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반도체, 앞으로 2년 안에 中 추격 따돌려야
반도체굴기 전폭 지원 中 정부, 곳곳에 공장 구축 중
공장 정상 가동 시 중국이 전 세계 생산물량 30% 장악
원천기술 선점, 선제 투자, 규제 개선 등 해결책 시급
[뉴시스]
반도체는 전자제품의 핵심 부품으로 사용되는 전자장치다. 제조 과정에는 전자공학, 물리학, 화학, 기계공학 등 여러 과학기술의 성과가 복합적으로 쓰인다. 그러다 보니 산업화에 성공하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아직도 미국, 유럽, 일본 등 과학기술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들이 반도체 기술과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보다 30년 뒤에 출발해 현재 위치에 도달했다. 한국보다 후발주자인 대만과 중국도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반도체가 국가의 경제적 부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매우 매력적인 산업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반도체 시장의 미래는 4차 산업혁명 여파로 여전히 밝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등 반도체 쓰임새가 많은 신사업 분야가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 기업으로 보기 힘든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까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한국 반도체의 숙제, 중국의 도전
세계시장에서 한국 반도체가 차지하는 위상도 남다르다. 지난해 한국 반도체산업은 시장점유율 21.5%를 기록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범위를 메모리반도체로 좁히면 점유율이 60.7%에 달해 적수가 없었다. 국내에서의 설비투자 역시 세계 1위였다.
상승세도 여전하다. 올해 한국 반도체업계는 월 100억 달러 수출 시대를 열었다. 연간 수출도 지난해 979억 달러에서 올해에는 최초로 단일 품목 수출 100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1985년 수출 1억 달러, 1994년 수출 100억 달러에 이어 2010년 500억 달러 시대에 도달한 이래 8년 만에 또 2배 성장한 셈이다.
하지만 중국의 거센 도전은 한국 반도체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중국은 IT(정보기술) 기기의 최대 수요처일 뿐 아니라, 세계 IT기기의 70% 이상을 제조하는 공장이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디지털 TV, 모니터의 중국 생산 비중은 71%, 75%, 80%, 50%, 88%에 달했다. 향후에도 이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수입량이 전 세계 물량의 50%를 웃도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PwC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의 반도체 소비는 전 세계 생산량의 57%를 차지했다. 비중 역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중국이 반도체산업을 육성하려고 하는 이유는 국산화를 통해 외화 유출을 차단하고 첨단기술 분야의 산업 창출을 꾀하기 위해서다.
중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반도체를 국가의 핵심 산업으로 규정해왔다. 2014년 6월에는 ‘국가 반도체산업 발전 강령’을 통해 팹리스(Fabless·시스템반도체 설계업체)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2020년까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해 2030년에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Made in China 2025(MIC 2025)’라는 보고서에서는 2020년과 2025년에 반도체 자급률을 각각 40%, 75% 달성하겠다는 복안을 내놨다.
벌써 경쟁력을 갖춘 분야도 있다. 중국 반도체는 팹리스 분야 세계 상위 50위 내에 자국 기업 10개 이상을 포함시켜 이미 한국을 뛰어넘었다. 또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에 필요한 초고속, 초저전력 설계기술을 IBM, 퀄컴(Qualcomm) 등과 협력해 개발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제조공정 분야에서는 아직 한국과 대만에 못 미치지만 자국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관건은 한국이 강세인 메모리반도체다. 메모리반도체의 두 축은 D램과 낸드플래시다. 이 시장에서 아직 중국의 경쟁력은 미흡하다. 이에 중국 정부는 향후 5년간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적극적인 산업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 우한, 진장, 허페이 등 3곳에서는 D램 공장 2곳, 낸드플래시 공장 1곳이 건설되고 있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이들 공장 3곳은 올해 안에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중국 반도체, 곳곳에 새 공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1, 2위를 다투는 D램 분야에서는 푸젠진화반도체(JHICC)가 2016년 2분기에 공장을 착공해 현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공장은 대만 파운드리 기업 UMC와 함께 개발한 32nm 기술을 사용해 2018년 3분기 가전용 D램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D램 분야 또 다른 회사인 이노트론(Innotron)도 공장을 짓고 있다.낸드플래시 분야에서는 칭화유니그룹이 소유한 YMTC에서 2017년 하반기 3D 낸드 시제품을 선보였다. 또 2018년 2분기에 월 5000장 규모의 32단 낸드를 생산할 계획을 발표했다. YMTC는 이에 더해 난징에 D램/낸드 팹(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공장들이 모두 제대로만 가동되면 현재 전 세계 생산물량의 30% 이상을 소화할 수 있다. 향후 제조기술이 안정되면 더 큰 위협이 나타날 수 있다. 중국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생산물량을 대규모로 늘릴 수 있는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올해 메모리반도체 시장 진입을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중국이 시장 진입에 성공하면 시장 내 공급과잉과 제2의 치킨게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국이 D램과 낸드플래시 기술을 1~2년 내 확보하고, 초고속·초저전력 메모리반도체 원천기술을 개발하면 어떻게 될까. 이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소자(Logic, memory 소자 등) 원천기술까지 확보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물론 당장 중국 기업이 국내 D램 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1~2년 내에 좁힐 가능성은 낮다. 이를 두고 한국 반도체에 남아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중국이 중장기적으로 기술을 확보해 생산 노하우를 확보할 때다. 이렇게 되면 중국 반도체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급속히 커질 수밖에 없다.
