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9월 25일 오후 경기 과천경마공원에서 열린 동아일보배 대상경주.
말 산업의 98%를 경마가 차지하는 한국에서 말 산업 육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산업을 담당할 인력풀도 마땅치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 인력 양성 방안도 큰 그림이 나와 있다. 2014년까지 말 산업 관련 고교·대학과 한국마사회 등의 말 전문 인력 양성 규모를 확대하고, 승마 시설 및 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 게 계획의 골자다. 기존의 기수, 조교사, 승마지도자, 말 수의사, 인공수정사 등의 직업은 분야와 수준을 세분화하고 종사자들의 실력을 높여나가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편자를 박는 장제사, 말 조련사, 재활승마지도사 등의 자격증을 신설할 계획이다.
승용마 유통시장을 투명화해 가격 안정을 꾀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경주마는 경매로 거래하는 비율이 30% 수준이어서 경매시장 가격이 개인 간 거래 시에도 기준 가격이 된다. 승용마도 지난해부터 시범 경매가 열리기 시작했다.
말 산업 육성법엔 경마 및 승마 관련 대책뿐 아니라 말고기와 말 부산물 소비 활성화 방안도 담겨 있다. 현재 말 도축을 가장 많이 하는 제주축협 도축장에서 등급판정 제도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최고등급 출하 농가에는 생산 장려금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말고기 생산이력제도를 도입해 소비자가 말고기를 믿고 먹을 수 있게끔 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나아가 육회, 샤브샤브, 마유주(馬乳酒), 소시지, 햄, 육포 등 가공식품을 비롯해 말의 기름과 뼈를 이용한 화장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경북 영천에 경마장 건설말 산업 육성법에는 경마와 관련한 내용도 일부 포함돼 있다. 한국마사회는 그동안 경마 수익으로 벌어들인 돈의 상당 부분을 말 관련 산업에 지원했다. 앞으로도 말 산업 육성 재원의 대부분을 경마사업이 담당하게 된다.
경마 수익금은 2009년 기준으로 축산발전기금에 1655억 원, 지방재정에 1조3000억 원, 농어촌 사회복지에 414억 원이 사용됐다.
한국마사회는 우수한 경주마를 생산하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일 계획이다. 문윤영 한국마사회 말 산업기획팀장은 “경주마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005년 이후 우수한 품종의 시승마를 두 마리씩 꾸준히 도입해왔다”고 설명했다. 또한 2014년까지 경북 영천시 일대에 국제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제4경마장을 건설해 운영할 방침이다.
재활승마는 한국마사회가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꾸준히 추진해온 프로젝트로 신체 혹은 정신 장애를 가진 이들이 승마를 통해 재활치료를 받는 것이다. 비장애인도 말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
말 산업 육성법에도 재활승마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승마장·복지시설·병원을 연계한 재활승마 네트워크를 2014년까지 15개가량 구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매년 재활승마한마당을 개최해 말을 이용한 재활치료의 저변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재활승마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는 기구를 말 산업 단지에 설치한다.
농식품부와 한국마사회가 밝힌 계획만으로 말 산업 육성 종합계획의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축산농가가 말 산업 육성 방안에 호응해줄 것인지, 국민이 레저 스포츠로서 승마를 친숙하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변수다.
인터뷰 | 장태평 한국마사회 회장
“장기적 안목으로 수익 다변화 나서겠다”
|  장태평 회장<br> ● 1949년 전남 무안 출생, 경기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미국 오리건대 석사(경제학), 강남대 박사(세무학)<br> ● 1977년 행정고시 20회 합격<br> ● 1990년 경제기획원 장관 비서관<br> ● 1998년 재정경제원 법인세제과 과장 국세조사과 과장<br> ● 2004년 농림수산식품부 농업정책국장<br> ● 2006~08년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br> ● 2008~10년 제58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장태평 회장은 말 산업 육성법 시행 직후인 지난해 11월 한국마사회 신임 회장으로 부임했다. 한국마사회는 2014년까지 말 산업에 7828억 원의 재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말 산업 육성 전담기관이 구축될 때까지 한국마사회가 말 산업 육성 계획의 중추적 역할을 맡는다.
