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8년 설립된 나비스코는 1929년 뉴욕 주 비콘(Beacon)에 포장지와 포장상자를 생산하는 큰 공장을 지었다. 세월이 흘러 이 포장지 공장은 문을 닫았고, 뉴욕의 한 예술재단에 매각됐다. 그리고 2003년, 디아비콘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오레오 포장지 만들던 곳
비콘은 뉴욕 시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진 오래된 소도시다. 상주인구가 1만5000명 정도,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2만5000명 규모라니 인구가 희소한 미국 지방마을치고는 제법 큰 도시다. 미국 독립(1776년) 전인 1709년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미국에선 매우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비콘은 허드슨 강변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마을에서는 아름다운 강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맨해튼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가량 허드슨 강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면 비콘역(Beacon Station)에 도착한다. 비콘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마을 언덕배기에 공장 같기도, 화물창고 같기도 한 커다란 건물이 나타난다. 디아비콘 미술관이다. 문을 연 지 10년이 좀 지난 새 미술관이지만 외양은 낡은 공장건물 그대로다. 내부도 공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창고 분위기를 그대로 풍긴다.
미술관은 허드슨 강변의 울창한 숲에 에워싸여 있다. 필자는 이 미술관을 10월 초에 방문했는데, 단풍이 들 듯 말 듯한 초가을 숲이 허드슨 강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고 있었다. 멀리서는 길게 화물칸을 줄지어 매단 기차가 강변을 따라 강물 흐르듯 흘러가고 있었다.
디아비콘은 디아예술재단(Dia Art Foundation·이하 디아재단)이 세운 미술관으로 1960년대 이후 작품들을 소장한 초현대미술관이다. 말하자면 최첨단의 현대미술품을 수집, 전시, 후원하는 곳인데, 공장이었던 만큼 전시 공간이 매우 넓어 실험적인 대형 작품도 여유롭게 전시할 수 있다. 7000여 평(2만3100여㎡)에 달하는 실내 전시 공간은 벽에 가로막히지 않고 탁 트여 있다.
각 전시실은 전시 작품에 맞게 특별 제작됐다. 워낙 큰 작품을 전시하기 때문에 전시실을 맞춤형으로 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시 작품이 바뀌면 개조공사를 다시 해야 한다. 따라서 디아비콘은 엄선한 작가의 작품을 장기 전시하고 있다.
반스앤노블 회장의 거액 기부

자선사업가로도 명성이 자자한 반스앤노블 회장 레너드 리지오.
리지오는 세계 최대 서점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의 회장이다. 이 서점은 1931년에 처음 설립됐지만 1971년 리지오가 인수하면서 급성장했다. 반스앤노블은 전 세계 600여 개 점포를 운영하는 다국적 서점이다. 물론 한국에도 있다. 백만장자 리지오는 자선사업가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디아비콘 미술관에 대한 기부는 그의 수많은 기부 중 하나일 뿐이다.
디아재단은 재벌가 상속녀 필리파 드 메닐(Philippa de Menil)과 그녀의 남편인 미술품 딜러이자 수집가 하이너 프리드리히(Heiner Friedrich)가 만들었다. 이 재단은 디아비콘 이전에 맨해튼 첼시 지역에 디아예술센터(Dia Center for the Arts)라는 미술관을 세워 1987년부터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이 미술관은 훗날 디아 첼시(Dia: Chelsea)로 불렸는데, 선정 작가의 작품들을 적어도 1년 이상 전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디아첼시는 2004년 문을 닫을 즈음에는 연간 6만여 명이 관람하러 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디아재단은 2007년 디아첼시 건물을 3900만 달러에 매각하고 디아비콘 운영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디아재단이 운영하던 맨해튼 미술관이 시골 비콘으로 옮겨간 셈이다.
재단 설립자 필리파 드 메닐은 유전개발사업으로 거부가 된 콘래드 슐럼버거(Conrad Schlumberger·1878~1936) 의 외손녀다. 그가 동생 마르셀과 함께 1926년 세운 슐럼버거주식회사(Schlum berger Limited)는 세계 최대 유전개발회사로 성장, 140여 개국에서 11만 명을 고용한 대규모 다국적기업이 됐다. 필리파의 어머니 도미니크 드 메닐((Domini que de Menil·1908~1997)은 이런 재벌의 딸이었던 만큼 예술계의 알려진 큰손이었다. 예술 후원자이자 수집가로 명성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