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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원전”으로 시작한 재후(災後) 시대

제4장 그래도 원자력이다

“사요나라 원전”으로 시작한 재후(災後)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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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원전”으로 시작한 재후(災後) 시대

2011년 11월 12일 J빌리지에서 방호복을 입고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들어가는 버스에 탑승한 기자들.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도쿄전력은 쓰나미 참사 8개월 만인 2011년 11월 12일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원전사고 담당 장관의 현장 시찰에 기자들을 불렀다. 사고 후 최초로 언론에 후쿠시마 제1발전소 내부 현장을 공개한 것이다. 현장 관람 후 기자들이 쓴 글을 정리하면 이렇다.

오전 10시쯤 기자들은 ‘J빌리지’라고 하는 건물에서 방호복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피폭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선량계 2개를 방호복에 부착한 채 버스를 탔다. 기자들은 ‘마스크를 착용하니 매우 더웠다. 11월이었지만 땀이 흘렀다. 한여름에 이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던 현장 요원 40여 명이 열사병 증세를 호소했다는 사실이 이해됐다’라고 적었다. J빌리지에서는 시간당 1.5마이크로시버트를 가리키던 방사선 선량계가 버스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로 접근해감에 따라 금방 10마이크로시버트를 가리켰다.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는 방사선 선량계

1밀리시버트는 1000마이크로시버트다. 일반인이 1년간 쬐는 자연 방사선이 2.4밀리시버트, 즉 2400마이크로시버트이니, 기자들이 쬔 시간당 10마이크로시버트는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2.4밀리시버트(2400마이크로시버트)는 1년간 쬔 총 방사선량이니, 시간당 10마이크로시버트를 1년간 쬐고 있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

1~4호기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도착한 취재진은 ‘3호기는 누군가가 건물을 밟고 지나간 것처럼 건물 윗부분이 날아간 상태였다’고 적었다. 4호기도 외벽이 날아가 뻥 뚫렸는데, 그 틈으로 격납용기의 윗부분인 노란색 뚜껑이 보였다고 한다.



1호기는 10월 14일 외부에 덮개를 덧씌운 상태라 내부를 볼 수 없었다. 1호기 덮개에는 외부로 내보는 공기에서 방사성물질을 걸러내는 필터가 설치돼 있다. 1호기는 격납용기와 원자로 안에 물을 채운 데다 덮개까지 씌웠기에 방사성물질의 대기 방출이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1호기 건물 1층의 바닥에 깔린 관에서는 시간당 4000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이 검출되고 있었다. 이는 관이 설치된 지하에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고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자들은 3호기 원자로 건물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방사선량이 시간당 200마이크로시버트로 높아졌다. 기자단을 안내하던 도쿄전력 직원은 “부지 안은 대체로 10마이크로시버트로 기록되는데 3호기 근처에서 특히 방사선량이 높게 검출된다”고 말했다. 동행한 도쿄전력 직원들은 선량계를 보고 있다가 높은 수치가 나오면 “800마이크로시버트” “1000마이크로시버트, 즉 1밀리시버트입니다”라고 외쳤다.

이는 J빌리지에 있을 때보나 600배 이상 방사선량이 높아진 것이라 기자단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 수치는 기자단이 지나가면서 잠시 쬔 것이라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원자로 건물을 둘러본 기자단은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그에 따라 방사선량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해안에는 15m까지 치솟았던 쓰나미가 할퀸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흰색의 원통형 탱크 밑 부분은 뭔가에 강하게 치인 듯 움푹 패어 있었다. 해변에는 방사성물질이 바다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처에 방사성물질 방지제를 덮어놓았는데, 이 방지제는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전 11시쯤 기자단은 긴급대책본부가 차려진 면진동(免震棟)에 도착했다. 면진동은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든 건물이다. 사고 당시 요시다 마사오 소장이 화상으로 본사와 대화하며 현장 지휘를 한 곳이기도 하다. 마스크와 방호복을 벗고 선량계를 살피니 기자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한 개 선량계는 77마이크로시버트, 또 다른 선량계는 52마이크로시버트(교도통신 기자의 것)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정도 수치는 X레이를 한 번 촬영했을 때 받는 방사선량과 비슷하다. 도쿄전력 직원은 “전혀 염려스러운 수치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기자들은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전도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한다. 원전사고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보험료가 매우 비싸다. 따라서 한 개 보험회사가 단독으로 하지 않고 여러 회사가 공동으로 보험을 받는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가 있기 전 도쿄전력은 세계적인 보험회사들과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전 보험 가입 문제에 대해 협상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가격 차이가 있어 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대재앙의 사고를 당했다. 보험을 들지 않았으니 도쿄전력은 모든 것을 자체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로 도쿄전력은 도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조 원이 넘는 원전 4기가 사라졌으니 도쿄전력의 매출액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도쿄전력은 막대한 사고 처리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 지역을 경계구역으로 설정해 모든 주민을 소개했다. 이 지역에서 재배되던 농작물을 수확하지 못하게 했고, 가축은 모두 도살했다.

20㎞ 경계구역 설정조치는 방사선 수치가 안정치 이하로 내려가야 해제된다. 도쿄전력은 그때까지 생업을 하지 못하게 된 소개 주민들에게 배상을 해줘야 한다. 지나간 일이지만 도쿄전력이 과감히 후쿠시마 제1발전소 원전 보험계약을 했더라면 지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IMF 외환위기 후 한국이 부실기업을 상대로 그랬던 것처럼, 일본 정부가 출자해 도쿄전력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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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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