낸드플래시 시장 상황도 녹록지 않다. 만약 중국 업체가 특허 이슈를 해결하고 중장기적인 기술 개발을 완료한 채 시장에 진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22년쯤이면 세계시장에서 약 4% 점유율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낸드플래시 산업이 2D에서 3D로 전환되고, 2020년에 효율성 높은 신기술이 본격 도입된다면 업체 간 기술 격차가 줄어 중국의 시장 진입이 되레 용이해질 수 있어서다.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제조기술이 안정되면 생산물량은 급속히 증가할 테고, 이것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치명적일 것이다.
중국 따돌릴 근본 해결책 찾아야
세계 1위 미국은 현재 향유하고 있는 첨단기술 분야를 영원히 유지하고 싶어 한다. 미국에는 우수한 인재와 축적된 원천기술, 그리고 경험이 있다. 인텔, 퀄컴, TI, 마이크론 등 미국의 반도체기업들은 미국 경제와 안보에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타국 반도체산업의 성장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굴기와 미국의 견제는 과거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이다. 과연 이들 G2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해본다.
삼성전자가 3월 28일 오전 중국 산시성 시안시 반도체 공장에서 두 번째 라인 건설을 시작했다. 2012년 9월 착공해 현재 가동 중인 첫 번째 라인의 전경.
둘째, 메모리반도체 생산경쟁력을 담금질해야 한다. 메모리반도체는 표준화된 제품을 생산한다. 이 때문에 제조 과정에서 생산성이 중요하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경쟁 기업보다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같은 기술이면 공장을 먼저 가동하는 기업의 생산성이 높다. 투자 시기를 놓치면 그만큼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의미다. 물론 투자는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 일이다. 공장부지의 확보, 공장 건축 공사의 원활한 진행, 공장 운영을 위한 용수 및 전기 공급, 그리고 공장의 원활한 운영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셋째,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산업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비·소재산업 간 생태계 형성과 강화가 중요하다. 반도체를 직접 제조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주요 장비·소재를 해외 국가로부터 수입해 제조시설을 구축·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비싼 가격에 장비·소재를 구매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다. 이는 원가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아직 국내 장비·소재기업들의 경쟁력은 글로벌 기업보다 낮다. 따라서 국내 장비·소재기업들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생태계를 건강하게 구축하면 산업 전반의 경쟁력도 제고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R&D 지원, 자금 투자, 산업 환경 개선, 각종 규제 개선 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넷째, 인력 공급이다. 반도체산업의 인력 공급은 줄고 있다. 최근 정부의 R&D 지원 감소에 따라 대학 내 반도체 분야에서 연구하는 교수도 줄었다. 이에 따라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 수도 감소 추세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 요인으로 비화할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가 대학과 협의해 맞춤형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이를 이수한 학생들의 취업까지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꾸리면 반도체 전문인력 부족 현상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기술 인력의 이탈 방지를 위해 신규 창업과 고(高)경력자 재취업 기회를 늘려야 한다. 중국 반도체굴기의 자양분은 한국, 대만, 일본의 메모리반도체 기술 인력 흡수를 통한 기술 개발이다. 현재 3국 출신의 수많은 기술개발 엔지니어가 중국 기업에 취직해 있다. 대기업 현장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은 고경력 인재들이 중국에 재취업할 경우 한순간에 수많은 기술 노하우가 유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이 국내에서 재취업하거나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산업통상자원부 등 국가 핵심기술을 보호하는 기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산업계 종사자들은 국가 기술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두 기관의 최근 노력을 매우 의미 있게 평가하고 있다.
여섯째, 현재 상황을 원점에서 다시 보고 새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3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선진 기술을 따라잡고 세계 2위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및 인공지능 기술의 등장이라는 외부 요인과 기존 반도체 기술의 한계라는 내부 요인이 맞물려 격동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는 다양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주도적 기술을 갖춘 기업이 나타나진 않은 상태다.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민간 투자가 열매를 맺어 혁신적 기술을 확보한다면 메모리반도체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장비 분야에서도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경쟁국들은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중장기 대응전략을 수립해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한국 반도체의 대응은 미래 한국 경제 운명까지 좌우할 것이다. 반도체업계는 새로운 제품 창출력이 경쟁력의 기준이 되는 업계로 탈바꿈했다. 반도체산업은 전후방 산업과의 연관효과가 크다. 반도체가 핵심 부품으로 쓰이는 스마트폰, PC, 디지털가전, 자동차, 바이오, 우주항공 등의 산업과 연계하면 큰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 반도체산업 성장이 국가 전체의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발전과 관계가 깊다는 걸 모두가 인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