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상가 위기의 상징 ‘엠브릿지’
유치권 행사로 수년째 빈 건물 방치
‘평일 세종족’ 찾는 원룸만 성업 중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세종시 아파트 가격은 7.51% 하락해 전국에서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월 14억 원에 거래돼 최고가를 기록한 전용면적 99.2㎡ 아파트는 9월 8억5000만 원에 매매돼 5억5000만 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고, 2020년 8억5000만 원에 거래됐던 84.9㎡ 아파트도 9월 4억5500만 원으로 2년 만에 반토막 난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산이 높이면 골이 깊듯 세종시 아파트값의 가파른 하락은 수년간 계속된 집값 고공행진에 따른 자연스러운 하락”이라고 평가했다. 고 원장은 “최근 수년간 계속된 세종시 아파트값 상승세는 수요 증가나 공급 부족 같은 합리적·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행정수도를 진짜 수도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천도론’을 제기한 뒤 급등한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세종시 상공에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다. [박해윤 기자]
‘천도론’에 세종시 집값 폭등?
천도론이 현실화되면 미국 워싱턴과 뉴욕 집값이 비슷한 것처럼 세종시 집값이 서울 집값과 비슷해질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작용해 단기간에 많게는 3배 가까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3·9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했으며 ‘천도론’은 허상으로 밝혀졌다. 대선 이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게 고 원장의 분석이다.세종시가 전국 최고 집값 하락률을 기록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공급과잉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세종시는 개발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꾸준히 새 아파트가 공급돼 왔다. 또한 앞으로도 당분간 추가로 새 아파트가 대량 공급될 예정이다. 새 아파트가 과잉 공급되다 보니 최근 전세가가 크게 떨어지면서 매매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아파트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경기침체 여파로 실망으로 바뀌면서 추가 매물이 쏟아져 나와 하락세를 부채질한 측면이 있다. 최근 금리 인상에 따른 유동성 축소도 세종시 아파트값 하락세를 가속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최근 절반 가까이 하락한 세종시 아파트값은 더 떨어질까. 고 원장은 “고점 대비 50% 가까이 아파트값이 떨어지면서 실구매자 사이에 ‘충분히 하락했다’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며 “대전 등 세종시 인근 지역에서 세종시로 거주지를 옮기려는 젊은 실수요자들이 구매에 나설 경우 가파른 하락세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의 부동산 규제를 풀면서 세종시에 한해서는 ‘조정대상지역’을 유지했다. 고 원장은 “정부가 세종시를 조정대상지역으로 남겨둔 것은 높은 청약경쟁률 등을 봤을 때 언제든 세종시 집값이 다시 과열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라며 “젊은 실수요자가 구매에 나선다면 세종시 아파트값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세종시의 경우 아파트 가격의 가파른 하락뿐 아니라 상가 공실률도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올 2분기 세종시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13.1%로 전국 평균 6.6%보다 2배 가까이 높다. 중간 규모 상가 공실률도 20.2%로 전국 평균(13.1%)을 크게 상회했다.
세종시 상가 공실률 전국 평균 2배
소담동 한 건물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박해윤 기자]
세종특별자치시청이 자리 잡은 반곡동 바로 옆 소담동에는 ‘세종 법원 검찰청 부지’가 널찍이 조성돼 있다. 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 바로 앞에는 민사와 형사 등 송사 업무를 담당할 변호사들이 모여들어 법조타운이 형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소담동에 들어선 몇몇 건물 이름도 ‘법조빌딩’ ‘로이어스빌딩’ 등 법조타운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소담동 한 건물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고 커다랗게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주차장 입구는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긴 나무 등이 볼썽사납게 설치돼 있었다. 한 대형 유리창은 금이 가 있어 언제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2020년부터 2년간 소담동 한 빌딩에 입주했었다는 한 전문직 인사는 “법원과 검찰청 건립이 기약 없이 늦어지면서 법조타운이 전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R빌딩의 경우 공사비를 지급 못 해 오래전부터 유치권 행사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유치권 행사 중인 건물뿐 아니라 오피스 건물 대부분이 텅 비어 있다”며 “내가 입주했던 건물 3층은 총 8개 오피스가 있는데 문 연 사무실이 내 것뿐이었고, 4층과 5층 오피스는 모두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입주한 이가 거의 없어 지하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엘리베이터를 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점은 편리했지만, 저녁이 되면 사람 온기를 느낄 수 없어 유령도시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법조타운 근처 비어 있는 빌딩 몇몇 곳에서는 임대료 없이 관리비만 내면 바로 입주해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귀띔했다.
법원, 검찰청 부지 앞 상가가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법원, 검찰청 부지에 세종지방법원과 세종지방검찰청이 건립돼야 한다. 그러나 세종시 인근 대전과 청주, 공주와 천안 등 자동차로 1시간 이내 거리에 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이 여럿 설치돼 있는 탓에 세종시에 법원과 검찰청사를 추가로 지을 필요가 있느냐는 현실론에 막혀 있는 상태다.
