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압축적 성장사회에서 질 높은 성숙사회로’

  •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 jyyee@snu.ac.kr

    입력2008-08-04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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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국 60년은 고통과 영광, 절망과 희망, 좌절과 성취가 뒤섞이면서 압축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그 결과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국민은 여전히 불행하다고 말한다. 속도에 집착하다 보니 ‘안전’보다 ‘모험’, ‘내실’보다 ‘외형’, ‘과정’보다 ‘결과’, ‘투자’보다 ‘비용절약’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사회 품격 유지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성숙사회란 성장 못지않게 배분과 배려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다.

    정부 수립 60년, 이는 한반도에 전통적인 왕조가 아닌 자주적인 근대국가가 수립, 유지된 기간이다. 세계사의 60년은 짧을 수 있지만 한국사의 최근 60년은 남들이 수백년 걸려 만든 변화를 압축해서 겹겹의 지층으로 쌓아올린 왕성한 충적기(沖積期)에 해당한다. 이 기간에 한국사회는 고통과 영광, 절망과 희망, 좌절과 성취의 국면을 모두 담은 놀라운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변화의 궤적을 복기하는 것은 향후 발전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가장 밑바닥에는 식민지의 경험이 해체하다 만 전통시대의 흔적들이, 그 위로는 정부 수립 후 국가 형성이 채 마무리되기 전에 전쟁이 할퀴고 간 깊은 상흔의 골짜기가 자리 잡았다. 제1공화국은 신생국가로서 제대로 뿌리내리는 데도 벅찬 환경 속에 놓였던 위태로운 시기였다. 험난한 국제정세와 6·25전쟁 속에서 신생국가의 독립성을 지켜낸 것만으로도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위대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국가경영의 토대를 신속하게 갖추는 데 실패했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독재화한 것은 한계였다.

    본격적인 산업화 이전에 과잉 팽창한 고등교육은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했지만 민주주의에 대해 예기사회화(무엇을 사회화해야 하는 것인지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된 세대를 대거 배출했다. 그 결과 4·19혁명과 이상적인 내각책임제 개헌을 가져왔으며,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토대가 된, 잘 훈련된 인적자원을 배출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감당할 부르주아를 형성하지 못한 나라에서 이루어진 빠른 민주화는 실질적인 주도세력을 만나지 못해 결국 군부 쿠데타로 귀결됐다.

    그럼에도 군복을 입고 통치한 남미나 동남아의 군부정권과 달리, 박정희 정권은 형식적으로는 국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고 재선에 성공했다. 또 경제성장과 국민소득의 증대 등과 같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 후 유신체제의 성립을 통해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험한 바 있고, 1980년 민주화의 열망이 전두환 정권의 철권통치로 좌절되면서 고도성장과 정치적 억압이 결합된 부조화의 시기를 경험하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점진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중도적인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의 연이은 등장을 보게 됐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평화적인 전환과정이었다.

    가장 큰 성과 ‘산업화, 민주화’



    지난 60년간 가장 주목할 성과는 산업화와 민주화다. 전쟁의 폐허 속에 신음하던,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짜리 신생 대한민국이 2만달러 선진국의 문턱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0년, 앞선 나라들은 건국 이후 수백년씩 걸린 먼 길이었다. 달랑 1억달러이던 수출액은 같은 기간에 무려 3000배 이상 폭증했다. 이런 초고속 질주의 결과 한국은 경제규모 11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고,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로는 177개국 중 26위의 개화문명국이 되었으며, 프리덤하우스에 의하면 5등급의 독재국가에서 1등급의 자유국가로 탈바꿈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데 국제사회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수혜자여야 할 국민의 70%는 한국이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불행해졌고, 걱정과 불안은 늘어났으며, 제도와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기대가 높아지면 실망도 커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 부실하게 흐른 탓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속도에 집착하다 보니 ‘안전’보다는 ‘모험’을, ‘내실’보다는 ‘외형’을, ‘과정’보다는 ‘결과’를,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는 당장의 ‘비용절약’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대형 재난으로, 기업의 줄도산을 가져온 외환위기로 나타나기도 했다. 비교적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기업재무구조가 건전해지고 외환보유고도 급속히 늘어났지만 후유증은 깊이 남았다. 양극화가 심해졌고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기는 사람은 대폭 줄었으며 일자리 걱정은 오히려 늘어났다. 복지재정이나 국민연금 가입범위를 확대했음에도 고령사회의 문턱에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도리어 커졌다. 연이어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 깊어졌고, 투표율도 계속 떨어졌다.

