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신용·경제 분리하고 협동조합 본연 기능 다하라”

농협개혁의 싱크탱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협경제연구소

  • 최영철 기자│ftdog@donga.com

    입력2012-09-20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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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경제 분리하고 협동조합 본연 기능 다하라”
    농협이 지난해 3월 발효된 농협개혁법에 따라 신용·경제사업분리(신경분리)와 사업구조개편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농협의 개혁은 농협의 주인인 조합원과 지역 조합, 중앙회의 열망 속에서 준비되고 진행됐지만 많은 기관과 단체가 의견을 보태고 충고를 해왔다. 모든 변화에는 기존의 것을 지켜내려는 세력이 있고 실제 손해를 보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을 설득해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개혁을 해야 할 당위성과 이를 뒷받침할 논리, 대안, 통계가 필요하다.

    이번 농협개혁에서 그런 역할을 한 중추 조사연구기관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과 농협경제연구소(NHERI)다. 농협개혁위원회에 위원으로 참가하고 조사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 두 기관은 그간 우리 농민이 무슨 농사를 얼마나 어떻게 왜 지어야 하는 지,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면 어떤 피해를 보게 되고 농민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정부는 어떤 농정을 펼쳐야 하는지 그 해법과 대안을 내놓았다. 그야말로 우리 농업과 농협에서는 ‘방향타’이자 ‘위기 경보기’ 구실을 해온 곳들이다.

    양대 조사연구기관의 수장(首長)들은 농민과 농협이 함께하는 농협의 개혁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또한 우리 농축산업이 가야 할 길은 진정 어디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몰아닥치던 8월 말 이들 두 기관의 수장을 만나 그 해답을 들어봤다.

    #‘현장의 달인’ 이동필 농촌경제연구원장

    “지역 조합이 변해야 농협이 바뀐다”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 정문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널찍한 텃밭(450㎡)이 자리를 잡고 있다. 원래는 잔디밭과 조경수가 있던 곳이지만 2011년 10월 이동필(57) 원장이 취임하고 난 후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그들에게 필요한 연구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텃밭으로 바꿨다. 지난해 10월에는 보리를, 올 6월에는 열무, 상추, 깻잎 등을 파종해 수확을 했다. 9월 중순 들어서는 8월 중순에 심은 메밀이 꽃을 피워 벌써 하얗게 얼굴을 내밀었다. 3모작이 이뤄지는 셈이다.

    “농업인의 마음을 알려면 직접 농사를 지어보는 게 최고죠. 처음엔 연구원들 사이에 왜 저런 일을 하나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직접 농사짓고 결과물을 얻은 후에는 느끼는 게 많은 모양입니다. 농촌 현장에 필요한 연구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이제 연구원들 마음속에 보리가 자라고 있어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1967년 농촌진흥청 농업경영연구소로 출범해 1978년 재단법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으로 개원했다. ‘농림경제 및 농어촌사회 발전에 관한 종합적인 조사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과 국민복지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게 목표. 주요 임무는 △농식품정책에 관한 조사연구 △농어민의 복지증진 및 농어촌사회문제에 관한 조사연구 △국제농업협력에 관한 연구 △농업관측을 통한 품목별 수급동향 및 중장기 전망 연구 △정부 및 국내외 공공기관 및 민간단체 등으로부터의 연구용역 수탁 등이다. 현재 200여 명의 연구자가 일하고 있다.

    “농업인에게 필요한 연구를 한다”

    이 원장은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토종 연구자 출신이다. 연구원 출범 2년 후인 1980년 연구자 생활을 시작해 31년 만에 원장 자리에 올랐다. 원장 취임 후 그의 일성(一聲)은 ‘현장경영’이었다.

    “시장개방과 고령화 등으로 농촌 현실이 매우 어렵죠. 우리 농경연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에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정부와 농업인이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통계와 대안을 선제적으로 내놓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연구를 해야 하는데, 현장을 모르면 정확한 대안을 제시하기 힘듭니다.”

