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문’ ‘뼈문’ 전당대회 쟁점 돼선 안 돼
당과 청와대가 각자 주도권 가져야
문 대통령 유일한 기준은 노무현
[조영철 기자]
2015년 5월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원내대표 경선에선 친문(親文)계 최재성 의원을 66대 61로 꺾고 원내대표가 됐다. 지난해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선 문재인 후보와 경쟁을 벌인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캠프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7월 12일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이 의원과 만났다. 인터뷰는 2시간 40분 동안 이어졌다. 도중에 이 의원이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건국 이후의 반(反)헌법행위자 115명 1차 조사 발표회’에 잠시 다녀온 걸 빼더라도 2시간이 넘었다.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과 당내 친문계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반헌법행위자 조사 발표회를 연 것은 어떤 취지인가요.
“반(反)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와 공동으로 제헌절을 기념하고 헌법정신을 기리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거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오래전부터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반헌법행위자를 가려내는 작업을 해왔어요.”
“어쩌면 운이 좋은 거죠”
생존 인물들을 반헌법행위자로 지목하면 논란도 일어날 것 같은데요.“그래서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노고가 많이 들어간 거죠. 논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인물의 행적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어요. 일관성, 원칙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안 되는 작업이죠.”
당권 재수에 나섰는데, 우선 추미애 대표의 당 운영 2년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정치인의 의도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객관적 조건과 결합돼 어떤 결과를 낼 때 그 결과를 놓고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죠. 이런 면에서 추미애 대표는 아주 좋은 결과를 당에 내주었어요. 대표로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어찌 보면 운이 좋은 거죠.(웃음)”
전반기 1년은 야당 대표였지만, 후반기 1년은 집권여당 대표였기 때문에 운이 좋은 건가요?
“그렇죠. 사실 개혁진보 진영이 그렇게 2년이란 기간 동안 일관되게 높은 점수를 받기가 어렵거든요. 개혁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거 아닙니까? 어떤 일이 닥치면 내부 이견들이 분출합니다. 당 대표는 항상 다른 의견들과 부딪치면서 하루하루를 삽니다. 그런 이견들이 있었지만, 당을 둘러싼 객관적 조건이 너무 좋았어요. 작은 파동적 이견들을 추미애 대표가 잘 관리했다고 봅니다.”
2016년 8월부터 제1야당인 민주당을 이끈 추 대표는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정부 탄생으로 집권여당 대표가 됐다. 이를 전후해 지금까지 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고 6월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다.
“느낌 확인하고 요구 전달하는 정도”
이종걸 의원은 당·청 관계와 관련해 “당과 청와대가 영역을 좀 달리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한다. [조영철 기자]
“(잠시 생각하다) 조건 자체가 이미 청와대가 주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어떻게 보면 역설적으로 민주당이 존재 자체를 스스로 축소시킨 측면도 있어요. 국민 지지도가 높은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도하니 당이 자기 존재를 겸손하게 낮춘 것이죠. 대통령의 긍정적인 행보에 맞춰 그때그때 빈자리, 보조적 자리, 여당이 꼭 해야 할 자리를 찾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 균형을 잘 맞췄다면 민주당이 성공한 거 아닌가요? 역설적으로.”
문 대통령은 집권 후 ‘민주당 정권’이란 표현을 쓰면서 당에 힘을 실어줄 듯 했다. 그러나 요직인사, 정책발표, 개헌안 발의 같은 국정 전반을 청와대 위주로 이끌어간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1년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으론 여당의 역할을 되찾아야 할 텐데, 만약 당 대표에 당선되어 당을 이끈다면 대통령과의 정례회동 같은 당-정-청 소통 시스템을 만들 생각인가요.