    수백만명이 광우병의 위험을 이유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정치권은 무능하기만 하다. 정책대결과 무관하게 스캔들을 둘러싼 세 싸움으로 선거를 치러왔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에도 불구하고 조기유학과 교육이민, 그리고 사교육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외국인 체류자 100만명 시대를 맞았고 농촌지역에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대거 안방을 차지했지만, 우리 제도와 마음의 빗장은 여전히 닫혀 있다. 입법, 행정,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위험 수준이고, 자살자의 숫자는 세계 최고에 달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문제가 쏟아지고 있다. 모두 ‘경제성장’이나 ‘민주화’ 처방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정부 수립 후 60년간 이뤄낸 성공은 한편으로 커다란 자부심의 원천이지만, 성공이 가져온 위기(peril of success)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정부의 각종 공식 통계에는 이러한 무형의 자산손실을 가늠할 대차대조표조차 없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정보화와 세계화는 복합적 사고와 창의성을 요구하는 또 다른 도전이 되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문제인식이 절실한 이유다.

    1960년대 초까지 원조 의존

    역대 정부에 대한 평가는 여러 측면에서 이뤄질 수 있다.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찰스 틸리(Tilly)에 의하면 국가는 특정 영토 내에서 다양한 정치집단과 지배권을 다투며 서서히 독점적 지배권을 확보해나가는 과정을 거쳐 성립됐다고 한다.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나 대한민국은 전통적인 왕조에서 일본 식민지를 거친 이래, 일본의 패전을 기회로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남북 분단으로 북한정권과 정통성 경쟁을 벌이면서 출발했다.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영토 밖 경쟁자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기능에 심각한 위협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또한 국가의 실체적 기능으로서 경제발전과 복지 제공 등의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1960년대 초반까지 외국의 원조에 의존해 경제를 지탱해왔다.

    이승만 정권과 장면 정권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성장이 모두 결여된 시기였다(그림 참조). 박정희 정권 시기는 강한 정치적 억압과 높은 경제성장이 결합한 대표적인 권위적 발전국가 시기라는 인상을 준다. 정도는 약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강화된 권위주의와 약화된 경제성장이 결합한 때였다. 경제적인 성장이 정치적 자유의 희생 위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심각한 불균형 성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 이후의 시기에 대해 국민은 민주화는 신장됐으나,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더 이상 이루지 못했거나 오히려 경제적으로 퇴보한 시기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한 이미지가 생겨난 이유는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침체를 경험한 탓도 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도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민주화가 정치적 자유를 급속히 확대시켰지만 실질적인 복지의 성장을 가져올 만큼 내실 있는 정책적 심화와 실천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에 다양한 이해집단들 간의 명시적이고 노골적인 이익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 사회 전반의 문제해결 능력이 급격히 소진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국민은 한국이 절차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내용이 채워지지 않았고, 경제성장의 과실이 복지로 이어지는 경제적 내실화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10여 년간 국민의 역대 정부에 대한 인식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다만 김영삼 정부에 대한 평가는 재임 시기와 외환위기를 거치고 퇴임한 후 평가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그리고 10년 후 미래에 대한 평가는 조심스럽고 현실적인 전망으로 바뀌었다.

    선진국의 길목에서

    급속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해온 지난 60년, 특히 최근 20여 년의 변화과정에서 한국사회의 성취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선진국과의 차이로 변환해 측정할 수 있다면, 선진국에 견주어 뒤지는 부분을 일목요연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선진국은 OECD 국가 중 경제적인 순위가 한국보다 앞서는 7~10개국을 의미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진 부분은 양적인 지표들이며, 하드웨어에 관련된 부문들이다. 한국은 지금 조선산업이나 반도체, 휴대전화 등에서 세계 일류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정보화 인프라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비교적 높은 수준의 고용률과 상대적으로 낮은 실업률을 자랑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학진학률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선진국의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중 두드러지는 요소들은 투명성이나 신뢰와 같은 사회적 규범이나 규칙의 준수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또 다른 두드러진 요소로는 자살률, 산업재해 등의 위험과 관련된 부분, 그리고 복지재정이나 대학교육의 질, 고용의 질 등 사회적인 수준의 질과 관련된 차원들이다.

