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 피싱 : 인간과 바다 그리고 물고기 |
어부들이 없었다면 장엄한 국가는 없었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정미나 옮김, 을유문화사, 568쪽, 1만8900원
그 결과는? 페이건은 이렇게 경고한다. “다음 몇 세기에 그린란드와 남극 빙하 일부가 녹아 인류가 최소 4m 상승한 바닷물에 갇힐 것이다.”
하지만 ‘바다의 습격’ 전에 인류를 생존시킨 ‘바다의 은혜’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피싱’은 ‘바다의 습격’의 스핀오프(Spin-off)와도 같은 책이다. 또 다른 역사의 문을 열기 위해 페이건이 손에 쥔 열쇠는 ‘고기잡이’다. 페이건에 따르면 선사시대 인류가 식량을 확보하는 방법은 수렵과 채집, 고기잡이가 전부였다. 수렵과 채집은 농사와 목축의 발달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고기잡이는 200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다 식량을 구할 원천으로 권위를 잃지 않고 있다.
초기 문명 다수가 강어귀에서 발생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풍요로운 어장은 인류의 삶과 문명을 살찌웠다. 어부가 잡은 물고기가 없었다면 앙코르와트의 사원도 그 찬란한 위용을 갖추지 못했을 거라는 저자의 말은 사뭇 통쾌할 정도다. 물고기가 없을 땐 조개가 있었다.
만약 바다의 식량원이 고갈되면? 어부는 새 어장을 찾아 떠났다. 그 덕분에 고기잡이는 인간의 교역과 이동하는 삶을 자극했다. 이는 곧 선박 기술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고, 훗날 얼개를 드러낸 배는 탐험가들의 욕구까지 충족시켰다.
어부의 삶, 바다의 역사 복원해내
페이건의 문제의식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배가 제국주의의 질료로 쓰였다는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이때도 물고기는 영양가 가득한 식량이었을 터. 한번 잡아놓고 염장 처리하면 보관 기간이 길어 언제든 편리하게 섭취할 수 있어서다. 물론 초창기 어부들이 이런 미래까지 예견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고기잡이와 어부의 이야기는 역사에서 놀랍도록 무시돼왔다. 어부들의 암묵지(暗默知)가 그들의 삶 근처만을 배회했기 때문이다. 페이건에 따르면 “어부들은 자신들이 터득한 견문을 자기들끼리만 비밀리에 전수했다.” 반면 농경과 목축은 명시적 지식으로 남아 인류 역사의 한 귀퉁이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불균형하지만 “어부들이 없었다면 황금으로 뒤덮인 장엄한 국가는 없었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하는 페이건은 희박하게라도 남은 문헌을 통해 어부의 삶과 바다의 역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복원해냈다. 노학자의 이 놀라운 집념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빛난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에세이, 셰익스피어를 만나다|
문학을 통해 만나는 17세기 영국 법과 사랑
안경환 지음, 홍익출판사, 152쪽, 1만8000원
‘(줄리엣이 대화 중에) 맹세의 뜻으로 계약(contract)이라는 법률 용어를 쓴다. (이때) 두 사람의 자유의사로, 합의에 따른 혼인계약이 성립된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해당 부분을 이렇게 해석하면 이후 로미오가 사제를 만나 ‘(줄리엣과 나는) 이미 부부가 됐다’고 선언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문학과 법. 둘 다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원문을 곁들인 저자의 설명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셰익스피어 작품을 잘 모르고 법 분야에 초심자라도 어려움 없이 책을 즐길 수 있다. 더불어 17세기 영국의 생활상과 영미법에 대한 상식도 덤으로 얻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저자에 따르면 법학자들은 형벌의 목적을 크게 네 가지로 본다. 첫째 응보, 둘째 공동체 회복, 셋째 교화, 넷째 미래 범죄 발생 억지다. 저자는 이 각각의 이론을 간략히 설명한 뒤 독자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통해 각각의 특징과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오셀로’ ‘맥베스’ 등은 주인공이 자기가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응분의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응보’ 이론을 뒷받침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공동체 회복, ‘리어왕’은 교화, ‘줄리어스 시저’는 범죄 억지의 관점을 각각 보여준다.
저자는 책 머리말에서 이 책이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의 속편에 해당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사극과 소네트를 포함한 나머지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후일을 기약한다’고 썼다. 기대가 크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김형오 지음, 아르테, 412쪽, 1만9800원
국회의장을 지낸 저자는 “여전히 어려운 시대, 백범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통사람(白凡)’이 묻고 ‘김구’가 답한 후 뜻을 더해 들려주는 문답식 백범일지다. 김구의 호 백범은 평범한 백성, 즉 보통사람을 가리킨다. 비범한 혁명가이자 진솔한 인간이던 김구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보자.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마고 드멜로 지음, 천명선·조중헌 옮김, 616쪽, 3만5000원
한편으로는 반려동물 산업과 문화가 급성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참혹한 공장식 축산과 동물 학대가 급증하는 시대에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통합적 시각과 인도적이고 합리적인 공존 방안을 모색하는 ‘인간동물학’을 집대성했다. 인간-동물 관계를 다루는 인간동물학 입문서다.
|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
강자가 ‘군림’ ‘갑질’하지 않는 세상 오기를
장상인·이토 슌이치 지음, 티핑포인트, 288쪽, 1만4000원
아무튼 우리 주변에는 칭찬에 인색하고, 흉을 보거나 헐뜯는 일에 열을 올리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평소 칭찬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다. 지나친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의 정신이 어린 시절부터 피폐해진 것도 문제의 하나일 것이다. PC와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관계에서 대화가 줄어든 것도 원인의 하나다. 가족들과의 의사소통도 말보다는 문자로 하는 것이 일상화하고 있다.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 메마른 대화를 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삶의 지침이나 대화 방법 등 자기계발 내용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 담겨 있다. 고차원의 커뮤니케이션 지침서가 아니라 주변에 널린 흔한 일상적인 일과 대화를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언어를 중심으로 한 책은 아니다. 인생과 사회, 가족에 대한 크고 작은 일화가 들어 있으며, 대화를 다룬 부분에서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칭찬과 상처를 사례별로 제시한다. 또한 사람 사는 이야기와 인생의 마무리에 이르는 과정을 다뤘다.
