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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뒤 더욱 빛나는 칼리 피오리나

‘주어진 환경’보다 중요한 건 ‘환경을 해석해내는 능력’

실패한 뒤 더욱 빛나는 칼리 피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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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한 준비

칼리의 삶은 미국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 특히 비즈니스 업계에서 여성으로 성공하는 과정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많은 대목에서 한국의 일하는 여성이 갖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칼리는 여성 이전에 미국 사회 리더가 양성되는 과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선 자원봉사다. 그녀는 고등학교 자원봉사를 통해 만난 정신지체아 소년에게서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을 배웠다고 말한다. 고교 시절 ‘케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다섯 살 정신지체아 소년을 가르쳤던 그녀는 케니스에게 ‘눈(eye)’과 ’귀(ear)’를 구분해 말하도록 가르치는 데 무려 6주가 걸렸다고 토로한다.

마침내 케니스가 비슷하게나마 두 단어를 말하게 된 순간, 칼리는 케니스를 껴안고 승리감에 도취했다. 그 후 케니스는 칼리를 볼 때마다 운동장에서 “눈! 기!”하고 소리 치곤 했다.

케니스와의 인연은 대학에 입학해서도 내내 이어진다. 대학 시절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에 갈 때마다 칼리는 케니스를 일부러 찾아가 만났다. 케니스 역시 그녀를 잊지 않고 반가워했다. 비록 제 이름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해도 칼리를 향해 “눈! 기!”를 외쳤다고 하니 두 사람의 색다른 우정은 생각만 해도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칼리는 케니스와의 의사소통 경험을 통해 ‘타인이 못한다고 믿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서 삶의 환희와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회고한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마이너리티 집단이다. 필자가 피오리나와 케니스의 만남을 특별히 여기는 것은, 좋은 부모 밑에서 명문대학에 들어가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른바 주류적 삶을 살아온 그녀가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소수자와 소통함으로써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구분을 넘어서는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리더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화합과 포용’의 덕목을 그녀는 이렇게 어릴 적 ‘특별한’ 소통을 통해 배운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란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한마디로 ‘남을 돕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된 것이다.

칼리는 언뜻 보면 약점으로 작용했을 상황도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을 통해 장점으로 바꿨다. 어릴 적 이사를 많이 다닌 것도 나중에 리더로서 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그런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헌법학자였다. 그것도 미국 헌법이 아니라 다른 나라 헌법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주 옮겨 다녀야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돌연 가나공화국 헌법을 공부해야겠다며 가족을 데리고 가나로 이사 가기도 했다. 그리고 가나 헌법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칼리를 비롯한 형제 3명은 자라는 동안 이런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여행에 쫓아다니느라 무려 3개 대륙에서 5개의 학교를 전전해야 했다. 칼리는 이런 혹독한(?) 떠돌이 생활을 통해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나는 영원한 아웃사이더였지만 어느 날 그것이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무래도 짧은 시간에 사람을 사귀어야 했던 경험은 타인의 심리를 재빨리 파악하는 법을 가르쳤을 것이다. 칼리의 무기는 ‘질문과 경청’이었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 질문하는 것 자체가 상대를 존경하는 것이 됨을 어릴 적부터 터득했다. 그리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음으로써 연대감과 결속이 생긴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의 높은 기대가 자식을 채찍질한다는 것도 피오리나의 성장과정을 통해 배울 만한 대목이다. 어릴 적 그녀에게 모범생이 되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해준 것은 부모님이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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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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