    이 원장이‘농촌희망찾기현장토론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매월 ‘농업관측’이라는 매체를 통해 품목별 수급전망과 정책대안을 내놓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를 위해 농업관측센터에 전문가를 보강하기도 했다. FTA(자유무역협정) 이행지원센터를 설치해 농산물의 수입 피해를 분석하고 관련 교육과 상담을 하고 있으며 연구원 각 파트의 연구결과를 요약해 농협 등 관련 기관에 뿌리고 있다. 농업계에선 유명한 ‘농정포커스’의 발행도 그 일환이다.

    “농경연의 핵심은 연구고, 연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죠. 연구자들이 좋은 연구결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게 원장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이 소신껏 연구에 매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창의적 연구를 통한 정책대안 제시와 문제해결에 각자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선도(내비게이터)하고, 조정(신호등)하며, 응원(치어리더)하는 원장이 되고 싶습니다.”

    농경연은 출범 이래 줄곧 농협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그동안 60여 건의 농협관련 연구 과제를 수행했는데 그중 경제사업과 관련된 연구가 40여 건, 농업금융 관련 연구가 20여 건이다. 농경연은 농협개혁의 주요 시기마다 개혁의 논리와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0년 농·축·인삼협 통합, 2002년의 신용·경제사업 분리 논쟁, 지난해 3월의 지배구조 개선과 신용·경제사업 분리 등 농협개혁의 각 단계마다 연구사업을 통해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관련 전문가들이 정부 및 농협이 운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농협개혁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11년 농협법 개정의 핵심인 경제사업 활성화 연구에는 연구원의 분야별 전문가가 전사적으로 참여해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 연구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주관 기관평가에서 정책기여도가 높은 과제로 선정되기도 했죠. KREI 연구보고서, 농정포커스, 품목별 관측결과 등 수 천만 원 상당의 자료를 농협과 각 조합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농협에서 그에 관한 지원은 한 푼도 없어요.(웃음)”

    사실 이 원장과 농협은 개인사적으로도 인연이 많다. 1950년대 말 귀향해 농민운동을 하던 이 원장의 아버지는 1961년 농협의 하부조직인 이동조합을 조직했는데, 그 공로로 1968년 새농민상을 받고, 1979년 전국 최우수조합으로 선정됐지만 저온저장고를 지어놓고 보관물량 때문에 고민하다 사무실에서 쓰러졌다. 그 후 10년간 투병 생활 끝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 원장은 “농업과 농촌을 위한 헌신적인 삶을 강조했던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으려 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뜻밖에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한시도 농업과 농촌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농협개혁의 브레인 집단

    지배구조 개선, 신경분리 등 농협개혁에 대해 이 원장은 “긍정적·부정적 평가, 우려와 기대가 엇갈리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부정적 평가와 우려는 내부 혁신과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경분리는 협동조합의 정체성 유지, 사업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에선 큰 의의를 가집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충분한 준비와 세밀한 대비책 없이 이루어진 개혁이라는 비판과 함께 정부 출자와 관련해 협동조합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원장은 농협의 사업구조개편에 따라 기대해볼 수 있는 긍정적 전망으로 △조합의 규모화 및 전문성 확보 △은행·판매사업 등 수익사업의 효율성 및 교육·지원사업 효과 제고 △자본금 마련으로 농산물 생산·유통인프라 구축 △중앙회와 지역 조합 중앙회 경제사업의 연계 강화 △농축산물 판매기능 확대 △축종별 계열화 사업 등 경제사업 활성화 △금융·경제부문의 활성화를 통한 직간접적 농업지원시스템 강화 △농업인 및 조합원의 소득 향상 △유통구조 효율화로 소비자 편익 증대 등을 꼽는다.