    한 개인을 평가할 때 재산이나 권력 외에 인품이 중요하듯이, 한 국가에도 경제성장이나 민주화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품격이 있다. 김진현 전 과기부 장관은 일찍이 진정한 힘은 강(强)과 경(硬)과 규모(規模)와 무력(武力) 같은 유형자산 보다 질(質)과 격(格)과 매력(魅力) 같은 무형자산에 있다는 점에서 GNP 대국 대신 ‘선’진국(‘善’進國)을 발전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하버드대학 조지프 나이(Joseph Nye) 교수의 연성의 힘(soft power)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성장 중시 사회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중국에서는 최근 조화(和諧)사회를 모토로 하여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안한 샤오캉(小康)의 이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했고, 캐나다에서는 세계 최초로 국민웰빙지수(CWI)를 개발하여 생활의 품격을 높이려 하고 있다. OECD에서는 경제 위주의 지표(GNP) 대신 진정한 발전지표로 국민행복지수(GNH)를 만들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기 위해 ‘사회자본(social capital)’ 개념을 사용해왔다.

    우리가 아는 선진국들의 공통점은 구성원들 간에 신뢰가 깊고, 법치주의가 잘 작동하는 투명한 사회라는 점이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2006년 보고서에서 선진국의 국부(國富) 중 3%는 천연자원, 17%는 기계나 설비, 그리고 사회간접자본과 같은 생산자본이며, 29%는 인적자본인 반면, 가장 큰 덩어리인 46%는 사회자본의 효과라고 분석한 바 있다.

    ‘투명성 낮은 불신사회’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의 학자들은 ‘사회의 질(social quality)’ 개념을 제안한다. 살기 좋은 사회는 물질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안심할 수 있게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고(안전성), 공통의 정체성과 가치규범 속에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응집성), 다양한 제도나 관계에서 배제되는 사람이 없고(포용성), 개인의 역량과 능력이 잘 발휘되는(역능성)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1997년 암스테르담 선언에는 1000명 가까운 학자와 정책 입안가들이 서명한 바 있고, 유럽의회의 공식 의제로도 채택된 바 있다.

    최근의 한국사회의 변화과정을 매우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사회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구성요소별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들의 물질적, 환경적 자원에 대한 접근 가능성의 정도가 사회경제적 안전(socio-economic security)을 구성한다. 이 개념은 폭넓게 정의하자면 사회의 질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 토대가 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0년간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의 안전, 그리고 절대빈곤으로부터의 안전은 지속적으로 개선되었음에 틀림없다. 건강보험의 확대와 국민연금 가입률의 증대, 그리고 산업재해 사망률의 감소 등은 사회의 안전성이 개선되는 징표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비정규직화를 둘러싼 고용불안의 증대,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확대, 강력범죄의 증대현상 같은 위험사회의 징후들이 최근 광우병 쇠고기를 둘러싼 파동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특히 교통사고율은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고,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각국의 환경지속가능성지수(Environ-mental Sustainability Index·ESI)에서 한국은 2002년 142개국 중 135위에서 2005년에는 146개국 중 122위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향후 큰 위험의 원천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정부 수립 이후 첫 국무회의가 1948년 8월5일 열렸다.

    둘째,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공통의 정체성과 가치규범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사회적 결속과 응집성을 측정하는 데 중요하다. 그런데 지난 30여 년간 각종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추적해보면, 입법, 사법, 행정부를 포함하여 종교, 대학, 언론, 시민단체, 노조 등 거의 대부분의 제도와 조직에 대한 신뢰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특히 국회와 정당에 대한 불신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가히 총체적 불신사회라고 할 만한 단계에 이르렀다. 더구나 부패에 대한 투명성을 재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투명성은 측정대상국들 중 40위권으로 지난 20년간 거의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사회적 포용성의 영역에서는 두 가지 뚜렷한 경향이 나타난다. 남녀 간 평등과 관련하여 성별격차는 다양한 지표에서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고, 여성의 권능점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지만, 다행히 여성에 대한 차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포용성은 감소해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실업자와 비자발적 장기적 실업자, 그리고 소득불평등도는 높아져 일할 기회에서 배제되는 집단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넷째, 개인의 역량이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 구조가 짜여 있는지를 보는 역능화(empowerment)의 차원에선 두 가지 다른 흐름이 감지된다. 먼저, 신문구독률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정보화에 따른 다양한 매체의 활용도와 평생교육 기회의 확대, 그리고 변호사 수의 증대, 고충민원의 증가 등으로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일상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투표율의 감소, 노조 조직률의 감소, 주관적 계층의식의 하락, 직업선택요인의 단순화 등은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이상주의의 감소,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낙관의 감소 등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 결과는 자살률의 급등으로 이어져 거대담론과 구조적 변화에 대한 열망은 급속히 줄어들고 개인주의화, 무기력화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그동안 전반적으로 취약한 사회의 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이것이 사회의 선진화와 경제적 성장의 발목을 잡는 단계에 도달했다. 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을까? 이것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사회의 성장을 이끌어온 패러다임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 주도에 의한 일사불란한 발전모델은 더 이상 유효한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과거 사회발전의 추진력이었던 권위주의적 동원과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을 둔 인격주의적 윤리와 가족주의적 경영, 그리고 암묵적인 계약은 새로운 변화과정에서 더 이상 유효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고도성장기에는 ‘경제의 가치’, 민주화 시기에는 ‘정치의 가치’가 주된 논의의 핵심이 되었다면, 앞으로는 ‘사회적인 것’의 가치가 주목 받을 것임을 암시하는 결과다.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성숙사회로 가려면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돼야 한다.