“저도 노무현 정부 때는 중요한 활동인자(대통령후보 비서실 차장 겸 수행실장)였기 때문에 사정을 좀 알아요. 정례회동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어요. 어렵고 분열적 상황이라든지, 문제가 생겼을 땐 그걸 극복하고 봉합하고, 그런 기능을 위해서 회동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실제론 그만큼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당과 대통령의 관계’를 규정한 민주당 당헌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재임기간 동안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한다’ ‘이의 실현을 위하여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재임기간 동안 정례적인 당정협의를 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정례회동이 보여주기를 위한 형식밖에 안 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아침에 밥 한번 먹으면서 느낌을 좀 확인하고 그리고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정도죠. 과거엔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분리됐어요. 아무래도 지금은 대통령이 당과 조금 떨어져서 정권 수반으로서 통치행위를 한다고 봐야 해요. 당이 필요로 하는 일상적 이야기를 계속 전달하면서 어떤 과제에 시달리도록 하는 게 적절한지는 생각해봐야죠.”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역효과가 더 크다고 보는군요.
“현안들이 언론 취재에 의해 공개적으로 노출되면 청와대와 당 사이에, 또는 대통령과 당 대표 사이에 거리감만 확인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솔직한 말로 하면, 기삿거리만 주고 실제로 우리는 소득이 없어지는 겁니다. (웃음) 소통이 체계적으로 잘되지 않는다면, 당과 청와대가 각자 주도권을 갖고 영역을 좀 달리하는 방법도 있죠.”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당은 당대로 다른 영역을 맡으면 된다?
“네. 대통령과 행정부의 통치행위와 당의 역할을 서로 나눠 주도권을 갖자는 겁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완화해주자는 거죠. 국정 집행기관인 대통령에 대해 잘한다, 못한다 의견은 당연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모든 정책의 정점에 있어요. 대통령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걸 감안해야 해요.”
이 의원은 새로운 여당의 모습과 역할을 구상하는 것 같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역할과 여당의 역할을 어느 정도 나눠서 당-청 관계로 인한 피로를 줄이자는 것이다.
‘친문 대표’ 체제가 되면 당이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요?
“대통령이 ‘내가 친문 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 내가 총수다’라는 생각을 할까요? 대통령이 그것(친문 세력의 지원)을 전혀 원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친문과 비문을 자꾸 쟁점화하고 나누고 ‘대통령이 친문 세력의 총수이니 친문 세력을 지원하고 도울 것’이라는 식으로 친문과 비문을 나누는 구도에 대해 대통령이 싫어할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 대통령이 불쾌하지 않을까요?”
“그 이야기 들으면 대통령이 불쾌할 것”
[조영철 기자]
“친문이냐, 비문이냐 하는 건 우리 당내에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대통령 입장에서 본다면 썩 달가운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대통령이 집행총수가 돼 평화를 위해 저 멀리 여기저기 뛰어가는데, 당에선 너는 친문이다, 비문이다…사실 대통령은 관심이 없어요.”
대통령이 될 때까진 계파가 필요했지만 국정을 운영하면서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뜻인가요?
“대통령은 지금 목표를 성취하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고 싶을 겁니다. 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1년 수행했으니 일종의 ‘친노’였던 셈이죠. 노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 ‘친노냐, 비노냐’에 관심이 없었어요.”
이 의원은 ‘친노’였는데 ‘친문’으로 이어지진 않았군요.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저는 ‘결국 이겼구나!’ 이런 생각에 눈물이 나면서 다른 가치판단이 머릿속에 뜨지 않더라고요.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뜻이 남다른 것 같아요. ‘이 친구야, 당신이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내가 하겠다. 내가 당신과 함께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당신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 같더라고요. 그러니 이번 평화에서도, 문 대통령의 힘은 노 전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같은 한반도 평화 무드를 조성하는 데에 노 전 대통령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말인가요?
“김정은을 만나 한반도 평화 문제를 호소하고 김정은의 신뢰를 얻어서 트럼프에게 중재하는 역할까지 했죠. ‘노무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노무현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준은 이렇게 단순화돼 있습니다. 부동산, 금융, 일자리 정책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다른 한편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되지 않나요?
