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댐 주변 자전거도로를 질주하는 라이더들. [박해윤 기자]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고르는 모습. 중급자에게는 하이브리드 바이크를 추천한다. [박해윤 기자]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7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달려본 자전거길이라곤 한강변이 전부인 나는 이번 여행에서 ‘자전거 대여소’를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서울에서부터 자전거를 끌고 남한강까지 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짐도 최소화했다. 보통은 소지품을 넣는 가방을 자전거에 부착해서 달리지만, 이번에는 평소 메던 작은 가방을 등에 메고 달리기로 했다.
가장 먼저 마스크부터 챙겼다. 평소 자전거를 타다 보면 정체 모를 벌레들이 얼굴 등 몸 전체에 달라붙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스크 외에도 모자, 고글, 선글라스, 쿨토시 등 자외선 차단 제품을 챙기는 것이 좋다.
전기자전거 유혹 뿌리치고 무거운 페달을 밟다
프로급 라이더를 위한 고가의 로드바이크(Road Bike)부터 비포장도로에서도 안정적으로 탈 수 있는 산악자전거(MTB), 로드바이크와 MTB의 장점을 합쳐놓은 하이브리드 바이크(Hybrid Bike), 바퀴 지름이 20인치 이하인 초보자용 미니 벨로(Mini Velo) 등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일반 자전거보다 페달을 약하게 밟아도 쌩쌩 잘나가는 전기자전거가 인기라고 한다. 특히 자전거 뒤에 트레일러를 달아 아이들을 싣고 달리는 가족 단위 라이더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자전거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안장이다. 자신의 키에 맞는 자전거를 선택한 뒤 안장을 골반 위치에 맞게 조절해 무릎과 허벅지에 부하가 느껴지지 않도록 한다. 추현정 명스포츠월드 실장은 “반드시 바이크숍 근처에서 시운전을 해보고 자전거를 빌려라”고 조언했다.
나 역시 전기자전거에 마음이 끌렸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편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20km 정도 시운전해본 결과 ‘힘이 들더라도 온전히 내 다리로 달려보자’는 도전의식이 불쑥 들었다. 결국 하이브리드 바이크를 선택했다.
자전거는 시간당 혹은 종일권으로 대여 가능하다. 일반 자전거는 시간당 3000원·종일권 1만 원이고, 고급 자전거(하이브리드 바이크 등) 시간당 5000원·종일권 1만5000원, 전기자전거는 시간당 8000원·종일권 2만 원이다. 휴대전화 거치대는 2000원에 빌릴 수 있다. 헬멧은 모든 바이크숍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오는 9월 28일부터는 자전거 운전 중 헬멧 착용이 의무화되기 때문에 전국 모든 자전거 대여소에서 헬멧을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장비를 갖췄다면 이제 신나게 페달을 밟을 일만 남았다. 자전거 대여점에서 나눠주는 지도에는 자전거길뿐만 아니라 자전거 수리·대여소, 중간 반납처, 화장실, 편의시설 등이 자세하게 표시돼 있다. 남한강변의 자전거 루트는 140km의 대장정이기에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해야만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이렇게 긴 코스의 자전거 여행은 처음이라, 어디부터 가야 할지 망설이는 나에게 추 실장은 “종주의 욕심은 버리고 경치 좋은 구간을 중심으로 코스를 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그래야만 아쉬운 마음에 또다시 자전거를 타러 오게 될 것이란 얘기도 덧붙였다.
라이더들이 가장 즐겨 찾는 코스는 30km 길이의 팔당역~양평역이다. 그 중간에 있는 양수역~양평역 코스는 오솔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어 다소 지루한 감이 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추 실장은 “북한강철교에서 곧장 남한강 방향으로 빠지지 말고 북한강 자전거길 코스 방향으로 꺾어 북한강을 본 뒤 다시 되돌아가면 남한강과 북한강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고 귀띔해줬다.
‘냉장고 터널’에서 만끽하는 청량함
북한강 밝은광장 인증센터 앞 북한강 풍경. [박해윤 기자]
남한강변을 달리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라이딩 문화가 한층 성숙해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매너 없는 라이더를 만날 때가 종종 있었다. 진로를 방해한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일부러 바짝 붙어 추월하며 위협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라이더들은 추월할 때면 왼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지나갈게요”라는 말로 양해를 구했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지금은 온 천지가 연둣빛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팔당호를 끼고 왼쪽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다. 봄에는 벚꽃이 아름답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1년 내내 언제 찾아도 좋은 곳이 바로 남한강 자전거길이라는 얘기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통과한 봉안터널 안. 사람이 지나가면 센서조명이 켜진다. [박해윤 기자]
행복은 잠깐. 터널을 빠져나오자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다리에 힘을 실어 ‘꾹꾹’ 페달을 밟자 금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종아리가 찢어질 듯 통증이 밀려왔지만 이마 위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개운한 기분이 절로 들었다. 울퉁불퉁한 노면과 살이 타들어갈 것 같은 햇살을 견디며 오르막길 정상에 오르자 햇볕에 반사돼 은빛으로 출렁이는 강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음부터는 계속 평지가 이어졌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과 넓은 꽃밭이 한동안 눈앞에 펼쳐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풀밭에는 닭 여러 마리가 힘차게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얼마 더 달리다 보니 예쁜 정원이 있는 통나무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통기타 포크송과 북한강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수채화 같은 풍경에 새삼 행복감이 밀려왔다. 가격이 조금 비싼 게 흠이지만 이곳에서는 식사와 음료, 음주 모두 가능하다.
