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번 돈 7만2000원
가입 닷새 만에 비밀번호 분실이라니!
공들여 쓴 글 반응 없고, 스팀잇 관련 콘텐츠만 ‘인기’
블록체인 세상의 ‘윌 헌팅’들에게 응원을
강기자의 스팀잇 블로그 (www.steemit.com/@layra2kr).
“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50살일 테고, 여전히 공사판에서 일하고 있을 거야. 난 그 정도의 그릇이니까. 넌 1등 복권을 손에 쥐고 있지만, 빌어먹을 겁쟁이라 그걸 내지르고 있지 않지. 그건 죄야. 나나 다른 애들 모두 네가 가진 것을 가졌더라면 여기 있지 않을 거야. (중략) 널 데리러 너희 집에 갈 때마다 내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네가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고 없는 거야.”
스팀잇 게시물에 사용한 썸네일 이미지.
이날 아침엔 스팀잇 ‘이웃’ YBK(@switchback27)가 올린 ‘인생영화란? 나의 인생영화, 굿윌헌팅’ 게시물이 눈에 쏙 들어왔다. 영화에 대한 설명, 동영상 클립, 한글로 번역한 대사, 그리고 벤 애플렉이 한동안 ‘맷 데이먼의 바보 같은 친구’로 영원히 기억될까봐 마음고생을 했다는 뒷이야기. 나는 글을 찬찬히 읽고 동영상을 두어 번 반복해 보면서 10분가량 즐거웠다. 이 글을 업보트하고(페이스북의 ‘좋아요’에 해당) 댓글도 남겼다.
스팀잇의 장점을 꼽으라면 깊이 있고 풍부한 콘텐츠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멋진 사진으로 눈 호강하고 싶을 때는 인스타그램을 켜면 되지만, 잡지를 읽듯 긴 호흡의 콘텐츠를 접하고 싶다면 스팀잇이 제격이다. 물론 네이버 블로그도 글의 길이에 제한을 받지 않고 사진, 동영상, 링크 등을 마음껏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네이버 블로그는 맛집이나 여행지 후기를 검색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게 된다.
최저시급보다 낮은 보상?!
이러한 활동으로 얻은 총 보상은 174.85스팀달러. 그중 내 스팀잇 지갑으로 들어온 보상은 38스팀달러, 11스팀, 31스팀파워다. 각 게시물이 얻은 보상은 100% 내 지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내 글에 대해 큐레이션 활동, 즉 업보트를 하거나 댓글을 단 사람들과 나눠 갖는다(그 비율은 대락 7:3).
‘입금’된 보상을 현재 시세로 환산하자면 나는 한 달간 7만2000원가량의 수입을 올렸다(7월 9일 현재 1스팀은 1730원, 1스팀달러 1380원·스팀파워는 제외). 7530원의 최저시급을 주는 일을 10시간 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다. 글 쓰고 댓글 다느라 들인 시간은 당연히 10시간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면 나는 지난 한 달간 허튼짓을 한 걸까? 지난해 말, 비트코인이 폭등했을 때 스팀·스팀달러도 가격이 크게 상승한 때가 있었다고 한다. 스팀과 스팀달러를 2만 원으로 가정한다면 내가 한 달간 벌어들인 수익은 100만 원. ‘스팀잇 노동’의 대가는 그날그날 스팀·스팀달러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
스팀잇에 올리는 첫 글은 ‘자기소개’여야 한다. 그게 스팀잇 커뮤니티의 문화다. 대개 실명을 밝히진 않지만, 직업이나 관심사 등을 상세하게 밝힌다. 나는 ‘공유경제 얘기하며 스팀잇 체험하려는 강기자’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이 글은 첫 게시물이자 가장 많은 보상을 얻은 게시물이다. 88개 보팅과 76개 댓글이 달려 40스팀달러에 가까운 보상을 얻었다. 스티미언들은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앞으로 좋은 글 기대합니다’ 등 따뜻한 인사말을 건네줬다. 모처럼 대학 신입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소개 글에 보팅이나 댓글이 거의 붙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나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저 얻은 운은 아니다. 스팀잇 취재로 알게 된 인기 스티미언이자 웹툰 작가 이솔(@leesol) 씨의 지원 사격을 받았다(6월호 ‘돈 버는 SNS 스팀잇의 모든 것’ 참조). 나의 스팀잇 데뷔를 미리 안 그가 내 글을 리스팀(페이스북의 ‘공유하기’에 해당)해줬기에 나 자신을 한결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성공적인 데뷔 덕분에 신이 났다. 주말 아침, 눈뜨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스팀잇에 올릴 글을 쓰고, 출퇴근하는 길엔 스마트폰으로 스팀잇에 올라온 게시물을 읽으며 보팅도 하고 댓글도 달았다. ‘불이의 영어 이야기’를 연재하는 불이(@bree1042), 미국 사회에 대한 글을 종종 올리는 한식하우스(@hansikhouse), 산부인과 의사 포해피우먼(@forhappywomen)의 글이 특히 좋았다. ‘대세글’에는 블록체인 관련 게시물이 자주 올라왔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다.
좋고도 슬펐던 ‘네이버 먹은 스팀잇’
이 권유를 무시하고 크롬 브라우저 ‘자동 로그인’ 기능에 기댔던 게 화근이었다. 어느샌가 자동 로그인 기능이 해제됐고, 기존 비밀번호로는 로그인이 거절됐다(구체적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제야 스팀잇에는 총 4가지 종류의 비밀번호가 있음을 알게 됐다(Tip 참조). 간신히 포스팅 비밀번호는 건졌지만, 나머지 비밀번호는 알 길이 없다. 이는 포스팅 비밀번호로 접속해 글을 쓸 순 있지만, 보상으로 받은 스팀달러 등을 인출할 순 없다는 뜻이다.
