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조사에 참가했던 나가노 현립박물관의 니시야마 가쓰미(西山克己) 씨는 “지진을 당한 그 유적지는 서기 888년에 일어난 닌나(仁和) 대홍수로 파묻힌 것으로 보인다. 그 유적지를 발굴해보니 움집이 다수 나왔는데, 움집 바닥이 갈라져 있었다. 액상화 현상으로 땅속에서 솟구친 것이 분명한 모래에 덮여 있었다”고 말했다.
움집 터 중의 한 곳에서는 지진이 일어난 시대가 언제였는지 증명해주려는 듯 서기 835년에 주조된 조와쇼호(承和昌寶)가 발견됐다. 조와쇼호는 구리로 만든 동전인데,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도 이 돈이 전시돼 있다.
일본 역사서 속의 지진 기록
이런 식으로 일본 역사에서는 도처에 지진이 일어난 흔적이 발견된다. 그러나 일본 기상청은 과학적으로 관측한 것이 아니에서 주목하지 않았다. 또 건설을 하는 사람들은 일본 기상청 자료를 인용하는 것이 유리하기에 역사 기록물을 외면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를 지을 때 발전소 부지 남쪽인 미야기(宮城)현의 와타리(亘理) 정(町)에서부터 후쿠시마(福島)현 미나미소마(南相馬) 시 사이의 40㎞ 지역에 ‘후타바 단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단층이 2000년 전에 움직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원자력발전소를 지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제1발전소 북쪽에도 유사한 단층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북쪽에 있는 단층은 1990년 우연히 발견됐다. 1990년 가을 후쿠시마현 문화진흥사업단의 요시다 히데유키(吉田秀亨) 부주간은 후쿠시마현 소마(相馬)시에 있는 ‘단노하라(段ノ原) B’란 이름의 유적을 조사했다. 일본 역사에서 ‘조몬(繩文)시대’라고 하는, 6000여 년 전 신석기 사람들이 살았던 움집(‘竪穴’이라고도 한다) 100여 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유적지를 발굴하던 그는 이 주거지 동쪽 끝에 있는 언덕 꼭대기 부근에서부터 꾸불꾸불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기묘한 도랑을 발견했다. 구불구불한 이 도랑의 길이는 약 90m였고, 폭은 4~5m, 깊이는 2m 남짓했다. 도랑의 바닥에서는 불에 탄 나무와 신석기 시대 토기가 대량 발견됐다.
신석기 시대의 지진
도랑 바닥이라면 물이 흐른 흔적이 발견돼야 하는데, 불에 탄 나무와 신석기인이 사용하던 토기 파편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그는 ‘왜 도랑에서 이러한 것이 나오지’ 하는 의문을 품은 것이다. 도랑이라면 계속 이어져야 하는데, 이 도랑은 90m쯤 가다 사라지는 모양새였다. 마치 땅에 있는‘입’같은 느낌을 주었다.
“지면에 열려 있는 커다란 입 같아. 그런데 도대체 나는 이곳에서 뭐를 발굴하고 있는 것이지? 왜 도랑에서 토기가 나오는 것일까?”
이 도랑의 정체를 풀어준 것은 그 지역의 돌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온 지질학자였다. 지질학자는 단번에 “땅이 갈라졌네”라는 말로 이 도랑의 정체를 확인해주었다. 땅이 갈라졌다는 것은 지진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지질학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 주거지 좌우 지역에도 산사태가 일어났을 정도로 지층이 크게 어긋나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그렇다면 큰 지진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제야 요시다 부주간은 이 주거지가 한창 번성하던 시기에 지진을 만나 한순간에 폐허가 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면서 도랑 같은 구불구불한 틈이 생겼는데 그 틈으로 주거지에 있던 토기와 불에 탄 나무들이 대량으로 굴러들어간 것이다. 그는 지질학을 몰랐으니 그러한 사실을 파악할 수 없었다. 땅이 갈라진 것을 물이 흐르던 도랑으로 보고 ‘왜 도랑에 토기와 불에 탄 나무가 있지’라는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에 초청연구원으로 있는 지질고고학자 산가와 아키라(寒川旭) 씨는 이 단층 흔적을 보고 “규모 7 정도의 지진이 일어났을 것이다. 규모 7의 지진이 일어나면 움집은 거의 다 파괴된다”라고 추정했다.
규모 7의 지진은 1995년 고베(神戶)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한신(阪神) 대지진과 비슷한 강도다. 이 단층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남쪽에 있는 후타바 단층과 연결돼 있었다. 이로써 후쿠시마 제1발전소 북쪽에도 단층대가 있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는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타바 단층도 다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活)단층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동일본 대지진 후 후타바 단층에서는 약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지진에 취약한 지역에 놓인 게 된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가 일본 기상청의 예측과 달리 큰 쓰나미를 맞은 것은 이 지역의 땅도 함께 흔들렸기 때문일 수 있다. 땅이 흔들리면 쓰나미의 높이는 점점 올라간다.
6000여 년 전 평화롭게 살다가 규모 7의 지진을 만나 초토화된 단노하라 B 유적지의 생존 신석기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해답도 고고학적 발굴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에 대한 연구도 요시다 부주간이 했다.
그는 “그 지진이 있은 후 생존자들은 잔해를 정리하고 다시 마을을 세워 반세기 이상 거주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재앙을 만나도 그 지역을 떠나지는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진을 당해도 잔해를 치우고 살아야 하는 것은 일본인의 숙명인 모양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