능내역에서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능내역이다. 라이더들 사이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이곳은 나무와 풀 사이로 짧은 기찻길이 이어져 있다. 작고 아담한 폐역은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것과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철길 한가운데는 2008년까지 52년간 달리던 ‘행복行 추억기차’가 멈춰 서 있다. 기차 안에는 능내리 마을 부녀회에서 주말마다 운영하는 열차카페가 들어서 있다. 평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는데, 길게 이어진 테이블에서 열차 밖 풍경을 감상하며 커피 한잔을 마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안에는 1960·70년대 능내리의 마을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1956년에 지어진 능내역사에는 빛바랜 기차 시간표와 삐거덕대는 대기실 의자 등 모든 것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풀기로 했다. 주말에는 열차카페를 이용할 수 있지만 평일에는 주변에 식당이 없어 도시락을 싸오는 것이 좋다. 열심히 땀 흘린 뒤 먹는 샌드위치와 과일은 그야말로 꿀맛. 얼음물로 입가심하고 자외선 차단제도 덧바른 뒤 고즈넉한 역사를 뒤로한 채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라이딩 코스의 절반이 넘어가자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지옥의 코스가 나타났다. 아무리 남한강 풍경이 아름답대도 끝없이 이어진 오르막길을 자전거로 오르기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어찌할지 몰라 쩔쩔매는 나와 달리 숙련된 라이더들은 오히려 오르막길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10분 정도 달리자 다시 구불구불 소나무길이 펼쳐졌다. 나도 모르게 ‘휴~’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 무렵 북한강철교까지 4km 남았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국내 철교 중 가장 긴 북한강철교는 그 길이가 560m에 달한다. 철교 바닥 중간 중간에 투명 강화 유리판이 깔려 있어 다리 밑으로 흐르는 시원한 강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마치 자전거로 강물 위를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북한강철교를 지나면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이 남한강 자전거길, 왼쪽이 북한강 자전거길이다. 지하철로 치면 환승역인 셈인데, 이곳에서 라이더들은 자전거를 멈추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숨을 고른다. 철교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이도 많다. 다만 라이더와 보행자들로 북적이는 주말에는 자칫 충돌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돌아보면 길도, 인생도 구불구불”
자전거 종주 인증센터인 ‘북한강 밝은광장’에서 찍은 인증 스탬프. [박해윤 기자]
잠시 숨을 돌릴 겸 센터 안에서 쉬고 있는 라이더들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는 신태웅(55) 씨는 자전거 타기의 묘미에 대해 “죽을힘을 다해 오르막길을 달리고 나면 한 고비를 넘긴 듯 홀가분하면서도 짜릿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신씨는 남한강과 북한강을 포함해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우리나라 4대강을 포함해 경인 아라 자전거길과 충주 탄금대에서 시작하는 새재 자전거길까지 다 달려봤다고 했다. 올가을에는 동해안 자전거길을 종주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밝은광장을 위탁 운영하는 이선미 씨는 자전거 라이딩을 인생에 비유했다. 그는 “자전거를 탈 때는 직진만 하는 것 같지만 뒤를 돌아보면 달려온 길이 얼마나 굽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더라도 막상 뒤를 돌아보면 분명 굽은 길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달려온 길을 되돌아갈 시간이다. 조금 전 내리막길이던 그 길이 이번에는 오르막길이다. 이는 자전거 여행을 통해 배운 인생의 작은 깨달음이기도 하다. 처음 목표는 양평역까지 달리는 것이었지만 무더위에 땀을 너무 흘린 탓인지 체력이 달렸다. 아쉽지만 양수역에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고 출발지인 팔당역으로 돌아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양수역에서 팔당역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만약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을 타기 힘들다면 오빈역이나 양평역 부근에 마련돼 있는 자전거 반납처를 이용하면 된다. 대신 자전거 대여 업체에서 용달차를 이용해 자전거를 싣고 오는 값으로 조달비 2만 원을 내야 한다.
남한강 자전거길은 초보 여성 라이더가 혼자 달려도 무리 없는 안전한 코스다. 곳곳에 자전거길 루트와 편의시설 정보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어 길눈이 어두운 사람이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쉼터와 화장실도 비교적 깨끗했다. 자전거로 15분 정도 거리마다 편의점이 있어 물이나 음료수를 사서 마시기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양평역에 도착하자 어느덧 시곗바늘이 오후 4시를 가리켰다. 비록 두려움을 안고 시작한 자전거 여행이었지만 결국 나는 성취감이란 귀한 선물을 얻었다. 앞으로 자전거 여행을 계속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