스팀잇 사용법을 안내하는 ‘이지스팀잇’(@easysteemit) 멤버인 소프트웨어 개발자 박세계(@segyepark) 씨로부터 “새 계정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일정 수수료를 받고 실시간으로 스팀잇 계정을 만들어주는 툴이 몇 개 나와 있다. 나는 기존 스티미언이 3스팀을 지불하면 새 계정을 만들어주는 툴(https://nhj7.github.io/steem.apps/#AccountCreator)을 통해 두 번째 계정을 만들었다. 이 툴은 3스팀을 새 계정의 지갑으로 고스란히 보내준다. 사실상 수수료가 없는 셈이다. 이 ‘난리’를 스팀잇 세계에 전했더니 고슴도치쌤(@abcteacher)이란 분이 ‘비밀번호 변경합시다. 두 번 합시다’란 글을 썼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한 달 동안 ‘실험’을 자처하며 다양한 글을 올렸다. 취지에 맞게 공유경제와 관련한 글을 쓰기도 했고, ‘신동아’에 실린 기사 몇 개를 소개하기도 했다. 요즘 스팀잇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서드파티(Third Party·공개된 API를 활용해 개발된 파생상품)인 테이스팀(kr.tasteem.io) 콘테스트에 응모도 해봤다. 테이스팀은 맛집 공유 서비스다. ‘이제 휴가철이죠, 강원도의 맛집으로’ ‘앉아서 세계여행 이국의 요리’ 등 각 콘테스트에 적합한 맛집 리뷰를 올리면 스팀잇 보상과 별도의 상금까지 얻을 수 있다. 테이스팀은 스팀잇 아이디로 로그인하며, 테이스팀에 올린 게시물은 나의 스팀잇 블로그에도 동시에 게시된다.
내가 올린 게시물 중 보상이 많은 게시물의 성격은 뚜렷했다. ‘스팀잇 관련 콘텐츠’다. 신동아 6월호에 실린 ‘돈 버는 SNS 스팀잇의 모든 것’을 스팀잇에 게재했더니 보상이 37스팀달러나 될 정도로 많은 스티미언이 좋아해줬다. 스팸(spam)은 막고 좋은 게시물은 홍보해주는 ‘가이드독 프로젝트’(@krguidedog)의 리스팀과 보팅을 받는 영광도 누렸다. 이 기사는 네이버 ‘비즈니스 판’ 메인 화면에 올랐는데, 그 소식을 전한 단순한 게시물에도 보상이 17스팀달러나 붙었다.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슬펐다. 두어 시간 공들여 쓴 공유경제 관련 글(‘몇 시에 퇴근하세요? 승차 공유 막자고 출퇴근 시간 법제화?!’)은 5스팀달러의 보상을 얻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창작으로 하는 ‘투자’
최근 스팀잇의 kr 커뮤니티는 침체기다. 찬찬히 읽을 만한 좋은 글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싶었는데, 스팀 시세가 하락하는 시기에는 흥이 덜 나는지 활동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심도 있는 글보다는 스팀잇이나 블록체인 동향, 맛집 리뷰 등이 피드를 채우고 있다는 인상이다.
1스팀 시세는 5월 중순 3000원가량이었지만 한 달 만에 1700원대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주식이든 암호화폐든 하락장세에선 끝도 없이 하락을 거듭해 휴지 조각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라’는 주식 투자 명언과 같은 맥락에서 요즘이야말로 스팀에 투자할 때라는 글이 간혹 눈에 띄지만, 선뜻 스팀 투자에 나서게 되지 않는다(업비트, 고팍스 등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스팀 및 스팀달러를 거래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 가지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요즘 금융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암호화페 투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묻는데,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산의 1% 정도만 고위험인 암호화폐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잘 되면 대박이고, 못되더라도 크게 손해가 나지 않는다는 뜻에서다.
그렇다면 스팀잇 활동을 현금 말고 창작으로 하는 암호화폐 투자로 여긴다면? 조금씩 쌓아올린 스팀이 어느 미래에 유의미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스팀잇은 내가 생산한 콘텐츠가 차곡차곡 쌓인 ‘창고’가 된다. 스팀잇에서 종종 소설을 쓰거나, 웹툰을 그리거나, 특정 주제의 글을 연재하는 창작자들을 발견한다. 이들은 블록체인 세상의 ‘윌 헌팅’ 아닐까. 가까운 미래에 이들의 승전보를 듣고 싶다.
TIP | 알쏭달쏭 스팀잇 비밀번호
스팀잇에는 마스터키, 포스팅키, 액티브키, 메모키 4개 비밀번호가 있다. 자신의 블로그>지갑>권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화면에 바로 보이는 것은 공개키이고, 오른쪽 ‘개인키 보이기’를 클릭해 보이는 것이 진짜 비밀번호다.스팀잇이 가입 승인 메일에서 보내주는 비밀번호는 ‘마스터키’다. ‘오너키’라고도 한다. 이 비밀번호로는 포스팅, 스팀·스팀달러 전송 및 거래, 비밀번호 변경 등 모든 기능에 접근할 수 있다. 포스팅키로는 게시물을 올리거나 보팅, 댓글 달기 등을 할 수 있지만 스팀·스팀달러 거래는 할 수 없다. 스팀·스팀달러를 전송하거나 거래하려면 액티브키가 필요하다. 메모키는 아직 활용되지 않는다.
스티미언들은 마스터키를 따로 잘 보관해둘 뿐 평소엔 사용하지 말라고 권한다. 평소 포스팅키로 로그인해 게시물 작성 등 활동을 하고, 스팀·스팀달러 전송 및 거래 시에 액티브키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