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출신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의 시나리오
사회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는 청년의 고독 포착
천재의 성공담 아닌, 자신을 미워하던 인간의 회복기
패배 두려워 포기하고, 버림받을까 관계 끊는 현대인
“네 잘못 아니야”란 위로에 자기 비난의 굴레 벗어나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 윌 헌팅(맷 데이먼)이 극 중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수학과 교수인 ‘제럴드 램보(스텔란 스카스가드)’가 학생들에게 낸 수학 난제를 풀어보는 장면. IMDB
영화 ‘굿 윌 헌팅’은 바로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이 영화가 오래 사랑받는 것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청년의 성공담 때문이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상처받은 한 인간이 끝내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되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비로소 삶의 형태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젊은 배우들이 써낸 불안의 얼굴
1998년에 개봉한 굿 윌 헌팅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하고, 당시 젊은 배우였던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직접 각본을 쓴 작품이다. 지금은 세계적 스타가 됐지만, 당시 두 사람은 아직 할리우드에서 자리 잡지 못한 청년 배우였다. 오디션을 전전하고, 작은 배역을 맡아도 다음 기회가 올지 장담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영화 속 청춘의 불안과 냉소, 인정받고 싶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감정은 단순한 설정처럼 보이지 않는다. 두 배우가 실제로 지나오던 시간의 얼굴처럼 느껴진다.
영화 ‘굿 윌 헌팅’의 포스터. 미라맥스 홈페이지 캡처
이 작품은 대형 제작사의 기대를 받은 영화가 아니었다. 두 젊은 배우는 자신들이 쓴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사를 찾아다니며 오랫동안 설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시나리오는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고, 마침내 구스 반 산트 감독을 만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후 굿 윌 헌팅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맷 데이먼과 벤 에플렉은 각각 스물일곱, 스물다섯 나이에 각본상을 받았다. 젊은 무명 배우들이 자기 삶의 불안과 현실을 녹여 써낸 이야기가 세계적 공감을 얻은 것이다. 굿 윌 헌팅은 천재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면서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던 두 젊은 배우가 세상에 내민 자기소개서이기도 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는 젊은이들의 고독을 섬세하게 포착해 온 감독이다. 그는 거대한 사건보다 인물 안쪽에 고여 있는 침묵과 감정을 오래 바라본다. 굿 윌 헌팅 역시 주인공 윌이 왜 사람들을 밀어내는지, 왜 자기 삶을 스스로 망치듯 살아가는지, 그 마음의 뒷골목을 천천히 따라간다.
그 중심에는 배우들의 깊은 연기가 있다. 맷 데이먼은 윌이라는 청년 안에 뒤엉킨 자존심과 상처, 냉소와 외로움을 섬세하게 꺼내 보인다. 윌은 세상을 다 아는 사람처럼 말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쉽게 다칠까 봐 날을 세우는 사람이다. 상담사 ‘숀 맥과이어’를 연기한 로빈 윌리엄스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심장이다. 그는 윌을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지 않는다. 상처 입은 사람 곁에 앉아 그저 끝까지 기다려준다.
‘스카일라’ 역의 미니 드라이버 역시 중요한 존재다. 그녀는 윌의 비상한 재능보다, 그 재능 뒤에 숨어 있는 외로움을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은 달콤한 로맨스라기보다, 가까워질수록 더 두려워지는 관계의 현실에 가깝다. 윌에게 사랑은 설렘인 동시에 위협이다. 누군가 자신을 깊이 알아볼수록, 그는 오히려 더 멀리 달아나고 싶어진다.
명문대와 노동자 동네, 두 세계를 떠도는 천재 청소부 청년

윌 헌팅(맷 데이먼)이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와 상담하고 있는 장면. IMDB
윌은 어린 시절 학대와 상처 속에서 자라났다. 수많은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법보다 살아남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래서 그는 세상 누구보다 똑똑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 MIT 수학과 교수인 ‘제럴드 램보(스텔란 스카스가드)’는 우연히 윌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 하지만, 윌은 번번이 문제를 일으킨다. 폭력을 휘두르고, 경찰서에 끌려가며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윌을 단순한 문제아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두려움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다. 상처받은 사람은 종종 사랑보다 먼저 도망치는 법을 배운다. 실패하기 전에 먼저 포기하고, 버림받기 전에 먼저 관계를 끊는다. 윌 역시 그렇다. 그는 사람들에게 냉소적이고 공격적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청년이다.