    “좋은 소식에는 항상 나쁜 소식이 곁들여 있죠.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겁니다. 농협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으로 많은 기대를 걸 수 있지만 사업이 분리됨에 따라 사업별 연계에 따른 상호보완 효과가 위축되고 회사 경영 조직문화에 대한 혁신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경영악화와 조직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우려도 있습니다. 금융지주와 경제지주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지속될 것인지도 걱정이고요.”

    ‘스마트 농협’ 되려면

    이 원장은 “농협개혁과 관련된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연구원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몫을 다 하겠다”고 말한다. 농협개혁의 목표로 제시된 경제사업 활성화와 신용사업의 건전화·전문화가 달성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

    “농협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이른 시일 내에 사업부문을 독립시켜 농협중앙회가 본래의 기능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판매사업과 구매사업에 대한 발전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조합의 상호금융과 농협은행 간의 경쟁을 최소화하는 명확한 역할 분담 대책도 마련해야 하죠. 다른 경쟁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협동조합 본연의 기능을 강화해야 합니다.”

    농협개혁을 제대로 완수하려면 현재의 농협을 새로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스마트 농협’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신념이다. 농협에 대한 여러 오해와 비난을 불식하고 농업 농민 간의 거리를 좁혀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우선 관료적 시스템과 방만한 운영체제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

    “농협의 임직원과 조합원 모두가 먼저 ‘농협은 내 것’이라는 주인정신을 가지고 비전과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해나가야죠. 농민을 위해 봉사하는 농협이라는 농협 본래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해야 합니다. 농민에게 실익이 있는 사업을 해야 해요. 스마트 농협으로 거듭남은 물론 사회적 공헌활동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1사1촌 운동, 식사랑농사랑 운동 로컬푸드운동은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하면 농협이 농촌경제의 실질적 담당자이자 지역개발의 책임 있는 주체로 거듭나야 농협개혁이라는 큰 그림이 완성된다는 얘기다. 이 원장은 농협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지역 농축협이라고 강조한다. 농업인과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고 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일선 조합이 경영을 잘해야 농가소득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1·2·3차 산업의 융복합화(커뮤니티 비즈니스 마을기업)와 지역 농식품산업의 육성도 중앙회와 지역조합 조합원 간의 협력과 연계가 바탕이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게 이 원장의 주장. 그는 “중앙회의 개혁성과가 일선 조합과 효과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연구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연구원 차원에서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중앙회는 지역 조합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농축산물 생산의 규모화와 브랜드화를 이뤄내야 합니다. 산지 생산물량의 50%를 소화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인프라를 확충하고 판매역량을 강화해야 하죠. 그러면 농산물의 수급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축산물은 협동조합형 계열화 체계를 확립해야 합니다.”

    이 원장은 이제 농협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령화·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경제·금융사업 활성화와 함께 맞춤형 농촌복지사업을 확충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례사업, 주유소 운영, 다문화가정 돌보기 등과 같이 지역사회에서 기존에 해오던 사업을 더욱 확대해 문화 순회사업, 농촌어메니티관리(환경개선), 취약농가 인력지원, 귀농·귀촌교육, 귀농박람회, 공동육아와 같은 농어촌 공동체사회 건설을 위한 새로운 사업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개혁 전도사’ 이수화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농협의 위기 경보기, 페이스메이커 될 터”

    농협경제연구소(NHERI)는 2006년 10월 2일 농협중앙회가 100% 출자해 만든 별도 법인이다. 농협중앙회에서 조사연구 업무를 담당하던 조사부가 확대개편됐다. 1961년 탄생한 농협조사부는 오랜 역사와 전통뿐 아니라 전문성 또한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던 농협 내 최고 브레인 조직이었다. 현대사회의 정보화 흐름에 발맞춰 농협조사부의 기능과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등 조직을 개편해 2004년 ‘농협조사연구소’를 출범시켰고 2년간의 시범운영 끝에 2006년 별도 법인체를 설립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따른 농축산물시장 개방 확대, 농축산물 유통구조의 변화, 금융기관 간 경쟁 심화 등 농협을 둘러싼 경영환경 급변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전문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농민의 요청에 의해 설립됐다. 실제 많은 농협 관련 단체장과 조합장들은 “실제 농사를 짓고 농정을 펼치는 데 연구소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농협·농업·농촌의 ‘위기 경보기’

