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위와 엇박자 보이며 ‘솜방망이’ 대책 내놓아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꼴”
표심만 생각하는 “비겁한 증세”
금융자산 90% 차지하는 상위 10%에 세금 부과해야
“하반기 경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종부세 개편안이 시행되면 서울 강남 소재의 ‘똘똘한 1채’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스1]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 대해 ‘소득이 아닌 자산 과세의 특성을 감안한 점진적인 개편’임을 강조한다. 먼저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현행 80%에서 90%까지 연 5% 포인트씩 올리기로 했다. 이는 재정개혁특위에서 권고한 100% 인상에서 10%포인트 낮춘 수치다. 기재부는 “최근 들어 공시가격이 올랐고, 재산세 공정시장가액 비율과의 격차 등을 고려해 인상 비율을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주택 세율은 과세표준 6억 원 이하는 현행 세율을 유지하되 6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에 대해서는 0.1~0.5%포인트 인상할 방침이다. 시가 23억~33억 원 1주택자와 19억~29억 원 다주택자가 함께 과표 6억~12억 원 구간에 속한다. 또한 3주택 이상자는 과세표준 6억 원 초과 시(시가 합계 19억 원) 0.3%포인트 과세된다.
종합합산토지 세율은 재정개혁특위 권고대로 0.25~1%포인트 인상된다. 별도합산토지는 전 구간 9.2%포인트 인상을 권고한 특위안과 달리 현 상태를 유지키로 했다. 별도합산토지의 대부분은 생산적 활동에 사용되는 상가·빌딩·공장 부지라 세율 인상 시 임대료와 생산원가 상승이 우려된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똘똘한 한 채’ 강남 집값 더 올린다
이번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세율 인상 영향을 받는 주택 보유자는 전체 0.2%인 2만6000명이다. 2016년 기준 주택 소유자 1331만 명 가운데 종부세 대상자는 2%인 27만4000명으로, 이번 개편안에 따라 세 부담이 늘 대상자는 이들 중 10%를 조금 넘는 셈이다.더욱이 고가 주택 보유자 또는 다주택자의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시가 17억1000만 원짜리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 3주택자는 내년에 각각 종부세를 5만 원, 9만 원만 더 내면 된다. 23억6000만 원 주택 보유자의 경우에도 보유세 증가분은 1주택자 28만 원, 3주택자 173만 원에 그친다. 결국 ‘똘똘한 1채’에 대한 수요가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공시가격 10억 원인 아파트 1채와 6억 원 아파트 1채, 4억 원짜리 아파트 1채를 가졌다고 치면, 내년 보유세(재산세+종부세)는 올해 1167만 원보다 366만 원(31.4%) 오른 1533만 원이 된다. 반면 서울 강남 소재의 공시가격 20억 원가량의 아파트 1채를 보유한 사람은 올해 내야 하는 보유세는 1006만 원이고, 내년에는 71만 원(7%) 오른 1077만 원을 내면 된다. 두 사람 모두 부동산 공시가격은 20억 원으로 같지만 보유세 부담 증가액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주거 목적으로 주택 1채를 보유한 사람에 비해 3채 이상을 소유한 사람은 투기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차별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강남 집값 상승’의 도화선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보유세 인상을 피하고자 지방에 있는 부동산을 처분하고 보유 가치가 있는 서울 내, 특히 강남에 대한 쏠림 현상이 더욱 짙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결국 강남 집값은 오르고 지방 집값은 더 빠지게 돼 있다. 이번에 아무리 세금을 올린다고 해도 만약 해마다 200만원씩 10년 동안 세금을 더 냈다 치면 총 2000만 원인데, 집값이 1년에 1억 오르면 결국 남는 장사 아닌가. 따라서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혁하다 민심 잃을까 두렵나”
그렇다면 정부가 재정개혁특위와 엇박자를 보이면서까지 보유세 인상을 최소화한 배경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심성’ 우회정책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재계 한 인사는 “6·13 지방선거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부자 증세에 대한 의지가 꺾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유세라는 것 자체가 징벌적 성격을 지닌 세금인데, 이번 선거에서 서울 강남에서조차 표몰이가 이뤄졌으니, 이런 상황에서 자칫 인심을 잃을 수 있는 증세를 추진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 기조의 변화가 ‘자기부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마치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꼴이다. 대외적으로는 이번 종부세 개편의 목적을 ‘과세 형평성 제고’라 하지만 제도의 실효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이번 개편으로 강남 집값만 더 오르게 생겼다.”