윌의 곁에는 친구인 ‘처키 설리번(벤 애플렉)’과 ‘모건 오맬리(케이시 애플렉)’ ‘빌리 맥브라이드(콜 하우저)’가 있다. 얼핏 보면 이들은 술집과 공사장, 거리를 오가며 실없는 농담이나 주고받는 청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윌을 끝까지 자기 삶 안에 붙들어 두는 닻이다. 특히 처키는 언젠가 윌이 자신들 곁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친구의 재능을 질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은 끝내 닿지 못할 곳까지 윌이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 투박하고도 진심 어린 마음이 이 영화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던 어느 날, 윌은 하버드 대학생 스카일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스카일라는 윌에게 처음으로 성큼 다가오는 사람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천재성에 놀랄 때, 그녀는 그에게 숨어 있는 외로움을 먼저 본다. 그러나 윌은 사랑 앞에서 망설인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는 더 불안해지고, 결국 스스로 관계를 망쳐버린다.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받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윌은 상대가 떠나기 전에 먼저 상처를 만든다. 버림받기 전에 먼저 도망치는 것이다.
윌이 사랑 앞에서 도망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래서 굿 윌 헌팅은 오래된 영화이면서도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하루를 버틴다. 책상 앞에서는 성과를 증명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유지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신이 왜 지쳤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사람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일지도 모른다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지식을 바라보는 태도다. 윌은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낸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재능을 무작정 숭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숀은 윌에게 책으로만 세상을 아는 척하지 말라고 말한다. 미술관의 그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전쟁의 공포, 인간의 외로움은 직접 살아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라고 강조한다. 많이 안다고 해서 반드시 삶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시선으로 남는다.
이때부터 영화의 중심은 천재성에서 삶의 감각으로 옮겨간다. 윌은 수학 공식보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을 더 어려워하고, 정답을 찾는 일보다 자기 감정을 받아들이는 일 앞에서 더 자주 흔들린다. 영화는 바로 그 흔들림 속에서 인간의 성장을 보여준다. 관객은 윌의 비범한 재능보다, 끝내 누군가를 믿어보려는 그의 느린 용기에 더 공감한다.
영화가 결말에 다다르며 숀의 상처도 드러난다. 그는 사랑하던 아내를 잃었고, 그 상실의 시간을 마음속에 품은 채 살아간다. 상실의 아픔을 품은 그는 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윌이 농담과 독설로 자신을 방어할 때도, 숀은 그 뒤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바라본다.
오랜 자기 비난에 균열 일으킨 한마디, “네 잘못이 아니야”
윌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숀은 그에게 나지막이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처음에 윌은 대수롭지 않은 척 웃어넘긴다. 그러나 같은 말이 반복될수록 그의 표정은 조금씩 무너진다. 결국 윌은 아이처럼 숀을 끌어안고 운다. 이 장면이 강렬한 이유는 위로의 말 자체보다, 그 말이 전달되는 방식에 있다. 숀은 윌을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더는 혼자 자신을 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끝까지 전해 준다. 이 순간은 위로의 장면이면서, 윌의 오래된 자기 비난이 처음으로 금이 가는 장면이다.이 영화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굿 윌 헌팅은 극적인 반전을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상담실 안의 긴 침묵, 숀의 조용한 시선,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윌의 표정 같은 찰나의 순간을 오래 조망한다.
이 때문에 윌의 변화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제 그는 도망치는 대신 선택하려 한다. 이전의 윌이 가까워지려는 사람들을 밀어냈다면, 마지막의 윌은 서툴지만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쪽을 택한다. 결국 윌을 움직인 것은 정답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숀은 기다림으로, 처키는 투박한 우정으로, 스카일라는 사랑으로 윌 곁에 선다. 그렇게 윌은 조금씩 자기 삶 쪽으로 몸을 돌린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윌처럼 살아간다. 웃고 떠들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상처 하나쯤은 품은 채. 남는 것은 재능의 빛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닿고 싶었던 한 사람의 조용한 떨림이다.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