    “신용·경제 분리하고 협동조합 본연 기능 다하라”
    현재 NHERI는 농촌진흥청장을 지낸 이수화(57) 대표이사가 이끌고 있다. 1976년 21세에 19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이 대표는 농촌진흥청장 외에도 농산물품질관리원장, 산림청 차장 등을 역임했다. 가는 조직마다 강도 높은 개혁을 펼쳐 ‘개혁의 전도사’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 ‘아이디어 뱅크’ 등 다양한 별명을 얻은 인물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이디어 뱅크’보다는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요직을 거치며 쌓아온 이 대표의 경륜은 농협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대표 취임 후 시작된 주간 연구보고서 ‘NHERI 주간브리프’는 농업·농촌·농협 그리고 경제·금융 분야의 현안을 심층 분석해 농협중앙회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적절한 포인트를 짚어준다는 호평을 받는다. 지난 7월에는 미국산 체리 수입에 대한 주간브리프 이슈가 거의 모든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연구조정위원회에서 직접 체리와 국내산 자두 등을 함께 시식해보고 맛과 향 소비 동향 등을 주제로 토론을 했다. 연구의 방향을 적확하게 정해 구체화한 대표적 사례”라고 전했다. 지난 6월부터는 금융 분야의 국내외 잠재적 리스크 요인을 고려한 농협 경영전략의 수립과 추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월간 금융리스크 리뷰’를 발간해 일선에 배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연구소가 ‘위기 경보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 흐름에 대한 진단과 미래전략을 구상하고 농협 사업구조 개편 후 경영에 영향을 미칠 요인과 위기 징후에 대한 사전 포착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앞으로 세계 곡물가격 동향 사전 파악, 협동조합기본법 통과에 따른 농협의 대응방안, 유럽발 금융위기 대처 방안 등 각종 이슈를 미리 분석해 보고서로 만드는 등 농협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한발 앞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 대표는 식량자원의 무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연구소에 식량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이다. “큰 태풍이 지난 후의 국내 식량 수급 상황,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의 식량 수급 상황 등 식량과 관련해 펼쳐질 모습이 연구원의 머릿속에 미리 그려져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농림부에서 식량과 관련한 부서의 계장 과장 국장을 지낸 이 대표는 식량 문제에 대해선 국내에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지난해 3월 농협개혁법 통과 이후 실시된 농협 사업구조 개편으로 연구소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다. 경제지주와 금융지주 분리 후 중앙회와의 시너지 효과를 확대하고 협동조합 시스템 고유의 강점을 부각하는 한편 최고 경영진의 농정 활동을 보좌하는 기능을 대폭 확대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사업구조 개편 이후 축소된 중앙회의 전략적 기능을 보완하고 협동조합으로서 농협의 정체성 유지에 필요한 기초 연구도 강화했다. 이 대표는 “농협 전체가 사업구조 개편 후 연착륙하도록 우리 연구소가 방향타 또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사업·조직·경영부문에 필요한 자문연구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 구조 개편은 사실 10년 전에 했어야 합니다. 많이 늦어졌죠. 일단 바꿔놓고 부정적인 문제는 최소화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행정구역별로 구성된 지역 농협을 품목 중심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기술정보 교환도 쉽고 공동생산과 판매도 더욱 용이해집니다. 어쨌든 농협개혁의 핵심이 경제사업 활성화이니만큼 이제 농협은 농업인이 생산한 농축산물을 제값에 잘 팔아주는 믿음직한 판매농협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소비자가 믿고 찾는 농협이 되어야 명실상부한 판매농협으로 연착륙할 수 있습니다.”

