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말라가](https://dimg.donga.com/egc/CDB/SHINDONGA/Article/20/08/01/07/200801070500007_1.jpg)
프랑스 쪽에서 바라본 지중해 옥색 바다는 마치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내다보는 말라가는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멀리 보이는 하늘에는 벌써 구름 사이로 햇살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친절한 남자가 다음 정류장을 알려주고 옆에 서 있던 다른 아가씨가 또 알려주어 알카사바 앞 정류장에 쉽게 내렸다. 비는 이제 완전히 그쳤다. 회색 구름들은 서서히 다른 길을 재촉한다. 지중해 안달루시아의 정열적인 태양이 ‘Costa del Sol’, 태양의 해변에 당도한 방문객을 환영한다. 당신에게도 안달루시아의 태양 한 줄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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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랄파로 성에서는 말라가의 전경과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좌) 한겨울에도 야자수가 울창한 말라가의 지중해성 기후는 계절을 잊게 한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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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식물들이 늘어선 말라가 거리를 여유롭게 거니는 시민들.(좌) 무엇으로도 깨기 어려울 듯한 알카사바의 성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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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고향답게 거리 곳곳에는 그의 그림이 걸려 있다.(좌) 햇빛이 풍부한 안달루시아에는 이국적인 과일과 채소가 많다.(우)
적색의 견고한 성채, 알카사바가 저 멀리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장식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어 오로지 외적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만 튼튼하게 지어졌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위용을 과시하며 언덕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을 보니 ‘난공불락’이라는 말의 이미지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아 든든하게 여겨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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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의 층층이 쌓인 벽돌은 견고함의 상징마냥 듬직하다.
말라가는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말라카라는 이름으로 건설했고 그 후 카르타고인의 지배를 받았다. 카르타고와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벌인 피나는 전쟁이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끝나자 말라가는 로마의 수중에 들어갔다. 711년 스페인을 정복한 무어인들에 의해 이 지역의 중요한 항구도시로 개발됐고, 다시 1487년 무어인들을 완전히 몰아낸 기독교인들이 이 도시의 지배자가 됐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1931년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장군에 항거하는 공화주의자들이 1937년까지 투쟁을 벌이는 등 저항의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일 뿐인가.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은 그저 유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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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로 둘러싸인 탓인지 지중해의 물결은 늘 잔잔하다.(좌) 히브랄파로 성의 특이한 무어식 건축양식은 이곳이 지중해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우)
드디어 히브랄파로 성에 도착했다. 이 성은 원래 페니키아인에 의해 건설된 후 14세기에 인근 그라나다의 군주에 의해 재건됐다. 오는 길이 힘들어서일까, 사람을 찾을 수 없이 한산하다.
하지만 꼭대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전경이 날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는 스페인 국기와 안달루시아 지방의 상징 깃발이 펄럭인다. 깃발 옆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순간 내가 이 성을 지키던 병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투쟁과 저항의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고향을 떠난 여러 인종과 국가의 병사들이 저 지중해를 지키기 위해 바로 이 자리에서 바다를 뚫어지게 보았을 것이다. 때로는 고향을 생각하고, 때로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바람에 세차게 펄럭이는 깃발이 발길을 재촉한다.
성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이 성의 간략한 역사와 유물을 소개하는 박물관에 들렀다. 히브랄파로 주변을 축소해서 만든 모형과 옛날 범선 모형, 각종 화기, 실물 크기의 병사 인형 등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이 많다. 시기별로 정리가 잘 돼 있어 이곳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내게는 19세기 영국 병사로 보이는 인형의 구레나룻이 인상에 남았다.
히브랄파로에서 알카사바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에 비해 편하다. 알카사바는 웬일인지 표지판에 잘 표시되어 있지 않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중간쯤 오른쪽에 있는 큰 성 쪽으로 난 작은 오솔길로 접어들어 걸어가면 나타나는 알카사바는 전형적인 무어 양식의 건축물로 소박한 인상에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무어인들은 이곳에 성을 쌓고 그들만의 궁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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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의 정원에 붙어 있는 작은 방. 이슬람풍의 소박한 멋을 풍긴다.(좌) 히브랄파로 성의 박물관에 있는 병사 인형.(우)
하지만 알카사바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성벽이었다. 밑에서 올려다봐도 위에서 내려다봐도 참 멋있다. 그 견고한 구조와 오랜 시간의 흐름이 묻어나는 색깔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안정감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들른 성 안의 고대미술관에는 로마 시대의 조각과 무어 시대의 도자기 같은 유물이 조용히 시선을 끌었다. 나는 이곳에서 유물들 사이를 거닐며 천년이 넘는 세월을 산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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