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이 솟아나는 저녁이 어울린다
너에게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나에게는 빈 새장이 잘 어울린다
피에 젖은 오후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 등단
●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우리는 매일매일’ (2008) ‘훔쳐가는 노래’(2012)
● 저서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2004) ‘니체의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