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간 나오토 총리
그리고 얼마 후 도쿄전력 본사가 요시다 소장에게 해수 주입 중단을 지시한 것은 총리실의 의견 때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정치권이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 국회에서 간 나오토 총리가 그때 “해수 주입을 중단하라”고 말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일본 국회는 더 이상 총리의 실수를 따지지 않았다. 일본 언론도 총리의 판단 미스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더 큰 사고가 났기 때문일 수 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에서는 1호기에 이어, 3호기 2호기, 4호기에서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4기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에 의한 피해를 막는 것이 급선무가 됐기에 총리실의 허술한 개입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최고 지도자의 실수에 대해서는 쉽게 따지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 국회는 제대로 따지지 못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소심한 결정과 엉뚱한 판단을 한 지도자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간다고 해도 지도력을 상실한다. 간 나오토 총리는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 5개월 뒤인 2011년 8월 말 사임하고, 같은 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가 새 총리대신이 되었다.
간 나오토 총리의 소심한 결심과 비교되는 것은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방사포 등을 쏘았을 때 보인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다. 북한군 4군단의 연평도 포격은 백주에 일어났기에 현장 상황이 중계됐다. 대한민국이 공격을 당했는데, 취임 시 대한민국을 보위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은 “확전을 방지해야 한다”는 말로 대응을 자제하게 했다.
7개월 전 천안함 사건을 당해 46명의 군인이 전사한 사실이 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새로운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청와대의 확전 방지 지시에 대해 즉각 여론은 맹비난했다. 그러자 연평도 포격전이 끝난 그날 저녁 이명박 대통령은 합참을 방문해 북한의 해안포 부근에 (북측) 미사일 기지가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타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차 떠난 다음에 손을 든 것이다.
매뉴얼 사회의 명암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의 수소폭발 문제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들에게 같은 사고가 일어나면 우리는 누가 해수 주입을 결정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발전소장이 내린다”라고 대답했다.
“요시다 마사오는 우리로 말하면 본부장이다. 발전소장 위에 본부장이 있으니 본부장이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니 “아니다. 그것은 소장이 내리면 된다. 소장이 못하면 본부장이 한다”라고 대답했다.
과연 그렇게 될까. 같은 사고가 일어나면 한국수력원자력의 본사는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있을까. 현장 책임자는 본사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노력하지 않을까. 도쿄전력이 해수 주입 문제를 놓고 헤맨 것은 그러한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매뉴얼 사회이기에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어떤 결정, 어떤 실수를 해도 면책받는 것이 일본이다.
그런데 매뉴얼이 없는 상황을 만나면?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린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니 누구라도 쉽게 결단하지 못한다. 그 사이 상황은 악화돼 간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관료사회의 맹점을 극복하는 것이 매뉴얼이다. 그런데 매뉴얼이 없는 상황을 맞자 일본은 관료주의 타성을 벗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한국의 관료주의는 일본의 관료주의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한국은 온갖 사고와 사건에 대응할 매뉴얼을 갖고 있는가? 한국은 그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사회인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너무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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