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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블러드 주얼리(blood jewelry)가 빚어낸 참혹한 세상

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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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에라리온 사람들은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왜 싸우는지도 잘 모른 채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다이아몬드에 욕심을 낸 이들에게 살육은 죄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 손에 다이아몬드만 들어오면 되는 일이었다. 시에라리온 소년 코바는 이렇게 말했다.
  • “다이아몬드 탓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아요?
  • 그걸 어떻게 신부에게 선물로 주나요?
  • 우리 부족엔 피를 본 물건을 받으면 반드시 저주가 내린다는 전설이 있어요.”
더러운 돌멩이 제3세계를 죽이다

시에라리온 노동자가 다이아몬드를 채취하고있다.

기원전부터 보석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누구나 탐을 내는 보석은 빛과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현혹한다. 특히 다이아몬드는 영롱하고 찬란한 빛을 내뿜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보석이다. 다이아몬드는 사랑과 정절의 상징이며 부유함과 화려함을 나타낸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말도 있다. 신부에게 다이아몬드는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함께 결혼의 필수품이다.

4대 보석이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는 제가끔 다른 빛깔을 내는데, 이들은 모두 값이 비싸다. 그러나 이 보석들이 묻혀 있는 곳은 하나같이 평화롭지 못하다. 이 보석들로 인해 피바람이 부는 전쟁터가 돼버렸다. 아름다운 돌덩어리 뒤에 피가 묻어 있음을 알면 보석이 내뿜는 광채가 마냥 아름다워만 보일까?

더러운 돌멩이

5월 30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특별한 재판이 열렸다. 국제형사재판소(ICC) 산하 시에라리온 특별법정(SCSL)에서 재판이 열렸는데, 찰스 테일러(64)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저지른 범죄로 징역 50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테일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범죄 중 하나인 시에라리온 내전을 사주하고 학살을 도운 책임이 있다”며 만장일치로 이같이 판결했다. 이 재판이 화제를 불러 모은 또 다른 이유도 있다. 2010년 8월, 테일러의 재판에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 증언대에 선 게 그것이다. 패션쇼 혹은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유명한 모델이 왜 재판정에 나타난 걸까. 테일러가 선물한 다이아몬드 때문이었다. 캠벨은 증인석에서 테일러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캠벨이 증언하면서 ‘더러운 돌멩이’라고 부른 다이아몬드가 바로 테일러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테일러 전 대통령은 시에라리온 내전을 일으킨 배후다. 다이아몬드 이권은 그가 내전에 개입한 주된 이유다. 시에라리온은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나라로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산지. 원래 이 나라에 살던 원주민에게 다이아몬드는 그저 반짝이는 돌멩이에 불과했다. 이 돌멩이가 그렇게 값나가는 물건인지 모르던 시절은 밀림에서 사냥이나 하고 바다에서 물고기나 잡던 평화로운 때였다. 1800년대 초 미국과 유럽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이곳 시에라리온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시에라리온의 수도 이름이 ‘프리타운’인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이후 시에라리온엔 엄청난 변화가 밀려왔다. 영국 왕실은 1808년 프리타운을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삼았다. 1818년 영국은 황금해안과 서아프리카 전역을 통치하는 ‘총독부’를 창설하고 총독부의 ‘총본부’를 프리타운에 세웠다. 그로부터 117년 후인 1935년,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이 시에라리온에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한 것이다. 영국은 다이아몬드의 채굴권을 독점하면서 자국 기업인 드비어스(De Beers)에 98년간 다이아몬드를 채굴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주었다. 원주민과 새로 정착한 해방된 노예들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고 벌어졌으나 영국의 관심은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독점하는 데 쏠려 있었다. 1961년 시에라리온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영국은 독점권을 유지하면서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를 캐갔다. 이즈음부터 시에라리온 사람들도 다이아몬드가 가치가 높은 보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으며, 이 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일어났다.



테일러는 1991~2001년 벌어진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했다. 라이베리아 대통령이던 그는 혁명연합전선(RUF)이라는 이름의 시에라리온 반군에게 돈과 무기를 공급해 시에라리온을 잔인한 전쟁터로 만들었다. 전쟁은 돈과 무기가 없으면 일으킬 수도, 지속할 수도 없다. 테일러의 지원은 내전이 10년간 계속된 원인 중 하나였다. 그가 이 내전에 발을 담근 이유는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내전이 시작되기 전 시에라리온에서 다이아몬드를 채굴할 수 있는 기업은 드비어스였다. 하지만 이 회사에 채굴권을 준 기존 정부가 없어지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계약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게 테일러의 계산이었다. 내전은 참혹했다. 12만 명이 죽었다. 테일러가 지원한 반군은 수천 명에 달하는 민간인의 팔다리를 자르는 만행도 저질렀다. 테일러는 열 살 안팎의 소년·소녀까지 병사로 동원해 민간인의 신체를 도려내는 잔혹행위를 시켰다. 팔과 다리를 자르는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쟁 범죄다. 지금도 시에라리온에는 팔과 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전쟁의 상흔을 안고 살고 있다. 테일러는 이 내전에 개입한 대가로 ‘피의 다이아몬드’를 캐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등에 업은 라이베리아 내 반대세력에 의해 2003년 축출돼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 피의 다이아몬드를 통해 축재한 돈으로 호화생활을 즐기던 그는 2006년 3월 체포됐으며 이번 재판을 통해 사실상 종신형에 해당하는 50년형을 선고받았다.

다이아몬드에 홀린 반란군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를 노린 것은 테일러뿐이 아니다. 1991년 시에라리온에서는 부패한 정권에 대항한 학생들의 반정부 무장투쟁이 일어났다. 이 학생들이 모여 만든 것이 바로 테일러가 지원한 RUF다. 이 무장투쟁을 총지휘한 인물은 포데이 산코(Foday Sankoh). 그가 1991년 3월 시에라리온 동부에서 정부군을 상대로 최초의 공격에 나선 게 내전의 시작이다.

반란군은 정의로운 것처럼 보였다. “노예도 주인도 없다” “부귀와 권력은 인민에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의를 드러냈다. 국민의 지지도 얻었다. 반란군은 개전 한 달 만에 다이아몬드가 풍부하게 매장된 광산 지역인 이스턴 주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도 영국, 테일러와 똑같았다. 국민의 염원은 뒤로하고 다이아몬드에 홀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영국 정부와 다이아몬드의 채굴권을 소유한 드비어스였다. 드비어스는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의 80%를 차지하는 회사다. 또한 이 회사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주로 시에라리온에서 얻었다. 영국과 드비어스가 찾은 해결책은 간단했다. 이제껏 지원했던 시에라리온 정부를 버리고 RUF와 손을 잡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RUF와 테일러에게도 캐낸 다이아몬드를 팔 루트가 필요했다. 영국과 드비어스는 RUF를 향해 추파를 던졌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용병과 무기를 RUF에게 대준 것. 시에라리온 내전이 10년 동안 이어진 것은 반군 뒤에 이렇듯 거대한 세력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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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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