‘남을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을 쓰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필자가 본의 아니게 던진 말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다. 나 자신을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 점도 큰 수확이다. 책에서도 밝혔듯 강한 사람들이 ‘군림’이나 ‘갑질’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르짖는 약자의 작은 소리를 크게 듣는 밝은 세상이 오기를 기원한다.
나는 대우건설과 팬택에서 홍보실장을 지냈다. 홍보맨 외길을 걸으면서, 일본 건설 시장의 문을 여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인들과 우정을 이어왔다. 책에 그들과 인간적 관계를 형성해온 과정도 실었다. 공동 저자인 언론인 이토 슌이치(65) 씨도 20년 친구다. 그와는 ‘언젠가 같이 책을 내보자’는 다짐을 했더랬다. 그 꿈이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장상인 JSI파트너스 대표, 칼럼니스트
잃어버린 치유의 본질에 대하여
버나드 라운 지음, 이희원 옮김, 책과함께, 468쪽, 2만2000원
의사들은 별다른 대화 없이 첨단 의료 장비를 이용해 증상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내 증상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한 걸까? 환자가 느끼는 의혹은 증상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이 같은 의사 중심 치료 방식이 최선일까. 저자는 ‘치유’는 그렇게 간단하게 이뤄질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금, 곽미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24쪽, 1만5000원
“이 책은 당신이 어떤 일을 하건, 더 잘하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다”(뉴욕타임스). 저자는 글 쓰는 의사다. 현실의 한계를 밀어내며 조금이라도 나아갈 틈을 찾는 한 직업인의 집요하고도 낙관적인 분투기다. 최고를 능가하는 최선이 있으며 그것을 찾는 무수한 시도야말로 개인과 사회가 진보하는 열쇠임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아인슈타인의 보스: 천재들을 지휘하는 10가지 법칙|
천재가 허튼 길 가면? 그냥 둬라
로버트 흐로마스·크리스토퍼 흐로마스 지음, 박종성 옮김, 더난출판사, 347쪽, 1만6000원
세 사람의 활약상을 지켜볼 때마다 늘 궁금했다. ‘이들은 좋은 지도자가 될까.’ 어느덧 세 사람 공히 한 번씩은 코치·감독직을 거쳤다. 결과는? 판단은 갈리겠지만 선수 때 명성엔 못 미치는 것 같다. 세 사람의 황금기를 벤치 너머로 지켜본 무명의 야구인들이 되레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됐다.
몰입 방해하는 ‘개입하는 리더’
책을 읽다 보면 이 아이러니를 이해할 작은 단서 하나쯤은 얻게 된다. 이야기의 무대는 20세기 초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 이곳에 ‘상대성이론’의 주역 아인슈타인과 ‘불완전성 원리’를 발견한 괴델, ‘원자폭탄의 창조자’ 오펜하이머가 모인다.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사람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창립자 에이브러햄 플렉스너다.
천재들을 이끄니 천재일 성싶지만 플렉스너는 논문 한 편 쓴 적 없는 인물. 한데 그는 천재를 활용하는 재주가 남달라 “천재가 능력을 발휘하는 데 리더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천재가 허튼 길을 가면? 가던 길을 가게 두면 된다. 창의성은 주어진 경로를 벗어날 때 발현될 수 있어서다.
천재들의 리더는 투명인간이어야 한다. 원하는 걸 주되 해법이나 방향에 대한 지시는 금해야 한다. 천재 특유의 몰입이 ‘개입하는 리더’와 상극인 탓이다. 저자는 이 와중에 “집중과 자유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말을 덧붙인다. 이런 균형강박증이야말로 천재를 다룬 책과 거리가 멀어 보이니 참 아이러니지만.
야구 천재가 유능한 감독으로 거듭나기 힘든 이유는 그들이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일 게다. 스스로 터득해온 방식과 노하우가 곧 해법인데, 이를 지시하는 게 금물이라니. 이처럼 자신이 관심 둔 분야에 끊임없이 대입해보며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비커밍 페이스북
마이크 회플링거 지음, 정태영 옮김, 부키, 360쪽, 1만7000원
“페이스북 사용자 추세를 보면 노화가 진행 중이라던데… 이제 하락만 남은 건 아닌가?” 물론 그럴 수 있다. 이 책은 페이스북의 미래가 창창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페이스북이 마주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면서 성장해왔는지 전한다. 페이스북의 미래는 장밋빛인가 잿빛인가.
불교경제학
술락 시바락사 지음, 이정민 옮김, 정토출판, 160쪽, 1만 원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에 산다. 자연환경에 대한 통제력도 지금껏 인류가 경험한 중 최고 수준이다. 발전한 과학기술이나 늘어난 물질적 부만큼 우리의 행복은 증진됐는가. 소비하기 위해 더 벌려 애쓰고, 더 많이 생산하고자 소비를 자극하는 현재의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 한 행복으로 가는 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