수 있었다. 그녀는 미국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로 군림하며 많은 예술가와 교우했고, 활달한 성격 덕분에 사교계의 여왕으로도 불렸다.

그녀 인생이 늘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부부는 오랜 기다림 끝에 아들을 얻었으나 어려서 죽고 말았다. 부부는 슬픔을 달래기 위해 세계여행에 나섰고, 이 여행은 세계 미술품 수집으로 이어졌다. 그 후에도 부부는 유럽은 물론 중동과 아시아 등지로 자주 여행을 다녔다. 이사벨라는 특히 이탈리아 베니스를 좋아해 그곳에 오래 머물며 베니스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작품도 구입했다.

1891년 친정아버지가 죽고 많은 유산을 물려받은 이사벨라는 본격적으로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 도난당해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베르메르의 ‘콘서트’는 1892년 프랑스 파리의 경매에서 구입한 것으로 그녀의 수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896년 즈음에는 더 이상 집에 보관할 수 없을 정도로 수집품이 쌓여갔다. 집을 한번 확장했음에도 늘어나는 소장품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1898년 남편이 갑자기 사망했다. 이사벨라는 평소 남편과 함께 꿈꿔왔던 미술관 건립을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다짐한다. 마침내 펜웨이에 땅을 매입하고 유명 건축가인 월러드 토머스 시어스에게 “르네상스 시대의 베니스 궁전 같은 건물을 지어달라”며 설계를 의뢰했다. 그녀는 설계 전 과정에 자기 생각을 관철해나갔다. 시어스가 할 일은 이사벨라의 아이디어를 도면에 옮기는 정도였다. 건물 한가운데 중정을 만든 4층짜리 건물은 당시만 해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건물이 완공된 뒤 소장품 전시를 완료하기까지 1년 가까이 소요됐을 정도로 이사벨라는 미술관에 온 정성을 쏟았다.

드디어 1903년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이사벨라는 미술관 4층에 거주 공간을 마련하고 예술가 및 학자들을 집으로 초대해 자신의 소장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도록 했다. 이 공간은 지금 미술관 사무실로 사용한다.

그림 한 점 걸려고 미술관 뜯어고쳐

이사벨라는 많은 예술가와 교유하면서 지냈는데 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1856~1925)와 특히 인연이 깊다. 사전트는 미국인이지만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선 거의 활동하지 않은 인물임에도 미국의 유명 미술관엔 거의 예외 없이 그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사벨라 미술관의 소장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전트의 작품이다.

이사벨라 미술관에 들어서면 스페인 플라멩코 극장에 온 것 같은 환상에 젖는다. 입구 바로 왼쪽에 기다란 스페인식 회랑(Spanish Cloister)이 있고, 그 끝벽 가득히 역동적으로 플라멩코를 추는 스페인 집시 무희의 대형 초상화(237×352cm)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무희 뒤에서 남자들은 음악을 연주하고, 다른 무희들은 춤에 환호한다. 나는 1998년 스페인 세비아 여행 때 본 플라멩코 공연을 잊지 못하는데, 여기서 바로 그 장면을 다시 만났다.

이 그림은 사전트의 1882년 작 ‘엘 잘레오(El Jaleo)’다. 사전트가 음악에 조예가 깊고 특히 스페인 음악과 춤을 좋아했던 만큼, 그림은 연주 소리가 들리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그는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는데, 구성과 준비에만 1년 이상이 소요됐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그려나가는 데는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파리 살롱에 출품돼 호평을 받았고, 보스턴의 컬렉터 T 제퍼슨 쿨리지에게 팔렸다. 이사벨라는 1888년 보스턴에서 공개 전시된 이 그림을 보자마자 반했다. 1914년 이사벨라는 이 그림을 자신의 미술관에 전시하기로 맘먹고 건물 개조 공사까지 해서 스페인식 회랑을 만들었다. 이사벨라의 인척이던 쿨리지는 이런 정성에 감복해 이 그림을 아예 그녀에게 줘버렸다. 사전트는 이 소식을 듣고 ‘엘 잘레오’를 그리기 위해 작업했던 스케치와 드로잉을 모두 이사벨라에게 선물했다.

사전트는 이탈리아 플로렌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안과 의사였는데, 사전트의 누이가 어려서 죽자 부부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를 떠돌며 방랑자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사전트를 임신한 어머니는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콜레라를 피해서 플로렌스로 피신해 거기서 아들을 출산했다.

렘브란트 도둑맞은 열혈 여인의 그림창고

스페인 무희의 플라멩코 댄스를 그린 존 사전트의 ‘엘 잘레오(El Ja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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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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