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10일 스페인 남부 말라가의 콘스티투시온 광장에서 정부의 구제금융 신청에 항의하는 한 시위자가 가짜 유로지폐로 만든 족쇄를 차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는 국가의 재정조달 필요액이 금융시장이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위기는 빠르게 전파될 것이다. 스페인이 시장에서 퇴출 압력을 받게 되면 이탈리아 이자율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탈리아는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스페인과 동일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와 스페인이 직면한 문제는 서로 성격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유럽단일통화의 존재와 경쟁력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리스 “출구는 있다”
그리스는 누적된 부채의 이자도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스는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 맺은 각서에 따라 긴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스의 GDP는 2008년부터 3년 사이 15.6%나 감소했다. 조세 수입이 줄어들고 경제적으로 위축되자 GDP 대비 부채 비중은 자동적으로 늘어났다. 민간 은행 보유 부채를 조정해 이자 부담을 이끌고자 했으나 민간 은행의 강력한 반대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5월 초 선거 이후 이러한 정책은 그리스의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 국민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트로이카와의 재협상은 불가능한 실정이고, 트로이카의 그리스에 대한 지원 중단 위협도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그리스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면 남아 있는 부채 전체는 즉각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야기할 것이다. 부채 조정의 부담을 떠안았던 그리스 은행권이 다시 국민의 불신을 받으면서, 5월 12일 이후 예금 유출(뱅크런)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5월 23일 브뤼셀에서 열린 비공식 유럽정상회담에서 다양한 공적·민간 기관들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으며 민간 은행들도 그리스 옛 통화인 드라크마로 거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현재 그리스는 두 가지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먼저 누적된 부채와 경제 위축으로 인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둘째, 유로로 인해 경쟁력이 상실되고 그로 인해 발생한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재정 적자를 메울 재원 조달은 긴급한 문제다. 크리스틴 리가르드 IMF 총재 등이“그리스 사람들이 세금을 잘 내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과 달리, 세금은 현재 그리스 재정 상황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참고) 실제로 공공재정이 크게 위축됐던 2009년을 제외하면, 그리스 재정적자의 중요 부분은 부채에 대한 이자부담에 의해 비롯됐다. 특히 GDP의 빠른 감소가 그리스 재정적자에 크게 작용했고, 이것이 투자 감소를 동반하면서 더욱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그리스 상황에 전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로체제에 머물 경우, 만일 트로이카가 5년간 이자 희생을 감수하고 투자계획에 동의해준다면, 그리스는 충분히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고 부채 지불을 거부한 채 재정적자를 중앙은행의 대출로 조달한다면, 유럽은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지는 않으면서 드라크마의 평가절하로 대외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부동산·서비스 붕괴 심각
유로존이 생존하려면 스페인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스페인의 누적 부채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실물경제의 붕괴에 있다. 스페인 실물경제는 부동산, 서비스에 특화돼 있는데 그로 인해 산업경쟁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 스페인 실물경제의 붕괴로 경제활동인구의 25%가 실업자가 되면서 이미 채무 비중이 높은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가중됐다. 이로 인해 민간 채무의 미상환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은행에 부담을 주고 있다. 2012년 봄 스페인 은행권의 미상환 대출 비중이 은행권 전체 자산의 8.2%에 달했다. 특히 부동산 대출에 특화한 은행의 경우 이 비율은 12~15%에 달했다. 스페인 정부가 추진하는 긴축계획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면서 이와 같은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