-취임 3개월을 맞이했습니다. 한국마사회의 첫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조직 풍토 등이 밖에서 보는 것과 어떻게 달랐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한국마사회의 감독부처인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덕분에 한국마사회의 위상이나 사업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말 산업 육성법 제정을 통해 한국마사회는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경마 산업은 물론이고 말 산업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책임자로서 무한한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임 후 업무보고나 현장시찰을 통해 느낀 점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마에 대해 우리 직원들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회장으로서 한국마사회가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기업이 되도록 전 직원의 역량을 모아나갈 것입니다.”
-임기 내에 이것만은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생각하는 계획이 있으면 소개해주십시오.
“말 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으로 성장해나가는 데 발판이 될 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해 정착시킬 생각입니다. 또한 경마 산업과 마권발매에 지나치게 편중된 사업구조를 조금씩 다변화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려고 합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공익적 사업도 늘려가야 하고요. 현재 한국마사회와 함께 사용하고 있는 ‘KRA’라는 사명은 한국마사회의 기업정신과 사업내용을 포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고양하고자 사명을 변경하는 것을 포함해 한국마사회의 틀을 바꾸는 작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말 산업 육성법 제정 이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말 산업 육성법에 담긴 내용을 구체화하는 수단인 말 산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법 제정을 계기로 말 산업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말 산업과 관련된 여러 민간단체가 등장하고 있으며 농어촌형 승마시설 설치 지원사업에 대한 문의와 신청이 많아 들어오고 있습니다. 기존 승마장에서 승마를 즐기는 인구가 예전보다 크게 증가했다고 듣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국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책적으로 말 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고무적입니다.”
“부패행위? 발견 즉시 엄단”
-한국마사회는 행정이나 경영 전문성을 갖춘 사람보다는 정치권 인사가 회장으로 취임하는 게 관례처럼 돼왔습니다. 행정 전문가가 한국마사회를 경영하는 것에는 어떤 장점이 있다고 보나요.
“공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나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터라 경영관리보다 국가의 정책을 지원하는 기능에 방점을 찍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공기업의 경우 수익 창출은 기본인데다 사회적 책임에 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전략적으로 목표를 설정한 후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목표를 추진하는 데 세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경제기획원의 세무·재정 실무책임자, 국가의 농정을 책임진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공직 경험이 한국마사회를 경영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한국마사회의 부패와 비리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 공무원 생활과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이력을 보면 비리와 부패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기대되는데요.
“회장을 포함한 전체 조직 구성원의 청렴에 대한 의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 그 자체와 연관된 것입니다. 더욱이 경마라는 사행산업을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독점적으로 시행하는 한국마사회로서는 그 어떤 가치보다도 청렴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장으로 있는 동안 부패행위, 비리를 발견하는 즉시 엄벌할 것이며, 회장으로서도 솔선수범할 생각입니다.”
-좌우명은 뭔가요? 자신이 어떤 유형의 리더십을 지녔다고 평가합니까.
“굳이 좌우명을 꼽는다면 일할 때는 ‘최선을 다하라’, 일하고 난 후에는 ‘반성하라’입니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사실상 하나입니다. 처칠은 다시 살아도 지금처럼 살겠다고 했다는데,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곤 합니다. 한국마사회장으로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늘 반성함으로써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성공한 최고경영자가 되고 싶습니다.”
-말 산업에 대한 ‘미래 전망’을 듣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한 말 산업의 미래에 대해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지금과 같은 관심과 참여가 이뤄진다면 우리나라 말 산업이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 멀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말 산업 육성법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 그러한 목표를 조기에 가능케 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장기적 안목으로 말 산업의 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일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 |
신동아 201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