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철 기자
1995년 10월의 일이다. 당시 나는 동아일보 베이징특파원 부임을 앞두고 있었는데, 마침 동아일보 초청으로 중국 ‘인민일보’의 판징이(范敬宜) 총편집이 서울에 왔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최고의 권위지이고, 신문 제작의 총책임자인 총편집은 경영을 맡은 사장과 동격으로 장관급이다.
판징이 총편집의 한국 체류 기간 그를 안내하는 일이 내게 주어졌다. 서울에서의 일정이 끝난 후 판 총편집은 제주에 가보기를 원했다. 20년 전 일이라 당시 제주에서의 세세한 일정은 대부분 잊었지만 그를 분재예술원으로 안내한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 정원에 전시된 분재 작품들을 감상하고, 원장과 대화를 나눴으며, 붓글씨로 방문 기념 휘호를 남겼다. 판 총편집은 유명한 서예가이기도 했다. 분재예술원을 방문한 그날 밤 숙소에서 내게도 붓글씨 작품을 써줬다.
그 후 20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분재예술원을 잊고 있었다. 성범영 원장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다. 더욱이 분재예술원은 2007년 ‘생각하는 정원’으로 개명한 터라 관련 뉴스가 보도돼도 잘 모르고 지났던 것이다. 그러다가 서두에 언급한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한번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중국 교과서에까지 소개됐을까. 성범영 원장은 어떤 사람일까.
盆栽와 자연의 조화
20년 만에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생각하는 정원’을 찾았다. 마치 옛 성벽처럼 쌓아올린 멋진 돌담부터 인상적이었다. 20년 전의 분재예술원이 분재 작품 위주로 진열한 평면 정원이었다면 생각하는 정원은 입체 정원이었다. 높고 낮은 돌담과 돌탑, 제주 특유의 오름 이미지를 구현한 작은 언덕들, 인공폭포와 연못,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관람로가 잘 조화된 풍경으로 다가왔다.
분재는 야트막한 능선을 따라 지그재그로 설치한 좌대 위에 놓여 있다. 살아 있는 줄기와 죽은 줄기가 함께 어울려 서로를 감고 있는 기묘한 형태의 주목, 돌과 한 몸이 돼 돌을 껴안은 형태로 자란 느릅나무, 뿌리 부분을 잘라 거꾸로 심고 접을 붙여 기른 모과나무 등 작품 하나하나 절묘한 자태를 보여준다.
땅에 뿌리를 박은 정원수도 분재와 잘 어우러지도록 배치됐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스듬히 선, 600년쯤 됐다는 향나무 등 정원수 역시 분재 기술로 가꿔 보는 이들의 시선을 머물게 한다. 이뿐이 아니다. 국내외에서 수집했다는 기묘한 모양의 돌이며 바위가 곳곳에 놓여 신비감을 더해준다. 생각하는 정원의 아름다움은 이 모든 것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느낌이 든다.
생각하는 정원은 36000㎡(약 1만2000평) 규모로, 정문을 들어서면 관람로를 따라 환영의 정원, 영혼의 정원, 영감의 정원, 철학의 정원, 감귤의 정원, 비밀의 정원, 평화의 정원으로 이어진다. 각각의 소정원마다 자세한 해설을 해놓은 것은 물론, 각 분재 작품에 설명문이 함께 전시돼 관람객들이 ‘생각하며’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도 이채롭다.
생각하는 정원의 아름다운 자태 못지않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곳을 방문한 저명인사들의 기념사진을 모아놓은 전시실이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주룽지 전 총리, 리자오싱 외교부장, 츠하오텐 국방부장 등 중국의 전·현직 장관, 지방정부 지도자, 중국 유수의 박물관장, 미술관장, ‘붉은수수밭’의 작가 모옌(莫言) 등 문화예술계 명사들이 망라돼 있었다. 시진핑 현 국가주석은 저장성 서기 시절 방문했고, 북한 김용순 서기의 모습도 보였다. 물론 중국인 이외에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와 분재전문가들도 눈에 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곳에 중국 지도부 인사들이 앞다퉈 몰려온 것일까. 성범영 원장의 설명을 듣고 나니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20년 전 10월 판징이 인민일보 총편집이 이곳을 다녀간 뒤 신병매관기(新病梅館記)라는 글을 써서 인민일보에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