“지금 문 대통령의 유일한 기준이 ‘노무현’ 아닌가 싶어요.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무렵 펴낸) ‘운명’이라는 책이 있는데, 저는 ‘대통령 하겠다는 분이 이런 책을 쓰나?’하고 의아해했어요. 그건 노무현 책이지, 자기 책이 아니에요. 전 사실 문재인이라는 분은 대통령이 되면 잘하겠지만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저의 착오입니다. 착오인데, 국민의 등에 올라탄 것이죠.”
‘운명’이 아닌 ‘변명’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어떻습니까.“저를 두고 김대중 대통령님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대선후보 때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었다고 봐요. 차 타고 다니면서 이분이 하는 행동이나 이런 것들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노 전 대통령은 어찌 보면 문 대통령에게 빚을 갚는 게 인생의 목표였어요.”
어떤 빚이죠?
“노 전 대통령이 사고를 치면 그걸 다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었어요.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할 때도 그랬고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끝까지 곁에 있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문 대통령 행동의 기준이자 마음의 위안처였죠. 그러니까 ‘문재인’은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자기 스스로 아무 욕심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운명’이라는 책이 ‘변명’이라고 보는 거죠.”
세간에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갈리죠.
“공과 과가 모두 큰 분이죠. 2007년 대선 때 순전히 정동영 후보가 잘못해서 크게 졌나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급전직하했기 때문에 진 것 아닌가요? 그렇지만 노 전 대통령의 종횡무진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미워할 수 없어요.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죠. 물론, 국민을 딱 나눠 ‘저 사람은 나쁜 사람’ 이렇게 했는데 나쁜 사람은 얼마 안 되죠, 본인의 범주가 있어요. 압제하는 사람을 빼고 국민 대부분을 위해 온몸을 던진 분이에요. 마지막에 그토록 사랑했던 국민에게서 버림받았지만.”
이 의원은 문 대통령에 대해 “좋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나는 노무현과 다르다. 노무현의 친구였지만 노무현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됐어야 한다. 그런데 이분은 노무현에 머무른다. 노무현 정신을 실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당내 친문 정치인들이 노무현 틀 안에 있다고 보는 겁니까?
“노무현 정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죠. 노무현 정신이 그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진문, 뼈문 이야기 뭐 하러 하나”
2017년 4월 26일 경기도 포천 육군승진과학화 훈련장에서 문재인 민주당 대통령후보(오른쪽)가 이종걸 공동선대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그렇죠. 그런 게 눈에 보여요.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사람을 확 끄는 사이다 같은 힘, 사실 대통령에겐 그런 것이 중요하잖아요. 옳고 그름은 나중에 나오는 것이고. 그게 노무현을 만들어낸 건데 이분은 그렇진 않았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대통령에 쉽게 됐는데요. 국정운영에 대해 어떻게 보나요?
“정책 선택의 기준을 단순화했다고 봐요. 미국과 북한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과감한 대북지원을 시도했고 그런 부분이 김정은의 신뢰를 받았죠. 다만 대통령은 좀 특별나야 하는데, 제가 볼 때 문 대통령은 그런 분이 아닌 것이죠.”
당 대표가 된다면 당을 어떻게 바꿀 겁니까? 민주당이 여전히 야당 체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많은 역할이 기대되고 있어요. 정말 어려운 일이 많은데, 개헌도 그중 하나고요. 이런 것을 통해 어느 시기부터는 평범하게 관리할 수 있는 체제, 그러니까 실수 없이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청와대는 일상적 정치 일정 속에서 공격에 자주 노출되죠. 정당이 그 공격을 주로 이끌고요. 더구나 같은 정당(여당)마저도.”
최근 친문계를 중심으로 여당 의원들이 소위 ‘부엉이 모임’을 만들었다가 해체하는 소동이 일었다.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파벌을 기획한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이 나왔다. 이 의원은 부엉이 모임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문 대통령이 정치의 희망을 열어줬어요. 민주당은 그 희망을 잘 풀어나가는 정당이 돼야 합니다. 대통령이 원치도 않는 ‘진문’이니 ‘뼈문’이니 하는 이야기를 뭐 하려고 합니까. 이런 이야기를 전당대회 쟁점으로 하지 말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