랜드마크→골칫덩이 ‘엠브릿지’
텅 빈 어진동 엠브릿지 지하 주차장. [박해윤 기자]
엠브릿지는 2005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인 세계적 건축가 톰 메인이 설계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건물이다. 독특한 외관은 건축 문외한 눈에도 멋진 건물로 보인다. 정부종합청사와 가깝고 세종시 핵심 요충지에 자리 잡은 엠브릿지는 건축 당시 랜드마크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상가 분양에 실패하면서 세종시 최대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패션 아웃렛 W몰이 한동안 입점해 영업하기도 했지만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폐업했다. 엠브릿지 지하주차장에서 건물로 진입하는 출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당 건물 내 입점해 영업하는 호실이 없고 외부인의 무단출입으로 시설물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건물 내 각 출입구를 폐쇄 조치하오니, 출입을 원하는 분은 관리사무소로 연락바랍니다.”
아웃렛 매장 철수 이후 담보신탁을 한 자산신탁이 처분에 나섰지만 감정가의 절반 수준으로 여러 차례 유찰됐음에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자 공매 절차를 취소한 상태다.
엠브릿지 미분양 사태는 세종시 개발 초기부터 대두됐던 극심한 상가 공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 같다. 세종시에서 10년째 자영업을 하고 있는 한 인사는 “원주민 비율이 낮고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이 많은 세종시 특성상 신규 상권이 단시일 내에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2년 11만 명 수준이던 세종시 인구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 9월 말 현재 38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전이나 청주 등 인근 도시로 출퇴근하는 인구가 적지 않고, 세종시에 적을 둔 공무원 중 일부는 주말이면 서울로 상경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베드타운’화됐다.
정부청사 바로 옆에 위치한 중앙타운은 점심시간을 맞아 식사를 하려는 이들로 제법 북적였다. 세종시 건립 초기 핫플레이스였던 이곳은 최근에는 점심 장사만 좀 될 뿐 저녁 장사와 주말 장사는 쉽지 않다고 한다. 퇴근하면 곧바로 집에 가고,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이 많아 저녁 장사와 주말 장사가 점심 장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 된다는 것.
세종시에서 유일하게 밤 장사가 된다는 곳이 최근 핫플레이스로 뜬 나성동 일대다. 세종시 최남단에 위치한 나성동에는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와 함께 대규모 상가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해발 200m 45층에 위치한 한 카페에 들어서니 세종시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성동 일대는 ‘리틀 뉴욕’ ‘미니 홍콩’에 비견할 만큼 고층 아파트가 여럿 들어서 있다. 고층 건물 사이에 상가건물이 들어서 먹자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퇴근 후 술 한잔’ 핫플레이스
세종시에 거주하는 한 공무원은 “퇴근 후 술 한잔하러 가는 곳이 나성동”이라며 “분위기 좋은 카페와 음식점, 술집이 밀집한 덕에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핫플레이스가 됐다”고 말했다.중앙타운이 주로 점심 밥 장사 위주라면 나성동 먹자골목은 점심보다는 저녁 장사 위주로 하는 가게가 많다고 한다. 핫플레이스라는 나성동조차 상업부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백화점 부지’는 여전히 나대지로 남아 썰렁한 모습이었다.
고종완 원장은 세종시 상가 공실률이 높아지는 요인으로 ‘공급과잉’을 꼽았다. 고 원장은 “세종시에는 아파트에 비해 너무 많은 상가가 공급됐다”며 “공무원 등 중산층이 많아 구매율이 특별히 높다고 볼 수 없는 세종시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상가가 공급되면서 공실률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세종시 상가 경매 낙찰가가 낮아지는 것도 상가에 대한 투자 매력이 크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세종시에는 최근 주상복합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 건축법에 따라 주상복합은 전체 건축면적의 일정 정도를 의무적으로 상가로 지어야 해 가뜩이나 공급과잉 상태인 세종시에 주상복합이 들어설 때마다 상가가 추가로 공급돼 악순환에 빠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아파트값 하락과 상가 공실률 상승으로 세종시 부동산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순번표’를 받아 기다리는 부동산도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에 세종시에서 일하고 주말이면 서울 등 수도권으로 향하는 ‘평일 세종족’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인 원룸이 대표적이다. 나성동 원룸에 거주하는 한 인사는 “최근 건축된 빌트인 원룸의 경우 순번표를 받아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높다”며 “나 홀로 세종에 거주하는 1인 가구들이 값비싼 아파트 대신 상대적으로 월세가 저렴한 원룸을 선호하기 때문에 나타난 기현상”이라고 말했다.
급락한 아파트값에 높아만 가는 상가 공실률, 거기에 원룸 선호 기현상까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지정돼 논과 밭을 갈아엎고 계획적으로 조성 중인 세종시의 부동산시장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여당 대표, 야당 대표, 국회 부의장, 감사원장 등 국가 의전 서열 1위부터 10위까지 중 5위 국무총리만이 하루 이틀 머무는 세종시는 아직 반쪽짜리 ‘행정중심도시’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같은 서열 1, 2위 최고지도자가 머물며 집무를 보는 명실상부한 행정중심도시가 될 때라야 세종시 상권이 살아날지도 모른다. 금요일 늦은 오후 세종시에 인접한 오송역에 정차한 KTX와 SRT는 서울역과 수서역으로 가려는 승객들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좌석을 확보하지 못한 일부 승객은 선 채로 상경하기도 한다. 주말을 앞두고 머물기보다 떠나려는 사람이 많은 도시, 그런 세종시 상권이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해 보인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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