물론 보유세 강화의 당위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 과세 체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3개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보유세에만 초점을 맞추면 공정 과세는 물론이고 과세 형평성을 달성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중은 0.8%로 OECD 평균 1.1%보다 낮다. 반면 취득·등록세와 양도세 등 거래세 비율은 2%로 OECD 평균 0.4%보다 훨씬 높다. 보유세를 손질하려면 거래세를 조정하는 등 종합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조정 부분도 허점이 많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80%에서 90%(특위 권고안 100%)로 ‘찔끔’ 올리기로 한 것도 문제지만, 10%를 올릴 구체적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의 개편안에 대해 “비겁한 개혁, 용기 없는 증세”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부동산 조세정책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공시가격 책정 기준이 없어 형평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정감사 때 공시가격 현실화를 위해 국토부에 숱하게 공시가격 산정 기준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지만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고가 주택의 과표 현실화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일례로 20억 원이 넘는 고가의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과세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명동에 시가 200억 원대 상가를 보유해도 낮은 공시가격으로 인해 종부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이번 재정개혁특위를 통해 부동산 보유세 전반을 손볼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는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이는 노골적인 포퓰리즘이다. 개혁하자니 조세 저항이 두렵고 결국 표가 떨어져 나가는 게 무서워 부동산 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과 공평’을 기치로 내세우는 정부가 이런 꼼수를 부린다는 것 자체가 용납하기 힘들다.”
“정상화” 외치던 정부의 뜻밖의 결정
7월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합부동산세 개편’ 방안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뉴스1]
보수 진영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모든 사안 앞에 ‘정상화’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노무현 정부 때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렇기에 정부의 이번 부동산 개편안은 더욱 뜻밖이다. 이는 결국 노무현 정부의 기조는 따라가되, 표심까지 잃지는 않겠다는 계산인 것 같다. 겉과 속이 다른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여론몰이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3년차인 2005년 부동산 가격 안정화와 조세 부담의 형평성 제고를 위해 도입됐다. 당시 주택 세율은 3단계로 나눠 1~3%를 적용했으며 공정시장가액 비율은 50%에서 출발해 매년 10%포인트씩 인상한다는 계획이었다. 2006년부터는 종부세가 한층 강화돼 ‘인별 합산’이던 과세 방법이 ‘세대별 합산’으로 변경됐고, 과세 기준 금액 또한 9억 원에서 6억 원(주택기준)으로 낮아졌다. 다주택자와 종합합산토지 보유자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헌법재판소로 넘겨진 종부세는 결국 2008년 일부 위헌 판결로 다시 인별 합산 방식으로 부과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부터 과표 최하 구간이 3억 원에서 6억 원으로 올라가면서 헐거워졌고, 세율도 절반가량으로 낮아지는 등 대폭 완화됐다. 세수도 크게 줄어들었다가 2016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다시 1조5000억 원으로 늘긴 했지만 이 중 주택분에 해당하는 금액은 300억 원에 불과하다.
재정개혁특위와 기재부의 엇박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현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재정개혁특위가 권고한 ‘금융소득 종합과세 강화’ 방침을 사실상 따르지 않기로 했다. 앞서 특위는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현행 연간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1996년 금융실명제 후속 조치로 도입됐는데, 이후 부부합산 4000만 원에서 개인별 과세로 변경됐고 2013년에는 기준금액이 2000만 원으로 낮아졌다. 기준금액 아래면 15.4%(지방세 1.4% 포함)를 내야 하지만, 넘으면 종합소득세율(6~42%)이 적용돼 합산소득 4600만 원부터 24%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기재부가 특위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은 이유는 “가계의 목돈이 몰려 있는 부동산과 금융 부문 세 부담을 동시에 올리면 소비심리가 약화되거나 돈이 수익형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가 자본시장을 왜곡하고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자본시장 내에서도 의외의 결정으로 여겨진다. 당초 특위가 제안한 ‘1000만 원 방안’도 ‘주식 부자들’의 증세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했었다. 대형 증권사 한 고위 관계자의 따끔한 충고다.
“금융 자산의 90%는 상위 10%에 집중돼 있다. 특위가 제안한 증세 규모도 사실 거의 영향이 미미하다. 1년에 몇십억씩 버는 사람들이 몇백만 원 더 낸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많이 번 사람은 세금도 많이 내는 구조가 돼야 한다. 그래야 자본시장 생태계도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본가들은 여전히 탐욕스럽다는 이미지가 강한데, 이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슬그머니 발을 빼는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슬그머니 후퇴
서울 송파구의 종합상가 내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급매물 전단지가 붙어 있다. 정부의 이번 종부세 개편안은 고가 주택에 대한 과세표준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스1]
우리나라의 6월 수출지수는 4월에 이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수출은 지난해 3.1% 성장률을 이끈 원동력이지만 올 들어 기저효과 등의 영향으로 뚜렷한 방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우리나라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의 ‘돈맥경화’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현아 의원은 “내수 시장에서 돈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출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주머니가 닫힐 우려가 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조선업계 근로자의 소득이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단절되고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면 서민 경제는 정말 어려워진다. 금리와 양도세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은 ‘거래절벽’까지 우려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의 한숨도 깊다. 사회 곳곳의 뇌관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 선행지표 역시 하반기 경제의 불안함을 암시한다. OECD는 매달 주요국의 경기 선행지수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의 4월 기준 경기선행지수는 99.5로 2013년 1월(99.4)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99.9다. 경기선행지수가 100 이하면 6~9개월 뒤 경기가 나빠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올 하반기 한국 경제를 우려하는 이가 많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해 성장률은 정부가 제시한 수치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 주요 국가의 통상 환경 변화로 우리 경제에는 부정적인 신호가 쌓이고 있다. 기업 환경 개선에 대한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