    성숙사회를 위한 제언

    건국 60년을 넘어 새로운 60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목표는 선진국 진입이다. 그런데 선진국 진입은 과거 요소투입형, 고지탈환형 돌격작전과 같은 양적 성장전략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경제적인 성장과 더불어 문화적으로 세련된 시민의식, 그리고 신뢰와 합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시스템,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 등이 함께 구축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진국의 시스템적 특징은 다양한 요소들 간의 균형이 유지되면서도 성장의 활력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동적 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미래세대와 현세대,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 등의 대립 항들이 역동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균형이 이루어지는 ‘성숙한 사회’는 ‘사회의 질(social quality)’이 높은 사회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투명성, 안전성, 포용성, 그리고 역능성을 가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방법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높은 사회의 질을 얻기 위해 성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는 부패인식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투명한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선진국 수준의 법과 원칙의 준수 없이는, 특히 윗물부터 맑아지지 않고는, 더 이상의 경제성장도 국가경쟁력 제고도 불가능한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공적인 신뢰의 토대는 궁극적으로는 사회적인 규칙을 생산하고 집행하는 입법, 사법, 행정부의 정책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에서 찾아진다. 한국사회에서 공적인 신뢰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은 바로 규칙의 생산과 적용을 담당하는 정치인과 관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다른 어느 사회집단보다도 크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혁신을 심화시키기 위해서는 법치주의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법치주의가 확보되지 않으면 사회적 행위자들은 미래에 대한 높은 불확실성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피해를 최소화하고 동시에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강한 사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화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신뢰는 담론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장기적으로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할 때 형성된다. 그것은 기계적 일관성이 아니라, 실질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서 가능하다. 예를 들면 시장이나 사립학교에 대한 ‘개입’은 줄이고 ‘감독’ 기능은 보다 철저히 하는 것이다.

    또 실업과 질병, 범죄와 재난, 노후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성장의 군불이 윗목까지 데울 수 있는 선순환의 구들장을 섬세하게 설계해야 하고,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집단이 없도록 제도를 챙기고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조차 상실한 계층의 규모가 커지는 소위 ‘희망격차’의 시대에 비전과 꿈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비전 제시하는 리더십 필요

    물질적 수준의 연대와 통합은 ‘배제된 집단’이 없는 ‘사회의 질’ 제고를 의미한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그리고 환경과 경제의 조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물질적으로 배제된 집단이나 계층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명한 정의 및 보호 의지를 천명해 무의탁 노인, 저소득층 아동, 노숙자, 차상위층에 대한 보호대책을 만들고,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여 의료의 사회적 보장성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회적 수준의 연대와 통합은 사회적 갈등과 가족 및 사회의 해체를 막는 일을 의미한다. 사회적 수준에서의 상생과 통합을 위해서는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통해 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다양한 계층 간 상생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양성 평등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선 남녀평등정책을 일관성이 있게 추구하고,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에 대한 보호대책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건국 60년 한국사회 어떻게 볼 것인가

    성숙사회로 가려면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가 강화돼야 한다.

    이재열

    1961년 충남 부여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 미국 워싱턴대 객원교수

    現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 및 논문: ‘삶의 질과 지속가능한 발전’(공저), ‘한국사회의 위험과 안전’(공저), ‘경제의 사회학’, ‘민주주의, 사회적 자본, 사회적 신뢰’ 등


    또한 국제기준의 노사관계 제도와 관행을 마련하여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노사 간 갈등과 폭력 발생의 가능성을 감소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적 조화와 협력의 잠재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이해관계 당사자, 전문가 집단, 시민단체 등의 참여를 통한 갈등관리가 필요하다.

    효율성 못지않은 정당성에 대한 관심, 결과 못지않은 과정에 대한 관심, 성장 못지않은 배분과 배려를 소중히 여기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지 않고는 발전의 병목지점을 넘을 수 없고, 설사 소득이 향상되더라도 사회의 품격을 유지할 수 없다. 정부 수립 60주년을 앞두고 우리는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의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분기점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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