    판매농협 활성화를 위해 이 대표는 “공동선별회와 같은 생산자 조직을 통해 품질 고급화에 주력하는 한편 시·군 및 전국 지역 연합마케팅 공동브랜드 사업 등을 통해 농축산물 판로를 크게 넓혀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전국 5대 권역에 물류센터를 건립하고 중앙회가 산지에 직접 투자함으로써 유통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등 소비자에게 안전한 농축산물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유통시스템의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블루오션 제시하는 현장 연구

    “우리 농업이 살고 농민이 부유해지기 위해선 농축산물에도 융복합의 개념을 들여놓는 한편 농외소득을 창출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신념이다. 그래서 연구소도 농업과 농촌에 블루오션(Blue Ocean)을 제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현대의 농축산업은 AT(농업기술)· BT(생명공학)· NT(나노기술) 등 첨단기술과의 융·복합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식품산업·생명산업·바이오에너지산업으로 탈바꿈해나가고 있습니다. 누에고치로 인공뼈·임플란트·관절·고막을 만드는 시대가 온 거죠. 농축산물이 소재산업이 되면 원래 100원 받을 것을 1만 원에도 팔 수 있습니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하는 거죠.

    벌의 독(毒)으로 항생제를 만드는 것도 그렇습니다. 단지 꿀을 채취하는 1차 산업보다 융합을 통해 소득을 100%, 1000%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급변하는 농축산업 환경 속에서 우리 연구소 역시 블루오션을 발견하는 연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둘레길, 올레길과 같은 녹색관광의 발굴, 농촌일자리 찾기, 도시농업 활성화 등 농외소득 창출에 대한 방향 제시도 우리 연구소의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NHERI는 지금 농협 전체에 협동조합의 공동체 정신과 기업 마인드가 접목된 제3의 길을 제시해야 할 중책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민간 경제연구소와 차별화된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 대표는 “우리 연구소는 농협의 정체성 확립과 협동조합 고유의 경영전략 수립, 서민금융 부문 특히 지역 농축협의 신용사업부문인 상호금융의 리스크 관리,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피해 분석과 대안 및 보안대책 제시를 통해 농협이 농업·농촌·농업인의 견고한 바람막이가 될 수 있도록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농민의 연구소’가 되기 위한 당찬 포부도 가지고 있다. 우선 중앙회 농업경제 축산경제 농협은행 상호금융 등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분리된 지주사와 법인별로 각 부문에 맞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8개 연구조직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일명 ‘맞춤형 농협연구소’가 그것. 다음으로는 국제적인 연구 네트워크를 가진 ‘초일류 글로벌 농협경제연구소’가 된다는 것이 두 번째다. 일본의 농림중금종합연구소와 중국의 인민대학교 협동조합연구소, 미국과 유럽의 협동조합·은행연구소 등과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고 학술적·인적 교류를 통해 두터운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농협의 페이스메이커 기능을 더욱 성공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

    “언제나 ‘창의적인 연구’ ‘앞서가는 연구’ ‘실용적인 연구’ ‘함께하는 연구’를 하겠다는 자세로 농업인에게 희망을 주고 농업의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는 현장 지향적이고 실용적인 연구에 매진할 것입니다.”

    협동조합 정신으로

    이 대표는 정통 농정 관련 공직자 출신으로는 드물게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화폐금융정책 분야다. 그는 2008년 이후 시작된 금융위기의 근본 이유를 금융부문의 비대화에서 찾는다. 실물경제 규모에 비해 금융부문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주택경기 침체로 부동산, 가계부채 문제가 표면화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금융산업의 위험관리 강화와 건전성 제고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동시에 금융위기에 대한 반성으로 글로벌 투기자본 관리 및 감독을 강화하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규제내용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국내 경제상황은 소득의 양극화, 빈부 격차에 따른 갈등, 복지부문 세출 증대 우려 등의 잠재적 리스크 요인을 안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효율성만 강조하는 경제정책보다는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상생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더 필요하다”며 “협동조합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의사회의 구현이 현재 불거진 많은 문제에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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